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전 국대 이해인 "성추행범 누명 벗고 싶어"…공정위 재심 출석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후배에게 성적 가해를 한 혐의로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3년 자격 정지 중징계를 받은 피겨 전 국가대표 이해인(19)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재심의에 출석한 뒤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벗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해인은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재심의에 출석했다.
이해인은 출석 전 취재진과 만나 "미성년자 성추행범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상황에서는 피겨 선수라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 한 여성으로서 성추행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대표로서 전지훈련에서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면 안 됐는데, 정말 죄송하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큰 잘못이다. 반성하고 있다. 평생 잘못을 뉘우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약 1시간 가량 재심의에서 자기 입장을 소명하고 나온 이해인은 추가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해인 측 법률대리인은 "재심의 결과가 통보되면 추가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해인 무슨 일 있었나?
앞서 이해인은 지난 6월2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징계 받은 이가 자신임을 스스로 알리면서 반성과 함께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선 반박하고 나섰다.
이해인은 "술을 마신 것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미성년자를 성추행했고, 성적 가해(학대)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적 가해에 대한 피해자로 판정 받은 남자 후배는 사실 오랜 기간 사귀었던 연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피해자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사귄 남자친구였고, 부모님 반대로 헤어졌다가 이번 전지훈련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며 "서로를 좋아했던 감정이 남아있어서 다시 사귀게 됐는데,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해인은 이어 "연맹 조사를 받을 때도 그 친구와 교제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성적 행위는) 연인 사이에 할 수 있는 장난이나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했다"며 "대한체육회에서 어떤 징계가 내려지든 깊이 반성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같은 날 밤엔 자신과 남자 후배가 자연스러운 교제 사이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료들을 내놨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총 4개의 게시물을 올렸다. 4개 모두 둘의 SNS 대화를 공개한 것이라는 이해인 주장으로 간주된다.
이해인은 대화물 중 먼저 올린 3개의 제목을 '5/21 다시 사귀기로 한날'로 붙였다. 여기서 남자 후배가 "아가? ㅎㅎ 다른 사람이 다시 사귀냐고 물으면 안사귄다고 해애 ㅋㅎ"라고 하자 이해인(대화물에선 '나')이 "허ㅓ어 그래도 너는 내꺼야"라고 응답했다. 이에 남자 후배는 "알지알지이ㅣ~ 다시 사귀니까 어때ㅐ?ㅎㅎ"라며 교체하게 된 소감을 묻는다.
이에 이해인은 "너무 좋아 뭔가 모든게 제자리로 온 느낌 히히ㅣ"라며 좋은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다시 남자 후배가 "ㅎㅎ 자기가 좋아하니까 좋으네ㅔ"라고 하자 이해인은 "옴마아ㅏ 오랜만에 자기라고 부르니까 기절할꺼 가튼데"라고 화답했다.
공개된 대화물에서 둘은 이내 서로를 '여보'라고 불렀다. 있는 그대로의 내용만 보면 교제하는 사이로 느껴질 만한 것들이다.
두번째 대화물에선 이해인이 "너없이 못 살아 나"라고 하자 남자 후배가 "ㅎㅎ 나도 자기 없음 못살아ㅏ 사랑해 자기야"라며 하트 이모티콘까지 그려넣었다.
세번째 대화물에선 남자 후배가 "지금쯤이면 누나가 아마 귀엽게 자고 있겠지?"라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말미엔 "우리 다시 사귄만큼 정말 예쁜 사랑하자"라고도 했다.
네번째 대화물 제목은 '5/24 키스마크를 선생님이 보신 날'로 돼 있다. 둘 중 한 명의 몸에 키스마크(키스해서 새긴 멍자국 등)가 있고 이를 전훈에 동행한 지도자 한 명이 본 것이라는 이해인의 주장으로 판단된다.
이해인이 공개한 것에 따르면 남자 후배는 "음..우리 여기서(이탈리아)는 최대한 조심이 안만나고 한국 가서 좀 만나도 되? 진천에 가서 좀 만나는거 어때 여기서 내가 운동은 안하고 키스 마크 머 있었다 이러면 너무 내 인생이 끝날거 같아서(중략)"라고 적었다.
이에 이해인이 "자기도 그런 뜻이 맞지? 헤어진다 그런뜻이 아니지?"라고 묻자 남자 후배가 "그런 뜻 아니야 우리 절대 안 헤어져 걱정마 자기야"라고 약속했다.
이해인이 올린 4개의 대화물만 놓고 보면 이해인과 남자 후배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교제를 시작했으며 며칠 뒤 남자 후배의 몸에 이해인의 키스마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짐작하자면 공정위가 거론했던 성적 학대는 남자 후배의 몸에 새겨진 '키스 마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이해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남자 후배도 이해인의 대화물이나 SNS를 통해 밝힌 입장이 사실이며, 이해인과 전훈 중 다시 교제하기 시작했다고 시인해야 하지만 실제론 반대인 것으로 보인다.
미성년자인 남자 후배 측은 관계 정립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인의 성적 행위가 있었고, 이에 많이 당황해 자리를 피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해인이 사후 증거 수집의 목적으로 해당 사건에 관해 질의해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충격받았다"며 "현재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라고도 했다.
남자 후배의 법률대리인 역시 입장문을 통해 "두 선수는 2023년에 약 3개월 동안 교제한 뒤 이별했다"며 "피해자는 이후 이해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지난 달 해외 전지훈련 기간 이해인이 이야기를 하자며 숙소로 불렀고, 이해인이 다시 만나보자는 제안을 해 다음 날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해인의 방을 방문한 날 해당 행위가 이뤄졌고, 피해 선수는 많이 당황하고 놀란 상태에서 곧바로 방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빙상연맹 공정위는 자격정지 3년 중징계 내렸다.
이해인은 SNS 글을 올리기 전인 지난 6월20일 징계를 받았다. 빙상연맹은 당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여자 싱글 국가대표 선수 A에게 미성년자 이성 후배를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3년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또 다른 선수 B에겐 성적 불쾌감을 주는 불법 촬영을 한 혐의 등으로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이 중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A가 바로 이해인이다.
이해인 징계의 발단은 빙상연맹이 지난 5월15일∼28일 이탈리아 바레세에서 진행된 국가대표 해외 전훈에서 비롯됐다. 이후 빙상연맹이 성인인 여자 싱글 국가대표 선수 2명이 자기 숙소에서 맥주를 포함해 여러 차례 술을 마셨다고 밝힌 것에서 비롯됐다.
빙상연맹 강화훈련 지침상 훈련 및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주 행위는 금지됐고 해외 전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당시 연맹 관계자는 "해외 전지훈련도 공식 훈련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만큼 음주 금지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하며 둘을 징계에 회부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때만 해도 두 선수들의 행위는 단순한 음주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인 만큼 음주운전은 아예 할 수 없었고, 숙소 등에서 소란을 피우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맹 측도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운 사실은 없다. 단순 음주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했다.
다만 둘 외에도 징계 대상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술을 마신 두 여자 선수들의 숙소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남자 선수가 하나 있었다.
이 남자 선수가 이해인이 성적 가해를 한 피해자(남자 후배)라는 게 6월 빙상연맹 공정위 결과다. 그러면서 사건은 성추행으로 매우 커졌다.
빙상연맹은 2년 앞으로 다가온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피겨 국가대표 해외 전지훈련을 계획했고, 올림픽이 열리는 밀라노에서 70km 정도 떨어진 바레세를 다녀왔다. 빙상연맹 의도와는 다르게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음주 사실이 먼저 알려졌고, 이어 성추행 사건까지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해인은 이성 후배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서 성적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했으며, B는 이해인의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진을 찍어 피해자인 남자 후배에게 SNS 메신저로 보냈다는 게 빙상연맹 공정위 판정이다.
빙상연맹은 이해인과 B를 중징계했고, 남자 선수에겐 이성 선수 숙소에 방문한 것이 강화 훈련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 견책 조처했다. 아울러 전지훈련 지도자 D씨에겐 선수단 관리 부주의로 3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연맹은 두 선수의 행위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스포츠윤리센터에도 신고하기로 했다.
이해인과 B 등 징계 대상자들은 상위 단체인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끝에 29일 출석했다.
재심에서도 두 선수의 행위가 사실로 확인되면 연맹 징계를 떠나 선수 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해인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싱글의 메달 후보로 각광받던 기대주였다.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한국 선수로는 14년 만에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같은 해 ISU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획득, 10년 만에 한국 여자 피겨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DB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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