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전해야” 의대증원 유예 또 언급…‘마이웨이’ 한동훈
“국가의 임무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8일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갈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한 대표는 “당이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과 만나 의·정 갈등 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한 대표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에 대해 “2025학년도 증원은 현 입시 문제와 직결돼 무효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여당이 먼저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복지위 여당 간사인 김미애 의원은 “당정 갈등 비화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려하는 참석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당내에선 한 대표가 의료 문제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하며 국가의 의무를 거론하자 “용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걷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표가 의·정 갈등에 뛰어든 것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추석 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해소책을 내놓지 못하면 정부·여당이 공멸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의 유예안이 꽉 막힌 의·정 갈등에서 정부가 유턴할 명분을 마련해 줬다는 주장도 있다. 친한계 의원은 “당정 이견이 드러난 부작용은 있지만, 크게 보면 여당이 매를 감수하고 정부의 출구전략을 대신 짜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가 의·정 갈등 중재자를 자처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민생 중재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 대표는 지난달 3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의·정 갈등 관련 업무보고를 받는 등 취임 직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이 컸다고 한다. 의사 출신 여당 의원들에게는 “의료계와 여당의 대화 채널이 완전히 끊기지 않게 수시로 소통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물밑 행보에 가까웠다. 의료개혁에 대한 정부 입장이 워낙 확고해 공간이 작았고, 당시 친한계 일각에서도 “정부가 대책 마련을 부심하는데, 여당이 엇박자를 내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추석을 기점으로 의료공백 사태가 폭발할 수 있다”는 보고가 집중된 뒤라고 한다. 친한계 관계자는 “대전에서 응급실을 찾다가 거절당해 전북 지역까지 넘어가 위급 상황을 넘긴 주민의 ‘응급실 뺑뺑이’ 사연을 접한 한 대표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29일로 예고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은 한 대표의 우려를 더 키웠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일련의 위급 상황이 당정 이견 노출을 무릅쓰고 한 대표가 목소리를 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여당 내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여당 대표가 정부 측에 다양한 의견을 전할 순 있지만, 언론에 노출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영남 지역 비한계 의원은 “한 대표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반대 등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만 골라 용산을 밀치고 자신을 부각한 게 벌써 몇 번째냐”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당정 신뢰는 완전히 끊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국희·이창훈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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