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숨기고 싶은 시설 뭐길래…자강도만 쏙 빼고 시찰 돈다

정영교 2024. 8. 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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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침수 피해지역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최근 고무보트까지 타고 직접 수해 현장을 누비며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여념이 없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선이 이상하다. 평안도만 맴돌 뿐 정작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압록강 유역 자강도는 찾지 않았는데, 숨기고 싶은 게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6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지난달 말 북한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수해와 관련해 "실제적 물적 피해가 많은 곳은 자강도로 분석된다"며 "실질적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한 자강도에 대해 일절 언급과 외부 노출이 없다. 상당히 흥미롭고 특이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군수공업 관련 시설들이 집중된 자강도의 특성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자강도는 북한 군수공업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무기 관련 시설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내 무기 연구·생산 시설의 절반 이상이 자강도에 몰려 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김정은으로선 외부에 노출돼선 안 되는 군수산업의 심장부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관련 시설은 자강도의 도청 소재지인 강계시를 비롯해 희천시, 만포시 일대에 밀집돼 있다. 대표적인 군수공장으로는 미사일과 각종 포탄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계트랙터공장(26호공장), 미사일 제어기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청년전기연합기업소(38호공장), 미사일 발사대를 생산하는 성간강철공장(81호공장), 소총·기관총·탄약을 생산하는 강계정밀기계종합공장 등이 있다.

자강도는 일제 강점기에 만포선이 부설되며 철도 교통이 발달했고, 산지가 대부분이라 무기 생산에 필요한 각종 지하자원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또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외부에서 무기개발에 필요한 자재를 조달하기 쉽다. 무기 생산에 적합한 전략적인 지정학적 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군수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북한이 러시아로 포탄과 탄약, 미사일 등을 대거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자강도를 비롯한 북한의 군수공장은 '풀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며 소총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이 자강도 수해 현장을 찾지 않고, 북한 관영 매체들이 자강도의 수해 사실을 쉬쉬하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기밀 시설이 외부로 알려지는 부담도 있지만, 러시아로 보내는 각종 무기 생산의 거점인 자강도의 수해는 곧 대러 납품 무기의 양과 질에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자강도의 시설 상당수는 은닉을 위해 지하화가 이뤄졌는데, 상당한 침수 피해 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강도에는 북한의 핵·미사일은 물론 재래식 무기 관련 주요 군수시설이 밀집돼 있다"며 "특히 기록적인 강수량을 기록한 이번 폭우에 지하갱도 형태로 구축된 주요 군수 시설이 침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군사용 무선제어 장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강도 성간군 일대의 11호 군수공장의 경우 지난해 8월 남쪽 갱도가 침수돼 큰 피해를 입었다고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가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자강도가 김정은이 직접 수해 현장을 살핀 평안북도에 비해 교통 여건이 불편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북한 대외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북·중 교역의 거점인 신의주를 중심으로 철도·도로 물류망이 비교적 잘 갖춰진 평안북도와 달리 화물 운송에 집중된 자강도 내륙 지역의 교통망은 미비한 편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평안북도 의주군의 수해 현장을 재차 방문한 조선중앙통신 사진에서, 전용열차 내부에 최신형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MATIC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추정되는 차량이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는 곧 북한 입장에선 '1호 행사'의 의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움직이는 집무실로 불리는 김정은 전용열차를 동원하는 등 빅 이벤트성 행사를 치르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시찰 지역에서 제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노동신문은 지난 18일 자강도와 양강도 지역의 수해 복구 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폭우 피해로 지강도 지역의 철도 운행이 중단됐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신문은 이날 "240여 km에 달하는 도로가 열리고 동신-강계 철길이 복구됨으로써 자강도의 큰물(홍수)피해 복구 성과를 확대할 수 있는 전망이 열렸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이 잠수함 13척을 국제해사기구(IMO)에 최초 등록했다가 지난 28일 관련 보도가 나오자 이를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IMO 국제통합해운정보시스템(GSIS)에 등록됐던 북한 잠수함 13척은 28일 오후 일제히 삭제됐다. 선박 등록은 IMO 회원국 정부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잠수함 등록 삭제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VOA 측의 분석이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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