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爲山一簣(위산일궤)

2024. 8. 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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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짚신 장사를 하는 부자(父子)가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기술로 똑같이 삼은 짚신임에도 아버지가 삼은 짚신은 시장에서 매번 10전을 받는데 아들이 삼은 짚신은 7전밖에 못 받는 것이었다. 아들은 그 비결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임종에 이르자 아들은 비결을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털, 털, 털”을 서너 번 외치더니 눈을 감고 말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삼은 짚신은 마지막 지푸라기 ‘털(보풀)’까지 잘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음을 발견하고선 마침내 10전을 받는 비결을 터득했다.

爲: 할(만들) 위, 簣: 삼태기 궤. 산을 만드는 것은 한 삼태기의 흙이다. 24x75㎝.

공자는 “산을 쌓음에 비유하자면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이루지 못함도 내 탓이고, 평지에 비유하자면 한 삼태기를 더하여 산을 이룸도 내 할 탓이다”라고 하였다. 한 삼태기가 완성도를 결정함을 설파한 말이다. 이에, 필자는 공자의 말을 줄여 ‘산을 만드는 것은 결국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위산일궤(爲山一簣)’라고 썼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공(功)’을 이루는 것이 곧 ‘성공(成功)’이다. 짚신의 털을 다듬는 것도, 한 삼태기의 흙을 더하거나 더하지 않는 것도 다 내 탓이다. 한 삼태기를 더하지 않아서 산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삶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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