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범죄 걱정이 호들갑?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 나오나

이진민 2024. 8. 29. 19: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이버렉카 '뻑가'가 보여준 한국의 현주소... 여성들은 '숫자 너머'가 두렵다

[이진민 기자]

구독자 수가 119만 명에 달하는 한 유튜버가 텔레그램 딥페이크 범죄를 우려하는 여성들을 향해 "호들갑 떤다"고 발언해 국내는 물론 해외 네티즌으로부터 강하게 지탄받고 있다.

이밖에도 최근 지인·가족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실상이 수면 위에 올라오며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조롱하는 행태가 SNS에서 반복되는 분위기다.

한 시민은 "세 치 혀로 어떠한 근거도 없이 타인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얼굴을 가린 채 교묘한 편집과 짜깁기로 피해자를 양산한다"며 '본인의 신상을 숨긴 채 타인을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한 유튜버의 행위에 대해 국회 차원의 강력한 제재 요청에 관한 청원'을 게시했다. 해당 청원은 5만8665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무슨 국가 재난이냐, 미쳐가지고" 인기 유튜버의 조롱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 유튜버 '뻑가'
ⓒ Youtube
여성들의 공포를 '호들갑'이라 치부한 인물은 유튜버 '뻑가'다. 그는 지난 26일 자신의 채널에 '중고등학생'이란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서 여성들이 '인스타그램에 얼굴 사진을 다 내려야 한다'는 게시글을 공유하는 상황을 두고 "이렇게 호들갑 떠는 글이 퍼지고 있다"며 "이 짤(사진) 올리고 퍼트리는 사람들은 이런 정보에 밀접하게 반응하고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거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장이 '국가 재난 상황을 선포해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을 언급하며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남혐(남성혐오)하려고 한다. 무슨 국가 재냔이냐. 미쳐가지고"라고 조롱했다.

빽가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단체채팅방 참여자가 22만 명이란 보도 내용에 "전 세계 사람들 다 모여 있는 단체방이다. 수치적으로 한국인의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전 세계에서 0.33%다. (실제 참여자 수는) 22만 명의 0.33%인 726명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한국 남성 혐오가 목적이니까 해외 언론에도 (해당 사안을) 알리고 있다"며 "여성 기자들, 여성 정치인들도 나와서 같은 소리로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뻑가를 향한 국제적인 공분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X에서는 해당 영상을 신고하는 '#뻑가_신고완료'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이에 동의하는 리트윗 수는 약 1.8만을 기록했다.

영상이 국외로 퍼지며 한국 여성을 향한 연대 댓글이 이어졌다. 해외 네티즌들은 "우리는 한국 여성과 함께한다", "영어로 된 댓글이 조작일 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믿기지 않는다",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냐" 등 유튜버를 엄중히 비판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댓글을 남겼다.

"몰카와 싸운 한국, 이제 딥페이크와 싸운다"

"호들갑"이란 뻑가의 주장과 달리 딥페이크 관련 보도가 계속될수록 그 심각성만 커지고 있다. 사이버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딥페이크 성적 영상물 전용' 누리집 상위 10곳과 유튜브, 데일리모션 등에 산재한 85개 딥페이크 채널을 조사한 결과, 성적 영상물에 등장하는 인물의 53%가 한국 국적이었다. 2위 미국(20%), 3위 일본(10%)과도 큰 격차를 보인 '피해자 수 1위' 국가였다.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2018년 4월부터 올해 8월 25일까지 총 2154건의 '딥페이크' 피해 지원에 나섰다. 6년 새 11배 넘게 급증한 수치로 올해 딥페이크 피해자는 1천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참여 인원이 수십만 명으로 파악되는 텔레그램 채널은 여러 곳 폭로됐다. 사진을 넣으면 불법합성물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탑재된 22만 명 규모의 채널이 확인됐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채널에는 4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 누나, 여동생, 가족 등 가족의 모습을 촬영해 공유한 단체채팅방까지 드러났으며, 가해자들이 피해 여성들의 사진이나 각자의 성기 사진으로 내기해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상납'하는 이른바 '지인대결'까지 성행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의 처참한 현실에 외신도 주목하고 있다. BBC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이고 가해자는 10대"라며 "한국은 디지털 성범죄의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전에는 여성이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모습을 촬영한 '스파이캠'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오랫동안 '몰카(molka, 불법촬영)'를 근절하기 위한 투쟁 끝에 한국은 현재 딥페이크의 물결과 싸우고 있다"며 지난 'N번방' 사태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같은 국내외 여론의 흐름과 달리, 딥페이크 성범죄의 사태를 축소하려는 일각의 시도는 온라인상에서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피해자를 혐오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작성자는 "네가 쓰였다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라.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X나 인스타그램상에서 여성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내려라', '자신이 피해자라면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며 공유한 매뉴얼을 조롱하거나 "남성을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는 반응도 발견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22만 명', '40만 명' 등 참여 인원으로 추정되는 숫자를 왜곡하거나 '모든 가해자가 남성은 아니다'라며 사건의 논점을 흐리는 식으로 성별 간 대결 구도로 면피하고 있다.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 등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대응 긴급 대학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성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 여성의 성과 신체를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도구화하고, 여성을 사람이 아닌 왜곡된 성적 욕망을 푸는 사물로 보는 숫자 너머의 '사람'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8일 사진 속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하는 '텔레그램봇' 8개를 확인하고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부는 '학교 딥페이크 대응 브리핑'에서 "딥페이크는 고의적이고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아 처벌 수위가 높을 것"이라 엄중히 경고했다.

한편, 뻑가는 2019년 한 여성 유튜버에 대한 사이버 불링(온라인상 괴롭힘)을 주도해 그와 그의 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괴롭힘을 주도한 건 자신이 아닌 다른 인기 BJ들의 팬덤이었다"고 해명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