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초상권’ 무심한 아이들…교실이 딥페이크 온상 됐다

최민지, 서지원, 이보람, 김서원 2024. 8.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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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범죄 확산

전국 학교의 딥페이크(인공지능을 이용한 합성 사진·영상물) 피해자가 교육청 등을 통해 확인된 것만 196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초등학생 8명도 포함됐다. 교육부는 딥페이크 범죄 예방 및 대처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학교 현장에선 졸업앨범 등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초상권 사각지대’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28일 교육부는 올해 1월부터 전날까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196건의 딥페이크 피해 사례가 접수돼, 이 중 179건을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초등학생 8명, 중학생 100명, 고등학생 78명과 교직원 10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접수된 사례가 1400건이 넘는 걸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클 수 있다. 피해 조사가 과소 표집됐다는 지적에 대해 오석환 차관은 “학교와 교육청만을 중심으로 조사한 통계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번 논란에 대해 “예견된 사태”라는 반응이 나온다. 원격수업 등으로 초상권 사각지대는 많아진 반면 관련 교육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은 무단 촬영·배포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크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교에서 여학생 사진을 찍어 보관하던 남학생들이 적발됐는데 “거의 전교생이 피해자라 할 정도로 핸드폰에 얼굴 사진이 많았다”는 것이다.

28일 텔레그램에 딥페이크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는 대화방이 생겼다. [텔레그램 캡처]

익명을 요구한 중학교 교사는 “코로나 유행 당시 원격수업을 하면 학생들끼리 교사 얼굴을 돌려 보며 품평하는 일이 잦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전면 원격수업이 이뤄지던 2021년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843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9%가 “원격수업 중 초상권 침해를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초상권 침해를 당한 교사도 651명(7.7%)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졸업앨범 촬영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가입자가 9만 명이 넘는 서울 지역의 한 인터넷 맘카페에는 “우리 동네에도 딥페이크 피해자가 있다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전교생 얼굴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졸업앨범 같은 건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교육부는 학교 딥페이크 관련 사안을 조사하고, 피해 처리 및 예방교육 등을 담당하는 상황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도형 교육부 학교폭력대책과장은 “딥페이크 특성상 아주 고의적이고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다”며 “(학교폭력) 처벌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처벌 중 가장 높은 수위는 초·중학교는 강제전학, 고등학교는 퇴학이다.

한편 딥페이크 피해가 커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정보가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 이른바 ‘좌표 찍기’(온라인상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과 연락처 등 신상을 공개하는 것)를 당한 이들은 자신은 사건과 무관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28일 텔레그램에는 딥페이크물을 제작·유포했다는 가해 남성들의 이름과 얼굴 사진, 연락처 등을 공유하는 그룹 대화방이 등장했다. 350여 명이 참여한 이 대화방에선 “○○중 ○학년 ○반 ○○○, 딥페이크 범인입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지목된 남학생이 접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와 가족 연락처까지 공유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ID) 50여 개가 나열된 명단도 올라왔다.

대화방 참여자들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화를 한 통씩만 걸어도 300통”이라며 “경찰이 가해자를 못 조지면 우리가 조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유된 가해자 명단에는 실제 딥페이크 범죄와 무관한 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SNS ‘스레드(Threads)’에 자신을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라고 소개한 A씨는 “트위터·텔레그램이 뭔지도 전혀 모른다. 어떤 경로로 ID가 유출돼 가해자로 지목된 건지 모르겠다”며 “유출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많은 사람이 유입되고 있는데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자니 진짜 가해자로 몰릴 것 같다”고 걱정했다.

가해자의 연락처라며 공개된 전화번호와 비슷한 번호를 사용하는 이들도 피해를 호소했다. 네티즌 B씨는 “제 동생 번호와 한 끗 차이인 번호가 유포돼 혼동한 사람들로부터 협박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고 있다”며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100건이 넘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일부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남자 사진으로도 동성애 딥페이크 영상물을 만들자”는 제안도 올라왔다.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 상황에서 남성을 향한 ‘보복 범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에 대해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 국민들이 이른바 ‘사적 제재’에 나서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상정보 등을 공개하는 경우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민지·서지원·이보람·김서원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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