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못한다'는 아이가 입을 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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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숙 기자]
처서(8월 22일)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그저께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좀 선선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9월입니다. 그때쯤이면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도 지난 이야기가 되겠지요.
지난여름을 돌아봅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 더웠지요. 덥고 습해서 그야말로 '찜통'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에 일을 했습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 특강으로 글쓰기 교실을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지도했습니다.
찜통더위의 나날
▲ 책 읽는 소녀상 |
ⓒ 이승숙 |
여름방학도 이제 끝났습니다. 글쓰기 특강 때 만났던 아이들은 다시 학교를 다니겠군요. 그때 만났던 학생들이 떠오릅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많이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아이입니다.
여름방학 특강, 글쓰기 교실
첫 날 수업을 할 때였습니다. 4학년 반에 들어갔더니 교실이 꽉 찬 듯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전교생이 43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지만 4학년은 10명이 넘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얼굴을 익혔습니다.
▲ 초등학교 놀이터의 그네 |
ⓒ 이승숙 |
"OO야,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니? 선생님은 베트남을 여러 번 여행했는데, OO는 베트남 어디서 왔니?"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는데도 OO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며 천천히 다시 말을 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베트남 아이
"OO야, 선생님이 가본 곳은 하노이, 호치민, 다낭, 냣짱, 닌빈... "
내가 가본 곳들의 이름을 말하자 OO가 입을 뗐습니다.
"닌빈..."
"어? 닌빈에서 왔어?"
▲ "하노이는 베트남의 서울." |
ⓒ 이승숙 |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OO가 베트남 말로 글을 썼습니다.
"이 글자가 닌빈이야?"
"네..."
"이건?"
"람동."
람동도 들어본 듯한 지명입니다.
"얘들아, OO가 살다가 온 닌빈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꽃도 많이 피고, 올록볼록한 산이 많아 참 아름다운 곳이야."
그러자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베트남어로 쓰고 한국어로 알려주고
"OO야, 베트남 말 '닌빈'은 한국말로 이렇게 쓰고, '람동'은 이렇게 써. 선생님이 한국말로 써줄 테니 따라서 써 볼래?"
그렇게 한국말과 베트남 말로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한글로 "나는 고OO입니다"를 써주고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베트남 말로는 어떻게 쓰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OO가 베트남어로 '나는 고OO입니다'를 썼습니다. 그렇게 한글과 베트남 말을 번갈아가며 글을 쓰도록 알려주고 다른 아이들이 쓴 글을 보러 갔습니다. 내가 관심을 기울여주자 OO가 달라졌습니다.
▲ 아는 한국어로 글을 썼다. |
ⓒ 이승숙 |
그러자 아이들이 OO에게 다가와서 칭찬을 합니다. "이야, OO 진짜 훌륭한데?" 그렇게 말하며 엄지 척을 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살짝 안아주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OO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안아주며 칭찬하는 아이들
다음 날 학교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OO가 달려와 인사를 했습니다.
"OO구나. 고OO, 안녕!"
이름을 불러줬더니 OO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 놀이터의 철봉 |
ⓒ 이승숙 |
남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국말을 몰라 표현할 수 없으면 저절로 주눅이 들고 위축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비참하고 불행합니다. 한국에서 사는 외국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몰라 그런 불행감을 느껴서는 안 되겠지요.
한국어 교실이 있어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OO를 보며 했습니다. 그러면 외국에서 온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생활에 잘 적응 할 수 있겠지요.
오늘도 OO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있겠지요. 오늘은 어떤 말을 배우고 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요? OO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한국말을 잘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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