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남자의 액션은 지루하다? 당신의 편견일 뿐

안치용 2024. 8. 2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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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원맨>

[안치용 기자]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리암 니슨이 주연이고,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다시 총을 든 전설의 킬러" 같은 홍보 문안을 보면 대충 전말을 짐작할 만한 액션영화려니, <원맨>을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예컨대 다음의 글을 읽어보자.

"그가 다시 돌아온다! 의뢰를 받아 타겟을 처리하는 베테랑 청부살인업자 '핀바 머피'. 마지막 의뢰를 해결한 뒤,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자 은퇴를 결정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정체불명의 괴한이 들이닥치고, 그들 중 하나가 이웃의 소녀를 학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핀바 머피'는 그 소녀를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들고..."

'전설의 킬러' 리암 니슨의 은퇴와 복귀

리암 니슨은 오랜 기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한 '원로 배우'다. <테이큰> 시리즈 등 주로 액션물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 관객은 <원맨>의 홍보카피가 말하듯 '돌아온 킬러' 같은 이미지에 익숙하다. 1952년생이니까 70살이 넘었다. 액션배우로는 노익장인 셈이다.

<원맨>은 크게 보아 이 노익장에게 익숙한 기존 킬러 액션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결이 다르다면 다르다. 영화에서 '올드 맨'이란 대사가 등장하듯 극중 핀바 머피로 분한 리암 니슨은 (실제 노인이기도 해서) 노인 킬러를 연기한다. 사실 화려한 액션은 이제 그에게 어울리지 않고, 아마 소화하기도 어려울 터이다.

연출하는 입장에서도, 예컨대 국내에 개봉한 인도 영화 <킬(Kill)> 같은 성격의 작품이라면 젊고 생생한 배우를 투입해 무차별 살상과 화려한 몸싸움을 벌일 테지만, 70대 남자를 주연으로 내세워 피가 철철 흐르는 그런 유의 액션에 집중하기는 좀 아니지 싶다.
 영화 <원맨> 스틸컷
ⓒ 이화배컴퍼니㈜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또 그 직업이 살인청부업자라 해도, 나이가 들면 성숙하고 모종의 경륜을 쌓게 된다. OTT 영화 <폭군>에서 차승원도 나이 든 킬러를 제법 구수하고 원숙하게 연기했다. 출생을 기준으로 하면 차승원이 1970년생이어서 사실 아직 노인 소리를 들을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폭군>에서 차승원이 연기한 초로의 킬러는 나름의 달관 같은 것을 보여준다.

리암 니슨은 실제 나이로나, 배우로서 '연식'으로나, 또 킬러 역에 익숙한 정도로나, 달관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할 '킬러'이자 원숙한 배우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진 않지만, 세월은 인간을 조탁한다.

제작과정에서도 니슨의 경륜이 힘을 발한다. 보통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 감독이 정해지고 감독이 출연 배우를 물색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주연이 감독을 선택했다. 제작사는 <원맨>의 초고를 읽은 리암 니슨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로버트 로렌즈를 찾아가 감독을 제안했다는 후문을 전한다. 보이는 대로, 배우가 감독을 간택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2021년 개봉한 <마크맨>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이 인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은퇴한 늙은 킬러가 나오는 영화에서는 대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제 사람 그만 죽이고 조용히 살려고 했더니, 철없고 잔혹한 범죄자가 나타나 은퇴한 킬러 주변의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고... 그다음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스토리다.

<원맨>은 비슷한 듯 다르다. 일단 스테레오타입은, 늙은 킬러 핀바 머피가 마지막 청부살인을 저지르고 은퇴한다. 오랜 단골이라고 할까, 살인 의뢰인이 은퇴를 말리지만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마지막 청부살인이 은퇴의 계기가 된다. 사실 계기라는 건 될 때가 돼서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게 하는 표지에 불과할 때가 많다. 핀바 머피의 마지막 청부살인 대상이 총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총을 든 사람에게 건넨 몇 마디가 핀바 머피의 마음을 흔든다.

은퇴 후의 삶은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 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관객이 예상한 대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한이 등장한다. 이후 해법은 늙은 킬러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우선 용서할 수 없는 악한에 대한 그의 첫 대응이 직접 응징이 아니다. 핀바 머피는 살인 청부를 받던 입장을 의뢰하는 입장으로 바꾸어 그의 살해를 '단골'에게 의뢰한다. 살인청부업자가 살인을 청부한 것이다. 대상이 IRA이기에 의뢰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당하자 핀바 머피가 이때는 큰 망설임 없이 직접 처리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핀바 머피에게 살해당한 악한은 IRA 조직원이었다. 영국 점령 상태인 북아일랜드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핀다 머피가 있던 북아일랜드 서쪽 해안 마을 글렌콜름킬로 잠적한 IRA의 일원이었다. IRA 하면 지금이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을 떠올릴 테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4년엔 영국의 북아일랜드 지배에 맞선 아일랜드 무장단체(Irish Republican Army)로 명성이 자자했다.

극중 시점은 영국군 공수부대가 데리 시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인 비무장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민간인 13명이 죽은 1972년 '피의 일요일(블러디 선데이)' 사건 발발 2년 뒤였다. 영화 시작과 함께 묘사된 테러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영화 <원맨> 스틸컷
ⓒ 이화배컴퍼니㈜
테러의 주모자는 케리 콘돈으로 리암 니슨이 응징한 악한의 누나이다. 그가 리암 니슨으로부터 단죄를 받은 악행은 소아성애였다. 극중에서 케리 콘돈은 폭탄테러의 와중에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자 자신이 노출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을 구하려고 애쓴다.

북아일랜드 독립을 염원하는 투사이자, 휴머니스트인 케리 콘돈이 동생의 죽음에는 이성을 잃고 복수에 몰입하는 모습을 영화는 그린다. 케리 콘돈은, 연기 내용이 다르고 다루는 주제도 다른 <이니셰린의 밴시>에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남겼는데, 그 장면과 겹쳐 보였다.

선인과 악인

리암 니슨은 "액션에 중심을 두면서도 영상미와 스토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로버트 로렌즈 감독은 "<원맨>은 '핀바 머피'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한국어 제목은 '원맨'인데, 원제는 '죄인과 성자의 땅에서(IN THE LAND OF SAINTS AND SINNERS)'다. 제목과 감독 및 주연 배우의 말에서, 이 영화가 액션영화 이상을 의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는 리암 니슨이 연기한 늙은 킬러 말고 젊은 킬러가 나온다. 킬러 사이에 세대차이가 있다. 젊은 킬러와 달리 리암 니슨은 여자를 죽인 적이 없다. 킬러이지만 아이의 고통을 묵과하지 못하고 보수적인 남성상 그대로 여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 영화적 설정은 그런 리암 니슨이 여성과 대결하게 만든다.

케리 콘돈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열혈 독립투사이지만, 동생의 일이라면 이성 상실에 분노조절 장애를 보인다. 킬러가 생업인 리암 니슨과 달리 대의에 따라 살상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인간다움의 조건엔 공통적이라고 할 만한 기준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리암 니슨은 언명한 대로 끝까지 여자를 살해하지 않는다. 대적한 케리 콘돈을 동생과 함께 묻어주는 아량을 보인다.
 영화 <원맨> 포스터
ⓒ 이화배컴퍼니㈜
로렌즈 감독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이유를 가지고 있다"며 <원맨> 속 모든 등장인물의 도덕적인 행동과 선택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액션영화에 도덕적 선택이란 말이 등장했으니 기실 이 영화를 '하드보일드'라고 보기 힘들다. 그는 "<원맨>의 주인공 핀바 머피는 사람을 죽이는 킬러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을 지키기 위해 희생이라는 선택을 하는 숭고한 인물이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살인과 폭력은 일상으로 제시된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미 무너졌고, 누구를 죽일지만을 고민하며 거기에 도덕과 신념이 개입한다. 살인자라는 측면에서 그들은 모두 죄인이고 또한 살인을 통해 대의와 가치를 지키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무리하면 성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의인이자 죄인이란 마르틴 루터의 말을 떠올린다면, 이 영화가 감독의 의도대로 핀바 머피의 구원을 논한다는 해석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구원과 액션이 제대로 결합했는지 아니면 겉돌았는지 하는 판단만 남는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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