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미 테리 측 "文 비판했는데, 한국정부 요원? 말도 안돼"

김형구 2024. 8.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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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 5월 29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검찰이 기소한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측이 이르면 내달 말 검찰 공소에 대한 기각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ㆍ일본ㆍ오세아니아담당 국장 등을 지낸 뒤 2011년 공직에서 물러난 외교 정책 전문가 테리 선임연구원은 미 정부 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외국대리인등록법ㆍFARA 위반)로 지난달 16일 기소됐다.

테리 선임연구원을 대리하는 리 월러스키 변호사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테리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 요원’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 정부 요원으로 등록하지 않았다”며 “그녀는 미국의 이익을 수호해 온 애국적인 미국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낸 공소장을 액면 그대로 믿지 말라”며 “9월 말, 늦어도 10월 초 우리 입장을 모두 집약한 ‘검찰 공소 기각 신청서’ 제출을 출발점 삼아 검찰의 허위 주장을 무너뜨려 나갈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기소 이후 테리 선임연구원 측과 몇 차례 통화를 해 왔고 변호인과 서면 인터뷰를 최근 진행했다.

테리 선임연구원 측은 이번 사안의 본질은 국가 기밀을 빼돌리는 첩보 활동이 아니라며 싱크탱크 전문가로서 최신 정보 파악 차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음은 월러스키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한국 정부와 안 맞을 때 많았다”

Q : 외국 정부 대리인으로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A :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의 외교정책을 자주 비판한 테리 선임연구원이 한국 정부 요원으로 등록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강력한 대북 제재와 한ㆍ미 동맹, 한ㆍ일 관계 개선 등의 정책을 원칙적으로 지지해 왔다. 한국 정부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는 항상 부합하는 일을 했다. 실제 공소장에는 그의 발언 중 미국 국익에 반하는 내용은 한 건도 인용돼 있지 않다.”

Q : 미국 검찰은 정기적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한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미국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본다.
A : “테리 선임연구원은 미국 관리들과 만나 얘기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언론 독자, 방송 시청자 등 다양한 고객들과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정책을 옹호하는 대가로 누구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독립적인 분석가로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옹호했을 뿐이다.”
미국 CIA 출신 대북전문가 수미 테리 ‘한국 정부 대리 혐의’ 기소 내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뉴욕 남부지검·연합뉴스]


“미 정부 떠난 이후 공유할 기밀정보 없어”

Q : 하지만 가방ㆍ코트 등 명품 선물을 받은 것은 정보 제공의 대가였다는 검찰 주장에는 어떻게 반박할 건가.
A : “테리 선임연구원은 2011년 미국 정부에서 나왔기 때문에 누구와도 공유할 기밀 정보가 없다. 공소장에도 그녀가 기밀 정보를 공유했다는 혐의는 없다.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받았다는 일부 선물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았다는 시기는 테리 연구원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던 때다.”
공소장에서는 국정원 요원이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9년 11월 돌체앤가바나 코트와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을 구입하고, 2021년 4월 루이뷔통 핸드백을 사는 등 금품을 제공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테리 선임연구원 측은 “당시 언론 기고문을 통해 북핵 폐기 없이 북한에 양보만 하는 것에 반대하며 북ㆍ미 평화협정 체결을 서둘러선 안 된다고 했고, 북한 비핵화 조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성급하게 종전을 선언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선명하게 비판적 노선을 견지하던 시점”이라고 반박했다.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11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북한 인권 관련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 상영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Q : 미국 정부가 테리 선임연구원과 국정원 요원 움직임을 오랜 기간 추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점에서 기소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A : “그건 미 법무부에 던져야 할 질문이다.”

Q : 국정원을 비롯한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A : “테리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 요원이 아니었고 한국 국민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의 외교 정책과 상충되는 상황에서도 미국 국익을 수호해 온 애국적인 미국인이다.”


미 법조계 ‘검찰 무리한 기소’ 비판도


이번 사건을 두고 국내에서는 국정원의 구태의연한 아마추어적 첩보 활동 행태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컸다.

미 법조계에서는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일했던 그레고리 크레이그 변호사는 지난 12일 법ㆍ안보 관련 온라인 포럼 기고문에서 “테리 선임연구원에 대한 법무부의 기소는 충격적일 정도로 허술하다”고 비판했다.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정보원과 접촉해야 하고 외국 관리들과도 긴밀하고 좋은 인맥을 유지해야 한다”면서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일했던 그레고리 크레이그 변호사가 지난 12일 온라인 포럼 ‘저스트 시큐어리티(Just Security)’에 올린 글. 크레이그 변호사는 ‘전문 지식의 위험: 수미 테리에 대한 법무부 기소가 어떻게 싱크탱크계를 위축시킬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미 테리에 대한 법무부의 기소는 충격적일 정도로 허술하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사진 ‘저스트 시큐어리티’ 홈페이지 캡처

대형 로펌 출신으로 시민운동가, 자유기고가 등으로 활동 중인 필립 로트너 변호사는 지난달 말 기고에서 “정부는 수많은 취재원과 관계를 발전시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인, 학자, 논평가의 정상적 업무를 범죄화해서는 안 된다”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외국 정부의 요원이라고 거짓 신고를 강요당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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