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푸쿠이 “내년 상반기 윤 대통령 방중 후 시 주석 방한이 현실적”
한·중 정상의 상호 방문 재개와 관련해 중국의 의중이 드러난 발언이 나왔다. 한·중 수교 32주년을 맞아 지난 27일 21세기한중교류협회와 중국인민외교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24차 한중지도자포럼에서다. 중국 측 발제자인 닝푸쿠이(寧賦魁) 전 주한 중국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제 방중을 제안했고, 토론에 참석한 중국 관변학자들도 적극적으로 거들었다.
첫 세션의 주제가 ‘한중일 정상회담 이후 한중 관계 발전 방향 및 과제’였던 만큼 차기 한·중 정상회담은 이날 토론의 최대 화두였다. 닝푸쿠이 전 대사는 발제에서 최근 한·중 간 고위층 교류 활성화로 인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한·중 양국 지도자 상호 방문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닝 전 대사는 이어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경주에서 열린다”며 “상반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방중하고, 하반기에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 중국 관영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 소속 둥샹룽(動向榮) 연구원과 왕쥔성(王俊生) 연구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둥 연구원은 “만약 내년 상반기에 윤 대통령의 방중이 성사돼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11월엔 시 주석의 경주 APEC 참석뿐만 아니라 국빈방문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왕 연구원도 “만약 양국이 내년에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성사하지 못하면 2026년엔 더 어려워진다”며 시기적 촉박함을 강조했다.
이에 한국 측 발제자인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 방중 당시 있었던 외교적 홀대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과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한한령(限韓令) 조치 등을 우려점으로 꼽았다. 남 원장은 “한국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윤 대통령께 선제적인 중국 방문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고하려면 중국 내에서도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 원장은 중국이 북·러 간 밀착을 역내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재중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는 등 한·중 상호 신뢰 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앞서 발제에서 “2016년 사드 배치 후 한국은 한한령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고, 중국의 이미지도 크게 손상됐다”며 “양국은 지난 7년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중 관계 발전이 상충하는가’를 두고 양국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중국 측 패널은 “한·중 관계를 방해하는 건 한·미 동맹이 아니라 대중 억제 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이라고 선을 긋는 한편 “대만과 남중국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미국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만큼 미국의 거점이 아닌 자주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측 패널인 김영배 국회외교위원회 간사는 “이제 중국은 G2이고 한국도 글로벌 톱 10 수준의 국가가 됐으니 한·중 모두 상대국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전략적 조율이 필요하다”며 “이제는 중국도 한국의 핵심 이익을 어떻게 존중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발제에서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는 상충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남성욱 원장은 “한·미도 북·중처럼 혈맹이지만 양국의 이익이 100% 일치하는 건 아니다”라며 “중국은 한국과 미국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미국과의 문제는 중국이 직접 대화하고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팽팽한 토론이 오갔다. 중국 측 패널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일관된 주장과 태도가 한반도 사안에 수수방관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지금은 긴장 완화가 우선이고, 상황이 변해야 중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자 한국 측 패널의 반박이 이어졌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북한 경제를 좌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중국보다 영향력이 큰 나라는 없다”며 “중국은 한반도 평화를 해치지 않으면서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에 데려올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못 박았다. 또 그는 “북핵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한·중의 미래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심윤조 전 국회의원은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해 “북·러 밀착을 견제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 지원은 지역의 불안을 가중하는 요인이므로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안과 대만해협 이슈에 대한 시각차도 드러났다. 중국 측은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에서 한국이 미국에 동조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한국 측은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평화 안정 문제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피력했다. 그 밖에도 하태경 전 국회의원은 한국인들이 대만의 독립을 부정하는 중국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오랜 분단으로 남북한 통일을 원치 않는 세대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관계 개선과 협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언도 쏟아졌다. 한·중 청소년 교류 증진, 민간 교류에 대한 정부·민영기업의 투자 확대, 민간 교류 영역 확장, 상호 간 비자(VISA) 절차 간소화, 한·중·일 고문서 공동 연구 및 데이터 협력, 한·중 FTA 2차 협상 가속화 등 방안이 제시됐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는 “최근 전 세계적인 관심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며 “중국이 경제·군사 강국뿐만 아니라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매력적인 한국과 손잡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보윤 21세기한중교류협회 법률고문은 “미·중이 경쟁 관계이지만 여전히 협력하는 것처럼 한·중도 마찬가지”라며 “평화의 시대를 토대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교류·협력의 룰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지난해 여전히 경직됐던 분위기와는 달리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는 평가가 한·중 대표단 모두에게서 나왔다. 또 한·중 관계의 전망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장은 이날 개회식에서 “최근 활발해진 한·중 간 고위급 소통은 양국 관계가 다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양국이 가슴을 열고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태도로 미래로 나아간다면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최근 한·중 간 분위기가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며 “이런 시기에 전통적으로 우의가 두터운 양국의 두 단체가 포럼을 연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축사에서 밝혔다. 중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외사위원회 부주임위원(장관급)인 왕차오(王超) 중국인민외교학회장도 축사에서 “지금은 중·한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중요한 시기”라며 “중·한 양국이 긍정적인 요소를 확대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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