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에 반대하지 않아도 주민이다
[김우창 기자]
현장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가 가진 문제 의식과 비슷한 논문을 읽게 되었다. 황정화의 박사학위논문 <지방공간정치와 주민주체의 형성: 원자력발전소주변지역 울진 북면 연구>는 나에게 위안과 고통을 동시에 주었다. '그래, 이게 좋은 현장 연구지'라는 위안도 잠시, '내가 이 논문보다 더 잘 쓸 수 있을까', '이 연구와 차별적인 주제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뒤따랐다.
기존 핵발전소 주민을 다룬 연구들은 그들이 탈핵운동하는 순간에 주목하여 '핵마피아에 저항하여 싸우는 사람', '에너지전환을 이끄는 이상화된 존재'로 바라볼 뿐 그들의 일상이나 삶에 주목하지 않는다. 반대로, 핵발전소를 지지하거나 찬성하는 주민에 대해서도 '돈과 지원금'을 밝히는 사람 혹은 '위험과 이익을 교환하는 사람'으로 호명할 뿐, 왜 그들이 핵발전소를 지지하거나 찬성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황정화의 울진 북면 연구는 나에게는 나침반이었지만 나는 그 논문을 조금이라도 뛰어넘어야 했다. <탈핵잇다 시즌2>를 하면서 황정화를 떠올렸고 그는 흔쾌하게 인터뷰를 허락했다. 2024년 8월 6일 저녁에 만나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는 모른 척할 수도, 아닌 척할 수 없던 위험
그의 정치학박사 학위논문 주제가 핵발전소인 만큼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는 언제부터 핵발전소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부끄럽지만 원자력발전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지는 못했어요. 반핵운동이라는 게 생겼던 시기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인데 제가 그걸 겪었던 세대는 아니거든요. 제 삶에서 원전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후쿠시마 사고죠.
2011년 3월 11일, 누군가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던 하루가 그에게는 어쩌면 평생을 바꿀 하루였다. 황정화는 이 사고를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체르노빌사고도 알고는 있었어요, 발전소 돔이 시멘트로 덮여있는 걸 본 적 있어요. 근데 후쿠시마 사고는 폭발할 때 영상을 직접 뉴스로 봤어요. 원자로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후쿠시마 사고가 저에게 직접적인 위험으로 느껴졌어요. 가시화된 위험에 대해 이제는 '모른 척할 수 없구나, 아닌 척할 수 없구나, 앞으로도 나는 결코 안전해질 수 없을 거다'라는 두려움이기도 했어요.
황정화는 '전기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전기가 만들어지는 지역, 핵발전소 주변에선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와 같이 그동안 고민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에너지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제가 원전이 얼마나 많은 나라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참 어처구니가 없었죠. 매일 전기를 쓰며 살아가는 우리가, 이 전기가 어디에서 생산되는지 전혀 모른 채 살고 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국가가 이 공간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거죠. 그러한 위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났어요.
후쿠시마, '지방'과 '환경'을 고민하기 시작하다
2011년 3월에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했고, 황정화는 2012년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후쿠시마 사고가 그의 학업에도 영향을 준 것일까?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분명한 목표 의식은 없었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저에게 어렴풋이나마 질문을 줬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자각, 내 일상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가 어떤 공간 속에 설치되고, 그 인프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죠. 그런 생각을 하니, 지방공간과 환경문제를 연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방의 환경문제를 새롭게 보고 싶어졌던 거죠.
지방과 환경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갖고 2년간 학위과정(course-work)을 보내면서, 그는 핵발전소에서 살아가는 '주민'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황정화가 '지역주민'에 호기심을 넘어 진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이유와 과정은 흥미로웠다.
정치학에서 '지역주민'이라는 개념은 한쪽으로만 정의됐어요. 특히 민주주의나 주민자치를 말할 때 주민은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동원되거든요. 저는 그런 시선에 의구심이 들었어요. 주민은 항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대항 담론을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존재이기만 한가? '주민'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정작 연구자들이 주민의 주체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황정화는 "시민운동이나 주민운동의 관점으로만 주민을 바라보는 연구들에 삐딱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주민은 무조건 대안적인 존재일 거라는 결론에 너무 쉽게 도달한다고 느껴졌어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정답에 주민을 끼워놓은 것처럼. 근데 전 지역과 주민을 잘 이해하기 위해 현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제가 조금 분명해졌고, 결국 원전이 있는 지역의 주민을 연구하게 된 거죠.
찬성과 반대가 아닌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주민에 다가서다
▲ 탈원전반대집회에 참여한 울진주민들 탈원전반대집회에 참여한 울진주민들 |
ⓒ 황정화 |
반핵의 주체를 보통 지역주민으로 설정하고 주민들의 반핵운동을 분석하는데, 지역에는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주민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반핵을 주장한다기보다는,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되는 맥락이나 역사가 있는 거잖아요. 저는 주민을 반핵의 당사자로만 바라보는 연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대해서 생각했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주민을 정치적인 존재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주민을 찬성과 반대가 아닌, 어떤 맥락과 상황 속에서 '정치적 행위'를 하는 주체로 접근하려는 황정화는 네 개 지역에서도 울진 북면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광에도 갔었어요, 공무원도 만나고 반핵운동 하는 분이나 농민회 소속 주민도 만나는 등 다섯 분 정도 만났어요. 근데 울진이랑 영광을 단순히 비교할 수 없겠더라고요. 특히, 울진은 반핵운동하기에 너무 불리한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영광은 그래도 반핵운동을 함께할 종교(원불교)나 인근 지역 시민단체도 있는데, 울진은 그런 게 없어요. 두 지역을 비교할 수 없고 또 일반화할 수 없을 정도로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었어요. 보통 원전 연구는 4개 지역을 다 연구해서 특징이나 문제를 일반화하려고 하잖아요. 저는 그걸 포기하고, 울진만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싶었어요.
황정화는 "특정한 집단의 내부적인 관점에 접근하여 집단 속의 권력관계, 권력구조, 권력의 재현방식 등을 파악"하며, "저항과 적응의 복잡한 방언을 재구성하는 권력관계의 결절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정치문화기술지(political ethnography)라는 연구 방법을 선택했다. 2016년 9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약 3년이 넘게 연구에 매진했다.
에스노그라피(문화기술지)로 연구를 했던 것은 이분들이 공간을 통해 체험한 것이 무엇이고, 해석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였어요. 기존연구가 충실하지 않고 주민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보니 오히려 그분들의 증언이 맞는가 틀리는가를 따지기보다는, 그분들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 체험, 그리고 그 체험에 대한 공유된 해석들.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분석하고자 했어요.
주민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것을 듣고 기록했다
황정화는 울진 북면을 연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누구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고, 관심 갖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제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그분들의 말을 들은 것이라 생각해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없어요. 반핵하는 사람은 이분들 얘기 잘 안 들어요. 찬핵하는 사람들, 한수원에게도 이분들은 솔직하게 이야기 못 하겠죠. 학생이고 연구자인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주신 것 같아요. 그분들은 분명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도 이 사회가 그분들에 주목한 적이 없거든요.
▲ 북면에 설치된 방사능계측기 북면에 설치된 방사능계측기 |
ⓒ 황정화 |
원전을 국산화해서 수출상품으로까지 육성하려는 국가의 목표를 위해 공간을 재구성하고, 주민들을 통치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이라는 특정한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의 영향을 받는 주민을 '지방정치공간'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보고 싶었어요. 국가와 지방만이 아니라 원전에서 일하는 한전/한수원 노동자들과 북면 주민들 사이의 위계적 권력관계, 더는 경제발전을 체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에 경제·사회적으로 의존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북면 주민들은 울진군과 원전을 확대하려는 국가에 함께 대항하면서도 때로는 원전지원금 배분을 두고 울진군과 경쟁도 하는 정치적 주체거든요. 저는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혹은 가지고 있지 않은 조건들 속에서 '정치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자신들만의 정치와 전략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런 분석이나 이해 없이, 우리가 그분들을 단순히 '원전에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신고리 5·6호기 공론을 무시하고 지역 이익만을 추구하는 편협한 행위자'로 생각하는 것이 맞는 건가, 현장에서 오히려 그런 단순한 비판과 해석을 경계했던 것 같아요.
황정화는 "내가 거기 살았어도, 그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계속 거기에 산다면, 찬핵과 탈핵이라는 구분이 아니라 다수 원전이 있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나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전략을 고민하고 결국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주민에게는 나름, 그 지역에서 살아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자신들의 존재를 지워지지 않게 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의 비판처럼 핵발전소 인접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핵발전소를 건설할 때나, 최근 탈원전 정책에 의해 핵발전소 건설이 중지되었을 때도 의미 있는 이해관계자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를 황정화는 "북면 주민들은 원전 근처에 사는 대가로 지원금을 받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한 권리는 쉽게 부인된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주체인 '서발턴' 같은 존재인 거죠"라고 말했다.
주민을 의미 있는 '주체'로 인정한다면 그들과 원전 정책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텐데, 그저 지원금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들로 여기니까 존중하지 않는 거죠. 그들이 원전과 맺어온 이해관계, 살아온 방식, 태어나서 자라온 공간에 대해 존중하지 않고 또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거죠. 또한, 원전지원금을 활용하는 것도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잖아요. '비도덕적인 돈'을 받는 것도 아니예요. 지원금이나 원전건설에 대해 한창 열을 올려 얘기하면서 진심으로 속상함을 비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어릴적 자유롭게 다니던 아름다운 바닷가를 이제는 잃어버렸다고, 그대로 있었다면 틀림없이 북면의 관광자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계셨죠.
황정화는 탈원전을 선언하고 추진했던 전 정부 역시 주민을 주변적 존재로만 대할 뿐 그들이 원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원전과 함께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의미 있는 파트너가 되어줬어야 했어요. 환경부나 산업부가 지역주민과 그런 협력적 관계를 만들지 못했는데, 어떻게 수십 년 원전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탈원전 정책을 지지할 수 있겠냐는 거죠. 저는 오히려 주민이나 지역에 대한 고려 없는 정책으로 주민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는 정부도 그렇고, 시민사회가 주민을 바라보는 관점도 참 아쉽죠. 한쪽에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들과 이념이나 정치적 노선이 같을 때만 '주민'이라는 표현을 써요. 저는 오히려 이러한 표현과 시선들이 주민들을 '탈정치화'한다고 느껴졌어요.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의 조건부 협력관계
황정화는 정수희의 석사학위논문 <핵산업과 지역주민운동: 고리지역을 중심으로>가 그가 연구할 때 큰 도움을 받았던 연구라고 말하면서, 정수희의 연구에서도 "부산지역의 반핵운동이 지역주민과 연대할 때 아쉽지만 섬세하게 하지 못했고 탈핵이라는 정답을 가지고 지역에 왔기에 지역주민이 그들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탈핵단체가 주민에게 장기적으로 함께 행동하면서 원전을 줄여나가는 목표에 같이 협력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죠. 만약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을 제시했을 때, 울진 북면에 주민들과 연대하는 환경단체가 남아있었다면, 주민들은 그들과 함께 전략적·정치적인 선택을 논의할 수 있었을 텐데. 원전 가동을 중지할 때까지 안전하게 관리하고 또 이 지역이 원전에 의존적인 경제구조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갈지 대화할 파트너가 없었다는 게 안타까워요.
황정화는 그런 면에서 '핵발전이 우리 마을에 없어도 되는 삶'에 대한 상상력이나 대안을 주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탈석탄을 주목해서 보고 있어요. 실제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고 지역에 새로운 방식의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을 본다면, 이분들도 충분히 '원전'을 택하지 않을 거란 말이죠. 우리는 원전을 닫아본 경험이 없잖아요. 두려운 거죠. 이 지역이 빠르게 공동화되고 황폐화될 거라는 공포가 큰 거예요. 그래서 석탄화력발전소 지역을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선례가 되어 주민들도 원전만이 해답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오랜 시간 현장 연구를 진행했던 황정화와 '연구를 마친 뒤 떠날 때의 어려움'과 '연구 이후 주민들과 어떻게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그러한 고민을 했다. 주민 삶이나 운동은 끝나지 않았지만, 연구자의 연구에는 끝맺음이 있어야 하기에 논문에는 보통 공간적 범위와 시간적 범위를 적는다.
몇 분한테만 논문을 보내드렸고 다시 가지는 못했어요. 심리적인 부담감이 있는 것 같아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논문 얘기를 하지도 않았어요. 이분들이 '원전을 원한다'라는 얘기를 하는 게 이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그런 괴로움이 있었어요. 정권이 바뀌면서 그제야 논문발표도 했어요. 논문에도 조금 언급했는데, 북면 주민들도 탈원전에 대한 대책을 한수원과 같이 협의를 하더라고요. 북면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는 건 한수원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그런 점에서 바람이라면 신뢰받는 연구자들이 주민들과 다양한 네트워크의 매개자들이 되어준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민들이 도움을 받고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함께 논의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하죠. 제가 이분들의 이야기를 적어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처한 딜레마적인 상황을 풀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사람을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황정화가 느낀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죄송한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나 운동을 기록했던 게 실은 나의 학위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활용한 것은 아니냐는 죄책감과 함께, 연구한 뒤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황정화의 연구는 주민과 지역을 찬핵과 탈핵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 봐오던 기존 연구의 틀을 깨고, 주민이 싸우는 혹은 싸우지 않는 이유를 그들의 정치적 주체성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또한, 핵발전소를 확대하는 정부만이 아닌 축소하고 폐쇄하려는 정부에게조차 그들은 의미 있는 이해관계자나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령이나 서발턴처럼 그들은 그렇게 주변화되고 소외되기 일쑤였다.
어쩌면, 황정화는 주민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기록했으며, 기존 연구와는 다른 관점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나에게도 어려운 숙제처럼 남아있지만, '싸우지 않아도 주민이다, 핵발전을 지지해도 주민이다'를 몇 번이고 읽었다. 더 많은 황정화들이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연구를,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탈핵잇다 시즌 2은 ‘숲과나눔 소규모 연구모임 지원사업 풀씨연구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https://brunch.co.kr/magazine/no-nuke)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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