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노잼도시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들

윤슬기 2024. 8. 2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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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도시라는 밈(meme·인터넷 유행어)은 대전에 놀러 온 지인을 데려갈 곳이 없다는 한 누리꾼의 말에서 움텄다.

노잼도시 밈을 재미로만 소비한 데 대한 미안함,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책임감에서 이번 기획을 시작했다.

심지어 노잼도시라는 밈이 억울할 법도 한데 일부 지역민들은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일부 지역 전문가는 노잼도시 밈 자체가 지역관광의 새로운 유인이 되고 있다며 이를 지역 브랜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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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도시, 정말 노잼이었나

노잼도시라는 밈(meme·인터넷 유행어)은 대전에 놀러 온 지인을 데려갈 곳이 없다는 한 누리꾼의 말에서 움텄다. 이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면서 대전을 비롯해 노잼도시로 지목된 곳이 하나둘 늘어갔다. 언론은 이를 흥미로운 가십 거리로 다뤘다. 노잼도시라는 명칭과 인식 속에 어떤 사회적 현상이 내포돼 있는지는 간과했다. 노잼도시 밈을 재미로만 소비한 데 대한 미안함,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책임감에서 이번 기획을 시작했다.

노잼도시에는 정말 재미 요소가 하나도 없을까. 그래도 대도시인데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대표적 노잼도시들인 대전·울산·광주·청주를 찾기로 했다. 네 도시는 빅데이터플랫폼에서 노잼도시로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없다를 어떻게 나눌 건데?", "그것보다 '재미'라는 게 뭔데?" 등의 물음이 뒤따랐다. 무엇을 재미로 볼지, 재미의 실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추적해갈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기획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기록한 취재 내용만 A4용지 180장에 달한다.

광주를 제외한 도시는 첫 방문이었지만,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대전-한밭수목원, 울산-태화강국가정원, 광주-무등산, 청주-청남대 등 그럴듯한 관광지가 있다는데 젊은 관광객 입장에선 그리 매력적인 요소들은 아니었다. 취재가 아니었다면 가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서울에서 온 사람'의 무지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깨달았다. 젊은 층에 매력이 없을 줄 알았던 여러 관광지를 실제 가보니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예컨대 유네스코 등재 발표를 앞둔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오래도록 여운을 줬다. 암각화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래와 함께한 생활기록이 새겨졌는데 새끼를 업고 있는 어미 고래의 모습 표현한 그림은 공업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역사도시 울산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함께 취재한 선배는 결혼을 하고 어엿한 가정을 일군 '꿈돌이 세계관'에 중독돼 다시 한번 대전을 찾고 싶다며 방문을 벼르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해당 도시 주민의 지역 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노잼도시라는 밈이 억울할 법도 한데 일부 지역민들은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밈을 계기로 우리 도시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노잼도시 단어의 이면에는 지역의 활기를 불어넣어 달라는 지역민들의 바람과 도시를 향한 애정이 녹아 있었다. 오히려 노잼도시 밈이 도시를 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부 지역 전문가는 노잼도시 밈 자체가 지역관광의 새로운 유인이 되고 있다며 이를 지역 브랜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노잼도시에 없는 건 '재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밈의 생명력은 길지 않고 반복된 유머는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한다. 노잼도시 밈 유행이 끝물을 보이는 이유다. 밈이 지나간 자리, 지역 주민들의 씁쓸함만 남지 않기 위해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노잼도시의 가장 큰 문제는 도시에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닌 재미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발견됐더라도 제대로 된 진열대에 놓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도시의 재미를 어떤 식으로 브랜딩하고, 어떻게 유통할지를 고민하는 건 지자체의 몫이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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