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증오하는 대통령, 이러다 반도체까지 위험해진다

조명래 2024. 8. 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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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의 직필] 재생 에너지 투자 소홀... 녹색 반도체 경쟁에서 밀릴 수도

[조명래]

 원전이 아니면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댈 수 없다는 윤 대통령
ⓒ KTV
2024년 1월의 한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은 이제 필수'라며 '탈원전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저러한 인식을 가진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고 있다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현실은 대통령의 인식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멕킨지는 미래의 반도체로서 '녹색 반도체'의 국가 경쟁력을 비교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이하 '재생e') 확보가 어려워 한국이 최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유치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경쟁국에서 탄소국경세 등을 적용한다면 한국의 탄소 집약적 반도체 수출은 더욱 불리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한다. <신냉전 시대, 한국에 주어진 기회와 리스크: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공급망 분석>이란 보고서를 펴낸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탄소중립 산업정책 연구소는 한국이 미래 산업정책에 에너지 정책을 맞추지 않으면 '한강의 기적'은 이젠 옛 얘기가 될 것이라 했다.

원전 맹목주의 득세
▲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 김보성
현 집권 세력은 실체도 불분명한 '탈원전'(80여 년간 추진될 정책 대상)을 정치적 적대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대척점에 원전(의 회복)을 두고 있다. '오로지 원전을 위한 원전'에만 베팅하는 모양새는 탈원전에 대한 깊은 적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원전으로 회귀'에는 퇴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탈원전을 이념적이라고 비판했던 친원전주의자들의 원전에 대한 믿음은 더 맹목적 이념에 물들어 있는 듯하다. '원전의 복원과 정상화'를 현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대통령의 반역사적 인식은 이를 명증이 보여주고 있다. 원전 맹목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대안(예, 재생e)은 철저히 배척될 수밖에 없다.

원전 회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대안에 대한 배척'이란 역작용이다. 용산 대통령실 내에서 'RE100을 공공연하게 떠들지 못한다'는 얘기는 이 역작용의 실체를 풍문으로 전해준다. 원전 정책을 돕는 한 전문가가 'RE100은 탈원전의 다른 얼굴'이라고 오독을 범하는 데서 그 역작용의 심각성을 엿보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원전 비중은 대략 30%로 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하지만, 재생e(태양광, 풍력)는 세계 평균(13%)의 반(약 6%)에도 못 미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 중립이 실현될 2050년에 이르면 전체 에너지 중 재생e가 88%, 원전이 8%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전은 중요한 무탄소 에너지원이지만, 그것으로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없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서도 원전은 태양광과 풍력에 비해 온실 순 배출량 감소에 대한 잠재적 기여도는 더 적고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전 세계가 재생e 중심의 에너지 전환에 집중하는 데는 이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2023년 전 세계에 새로 지어진 원전은 5.5GW, 재생e는 537GW로 100배 차이가 난다. 투자 규모로 보면 원자력은 800억 달러, 재생e는 1조 8920달러(효율, 그리드, 저장 포함)로 10배 차이가 난다. 에너지 투자의 대부분이 재생e 부문에 집중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은 가격이 급격히 내려가면서 주류 에너지로 급부상하는 것이다.

원전은 누적 용량이 증가할수록 발전단가가 커지지만, 재생e는 그 반대다. '세계 원전 산업 현황보고서(WINSR)'에 의하면, 2023년 원전의 발전단가는 $180/MWh로, 풍력 및 태양광의 $50-60/MWh보다 3배 비싸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책연구원 등의 연구에 의하면 2030년 전후로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가 실현되어 재생e 값이 전통에너지 값보다 더 내려갈 것이라 한다.

이런 추세에 역행하여, 원전에 대한 의존을 인위적으로 높일수록, 국민 경제는 안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싼 에너지에 더 의존하게 되어, 국가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 누구나 에너지 미래를 이렇게 보고 있지만 현 집권 세력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원전에 올인(all-in)하기 위해 현 정부는 원전 지원 관련 예산을 15배 가까이 늘리지만, 재생e 부문은 반토막으로 줄였다. 그로 인해 매년 새로 설치되는 재생e 시설용량도 2020년 4.7 GW에서 2023년 2.7GW로 반토막 났다. 윤 정부가 수립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36년 '재생e 45.8%(발전용량 기준, 발전량 기준은 30.6%)' 목표 달성을 위해선 매년 최소 6GW(태양광+풍력)가 설치되어야 하지만 결코 실현하지 못할 것 같다.

RE100 수요 등을 감안하면 2030년 재생e의 비중을 50%(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1.6%)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하려면 연간 발전시설 용량을 현재보다 5배 이상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해도 유럽, 중국 등 에너지 선진국을 못 따라간다. 늘려도 시원찮은 재생e 투자(용량 기준)가 오히려 쪼그라들면서 생성 중인 '재생e 산업 생태계'는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투자하면 재생 에너지는 싸진다
 대부분의 선진국과 중국, 인도 등에서 가장 저렴한 발전원은 이제 풍력, 수력,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이다. 반면 우리는 아직도 석탄 화력이 가장 저렴하다.
ⓒ 셔터스톡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e의 조달 비용은 미국, 유럽, 중국 등의 1.5~3배에 달해 경쟁국 중 최고 수준이다. 국토 협소, 일사량 부족 등으로 설치비 등이 많이 들어 비쌀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저렴한 원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원전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재생e가 부족하고 비싼 까닭은 '투자하지 않은 결과'다. 분산형에너지인 재생e의 시설과 인프라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구축되면, 설치비도, 발전단가도 급속히 떨어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일사량이 부족하다는 우리나라의 면적당 일사량은 실제 영국이나 독일의 1.4~1.5배고, 태양광·풍력 기술 잠재량은 1712GW로 현재 발전 시설량 133GW의 13배에 이른다. 이를 저렴한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것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때까지의 '지속적인 투자'에 달려 있다.

2002년 원전 비중 30%, 석탄 발전 비중 50%였던 독일은 20년 만에 원전과 석탄 발전을 줄이고 재생e 비중을 8%에서 45%까지 늘렸다. 이는 재생e에 대한 범국가적 차원의 장기적 투자 결과다. 재생e 비중이 8%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10만 명의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육성되었다면, 45%를 넘어선 독일에선 백만 명이 넘어선 지가 이미 오래전이다. 전체 재생e 중 소규모 분산형(예, 건물 태양광) 비중이 10% 미만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선 60%에 육박한 것은 범국민적 참여를 통해 재생e 중심의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싸다는 이유로 원전에 올인하면서 재생e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저렴할 수 있는 재생e는 결코 저렴할 수 없다.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 재생e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가 있는 기업들은 저렴한 재생e를 찾아 다른 나라로 나갈 수밖에 없다. RE100 참여를 선언한 글로벌 대기업일수록 그러하며, 반도체 기업이 대표적이다. 국내 RE100 기업들의 재생e 사용 비중은 9%(글로벌 RE100 기업의 평균은 50%)에 불과할 정도로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재생e 전력을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RE100 대기업만 아니라 탄소국경세나 공급망 규제로부터 영향받는 모든 중소기업도 재생e가 필요하지만, 조달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역협회 조사에 의하면 수출기업 5개 중 하나(약 17%)는 공급망을 통해 재생e 사용을 요구받고 있다. 대응을 제때 못하면 수출액이 40%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재생e 조달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대통령은 '원전 없다면 반도체도, 첨단산업도, 그 미래가 없다'는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다. 깨어보니 '기후 후진국'은 윤석열 정부하의 대한민국 모습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절체절명의 문제다. 그 대응으로서 '2050 탄소중립'은 모든 국가의 책무다. EU 등 앞선 나라들은 탄소중립을 사회·경제 시스템의 혁신 기회로 삼고 정책 자원을 집중시키고 있다. 화석연료 기반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재생e 기반으로 전환하는 게 혁신의 핵심이다.

자연의 에너지로서 재생e는 고갈이 안 되고, (장기적인) 생산의 한계 비용이 제로에 가까우며, 자연과 사람을 상생할 수 있게 하는 특성이 있다. 이 특성 때문에 재생e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 패러다임은 종전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그 전환을 디지털혁명(제4차 산업혁명)에 이은 '제5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이 시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대 덕목은 위기 상황을 올곧게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저러한 혁신을 국민과 함께 도모하는 것이다. 전환적 리더십이 전에 없이 기다려지는 때다.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
ⓒ 조명래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명래 교수는 단국대 석좌교수로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 한국환경연구원 제11대 원장으로도 활동했다.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이끈 주역인 조명래 교수는 퇴임 후 국내 특수대학원 최초로 신설된 단국대 탄소중립학과 교수로 다시 강단에 서 전문가 양성을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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