칠곡 할매들 “평생 래퍼로 살깁니더”
평균 연령 85세인 할머니 8명이 만든 힙합 그룹 ‘수니와칠공주’가 데뷔 1년을 맞았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세계 주요 외신에 소개되고 대기업 광고 모델까지 꿰찬 이들 할머니는 여전히 성장기를 쓰고 있다. 수니와칠공주는 지난 28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 마을회관에서 이웃 주민과 1주년을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검은 티셔츠에 번쩍번쩍 빛나는 액세서리, 멋들어진 두건까지 갖춘 할머니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랩 실력을 뽐내며 축하 공연을 했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한재홍 씨는 이른 아침부터 2단 대형 케이크를 만들어 래퍼 할머니들과 기쁨을 나눴다. 케이크 위 ‘수니와칠공주 첫돌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장식을 본 할머니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수니와칠공주는 ‘K-할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신4리에 사는 할머니들이 수니와칠공주 창단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할머니들은 한글 공부를 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랩 공연을 접했고 한글 선생님에게 랩을 배워 그룹을 만들었다. 래퍼 할머니들은 인생의 애환이 담겨있는 자작시로 랩 가사를 만들었다. 창단 초기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받자 회원 150명이 활동하는 팬클럽까지 결성됐다. KBS 인간극장과 아침마당 등 시청률 상위권 프로그램을 비롯해 70회에 걸쳐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신문 지면과 인터넷 등 언론에서 1500회 이상 소개됐다. 또 신한금융지주·한국저작권협회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 요청으로 상업 광고를 촬영하고 국가보훈부·국무총리실 등 정책홍보를 위한 캠페인 영상에도 출연했다. 이밖에 전국 각지에서 공연 요청이 이어지며 30차례 무대에 올라 흥과 끼를 발산했다.
특히 지난 5월 수니와칠공주는 경북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에서 학도병 희생을 기리는 호국과 보훈을 노래한 랩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할머니들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날 북한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에서 희생된 어린 학생들을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보였다.
로이터·AP·CCTV·NHK 등 세계 주요 외신은 할머니들을 소개했다. 외신들은 80대 고령의 할머니들이 랩 가사를 직접 쓰고 유치원에서 공연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한국의 80대 랩 그룹이 농촌 생활을 다룬 랩을 하면서 인구 감소로 위협받는 조용한 시골 지역에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주한 폴란드대사관은 수니와칠공주 할머니로부터 고령화 시대 새로운 해법을 연구했다.
수니와칠공주의 리더 박점순(83)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들은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랩을 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고 약속했다”며 “앞으로도 랩을 통해 치매도 예방하고 용돈도 벌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수니와칠공주의 영향을 받아 칠곡군에는 할매 래퍼 그룹이 6개나 결성됐다고 한다. 앞으로 칠곡군은 ‘할매문화관’을 건립하고 ‘할매시화거리’를 조성하는 등 실버세대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저출생 고령화 문제를 역발상으로 접근해 할머니들을 지역 홍보 대사로 내세우자 세계가 칠곡군을 주목했다”며 “실버세대 삶의 질을 향상하고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칠곡=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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