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응급실 뺑뺑이, 추석 의료 붕괴? 오해와 진실
자고 나면 응급의료 관련 자극적 보도가 쏟아진다. 심지어 한 정치인은 이마 열상으로 병원 22곳에 연락했으나 제때 진료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의식과 활력 징후가 모두 정상인 이마 열상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실에서 봉합할 정도로 심한 외상은 아니다.
서울 구로역 사고 부상자가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에서 진료받고 정상적 전원(병원 이동)으로 16시간 만에 수술을 받았다. 이를 두고 야당 의원은 ‘응급실 뺑뺑이’라며 과장된 보도자료를 내더니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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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 의료인 부족한 것은 사실
경증 비응급 환자 쏠림이 더 문제
정상적 진료하도록 제도 개선을
」
응급실 현장 의사로서 정말 되묻고 싶다. 전공의들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도 대퇴 골절 수술을 새벽 시간에 응급으로 시행했었나. 대퇴 골절은 노인 낙상으로 흔히 발생한다. 노인은 보통 내과 질환도 많아 먼저 내과적 검사와 진료를 충분히 시행해 환자의 안전을 확보한다. 그런 다음에 정형외과에서 계획을 세워 수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마 열상 봉합이나 대퇴 골절 수술은 새벽 시간대에 응급으로 하지 않았다고 응급의료 체계가 무너졌다고 비난하면 의료 상식에 어긋난다. 추석 연휴에 응급의료체계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과장된 위기설까지 회자한다. 물론 설·추석 등 명절에 응급실 내원 환자가 증가하는 것은 응급의학과의 오랜 경험칙이다. 그런데 중증환자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고 경증 비응급 환자가 폭증한다.
명절에 오랜만에 찾아뵌 노모와 응급실로 동행해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도 종합 검진을 해 달라거나 영양제 주사를 놔 달라는 사람도 많다. 과음한 뒤 잠자는데 의식이 없다며,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구급대에 신고해 이송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 응급실이 빠듯하게 돌아가고, 오는 추석 연휴에 응급의료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중증응급환자에 집중해 응급실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경증 비응급 환자들은 응급실에서 진료 대기가 길어질 것이고, 원하는 진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적잖은 국민은 불편을 겪을 것이다. 다만 생명이 위급한 8% 내외의 중증응급환자들이 제대로 된 응급 진료를 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나 가족이 다치거나 아프면 우선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겠지만, 119구급대와 응급의료기관에서 동일한 ‘한국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KTAS)’을 통한 중증도 판정과 환자 분류를 신뢰하고 협조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경증 비응급 환자에 대해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진료받을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 부담률을 상향하는 정책을 최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에 따른 기관 간 환자 분담, 경증 비응급 환자에 대한 본인 부담 상향, 중증응급 환자와 야간 진료에 대한 보상 강화가 포함됐다. 이번 대책은 해당 분야 전문가 학술단체인 대한응급의학회가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들이다. 늦게라도 제도화됐으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비응급 경증 환자로 판단되면 지역응급의료기관 또는 병·의원급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면 된다. 만약 해당 기관에서 중증응급환자로 판단돼 시급히 상급 진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의료진이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나 광역응급의료상황실로 의뢰해 전원 조정하도록 체계가 이미 가동되고 있다.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정작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의료진의 걱정은 따로 있다. 정당한 응급환자 진료와 전원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의료 분쟁이 그것이다. 응급의료 분야에서만큼은 형사 처벌 면제, 민사 손해배상 최고액 제한을 통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진료하도록 해줘야 한다.
또한 한시적 수가로 지원되는 응급진료 전문의의 진찰료 인상 등이 제도화돼야 한다. 일반 진찰료에는 적용되는 야간·공휴일 가산도 응급진료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나마 사명감으로 버티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 필요하다.
과거에 있었는데 굳이 없앴던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수련보조수당도 되살려 전임의까지 확대해야 한다. 의료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응급 상황의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한 현장의 절박한 호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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