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10대 팬들 70대 됐지만…난 영원한 오빠”
“이런 광경은 내 평생 처음이요. 당혹스럽고 익숙하지 않은데, 일단 해봅시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 남진(79·김남진)은 수십명의 기자들과 진행하는 라운드 인터뷰가 낯선 듯 했다. 그가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건,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데뷔 60주년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다큐는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해 21세기에도 ‘둥지’라는 히트곡을 낸 ‘영원한 오빠’ 남진의 이야기를 담았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참전, 70년대 퇴폐 풍조 추방 운동, 80년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등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도 들여다볼 수 있다.
남진은 “20년 전 내 모습이 풋사과처럼 귀엽더라. 60년 가수 인생은 정말 행운이고 축복이고, 이런 것이 가능했던 건 팬들 덕분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남진은 1945년 목포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언론사 대표, 국회의원 등을 지낸 고(故) 김문옥 씨다. 다큐에서 그는 “50세 나이 차의 아버지는 연예인이라곤 잘 모르셨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풍각쟁이가 되려고 하느냐’면서 싫어하셨다”고 했다.
그럼에도 남진은 음악이 좋아 가수가 됐다. 이날 인터뷰에선 “학창 시절 때부터 들었던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나트라 음악을 지금도 좋아한다”며 “솔직히 트로트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첫 히트곡이 1966년 낸 트로트 장르의 ‘울려고 내가 왔나’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가진 재능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했다.
전성기 시절 남진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다. TBC ‘쇼쇼쇼’의 연출자 황정태 PD를 비롯한 주변의 평가에 따르면, 그는 팝의 리듬을 잘 이해하고 자신만의 감성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히트곡으론 ‘님과 함께’(고고 리듬), ‘마음이 고와야지’(트위스트), ‘둥지’(로큰롤) 등이 있다.
남진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인기에 비해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요즘도 노력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대한민국 1호 팬클럽이 생겨났던 그 시절 10대 소녀들이 지금은 70대가 됐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팬들의 표정은 여전히 소녀 같습니다. 그런 소녀 앞에선 저도 오빠가 되는 거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오를 겁니다. 90대에도 노래한 토니 베넷 같은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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