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섭 검사, 재판관 전원일치 탄핵 기각…민주당 책임론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로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53·사법연수원 32기)를 파면하지 않는다고 29일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지 9개월 만이다.
이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문형배·이미선)했거나 야당(김기영·이영진)과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은애)이 지명한 재판관 5명도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탄핵을 남발한 더불어민주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헌재는 이날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 검사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헌재는 “탄핵소추 사유 중 일반인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 (대기업 임원과 식사 모임 등) 청탁금지법 위반, 동료 검사들에 골프장 예약 편의 제공, 처남 마약 수사 무마 의혹 부분 등은 행위의 일시·대상·상대방 등 구체적 태양(모양이나 형태), 직무집행 관련성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소추 사유가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해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회가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의혹들을 탄핵 사유로 삼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국회가 소추 사유의 구체적 내용 등을 조사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면서도 “국회법상 조사 여부는 국회의 재량”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 검사가 받는 다른 탄핵소추 사유인 ▶코로나19 집합금지명령 위반 ▶자녀 진학용 위장전입 등에 대해서는 “검사의 지위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아니다”며 “직무집행과 관계 없는 행위는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헌재가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살핀 탄핵소추 사유는 2020년 8월 이 검사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 사건 재판에서 당시 김 전 차관의 ‘스폰서’로 지목됐던 사업가 최모씨를 증인신문 전에 면담한 사실에 대해서였다. 국회는 검사의 증인 사전면담 행위가 헌법과 구 검찰청법,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관 7인과 2인의 의견이 갈렸다.
이종석 헌재 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7인은 “검사의 증인 사전면담이 무제한 허용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사건 기록만으로는 위법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거나 “증인신문 전 증인 면담을 금지하는 법령이 없다” 등의 이유로 이 검사가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사전면담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 헌법상 공익실현 의무를 위반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이 사건 사전면담은 증인에 대한 검사의 회유 내지 압박이 있었다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두 재판관은 “법 위반이 이 검사를 파면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봤다. 헌법재판소법상 탄핵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에 가능하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탄핵 시도가 기각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 5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안동완 검사(54·사법연수원 32기)의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됐다. 당시엔 재판관 의견이 탄핵 기각 5, 탄핵 인용 4로 팽팽히 갈렸다.
이 검사의 각종 비위 의혹은 지난해 10월 김의겸 당시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처음 제기했다. 이 검사가 지난해 9월 검찰 인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수원지검 2차장으로 발령난 직후다. 제보자였던 이 검사의 처남댁 강미정씨는 총선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으로 영입됐다.
이날 만장일치 기각 결정에 대해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명예교수(헌법학)는 이날 “당연한 기각”이라며 “이번 탄핵 시도는 헌법기관인 국회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대표) 수사 검사를 대상으로 한 탄핵 시도는 형사사법체계를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두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여권에선 민주당을 향해 사법 테러를 사죄하란 요구가 나왔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성명에서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담당했던 이 검사 탄핵 시도는 수사 검사에 대한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사법 테러”라며 “민주당의 아니면 말고 식의 표적 탄핵은 중단돼야 하며, 사법 체계를 농락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검사 탄핵을 추진했던 민주당 법제사법위원들은 이날 입장문에서 “헌재와 국민의힘 선임 대리인은 이 검사 의혹에 대한 실체적 규명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향후 수사 및 검찰의 감찰 결과에 따라 검사 탄핵 여부를 다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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