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지산·생숙 ‘마피’ 1억 넘어도…
서울 아파트값이 20주 연속 상승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수익형 부동산은 여전히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 공급 대책(이하 8·8 대책)을 통해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를 약속했고, 분양가보다 저렴한 이른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쏟아지는데도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익형 부동산 상품은 크게 오피스텔, 상가, 지산, 생숙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수익형 부동산 대표 격인 오피스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3~4년 전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한 규제가 쏟아지면서 일종의 투자 대체재로 관심을 받았다. 청약 규제가 적다 보니 아파트보다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2022년부터 금리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임대수익만으로는 대출 이자를 감당 못하는 소유주가 늘면서다. 여기에 더해 활황기에 착공했던 물량들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지면서 공급 과잉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수익형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은 이유다.
계약금 포기한 마피 매물 수두룩
한국부동산원의 오피스텔 시장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오피스텔 매매·전세가격지수(2023년 12월=100)는 2022년부터 꾸준히 하락 중이다.
전국 오피스텔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6월 104.13이었는데 올 6월에는 99.07까지 떨어졌다. 전세가격지수 역시 2022년 7월 104에서 지속 하락해 올 6월 기준 99.39까지 고꾸라졌다. 매매·전세가격지수는 100을 초과(미만)할수록 상승(하락)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그나마 오피스텔 매매·임차 수요가 많은 서울·수도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오피스텔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8월 102.59를 기록한 이후 올 6월 99.61까지 22개월 연속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 오피스텔 전세가격지수는 102.76에서 99.71까지 떨어졌다. 이 기간 지난해 9월(0.02% 상승), 지난 6월(0.02%) 두 차례를 빼곤 매월 하락세였다.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가 낮아진 탓에 오피스텔은 경매 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다. 올 상반기(1~6월) 서울에서 진행된 오피스텔 경매 건수는 1235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8% 급증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40건만 낙찰됐다. 낙찰률이 19%에 그친 것. 경매로 나온 오피스텔 10실 가운데 2건만 새 주인을 찾는다는 의미다.
매매 시장에서도 오피스텔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자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 이른바 마피 매물이 쏟아졌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 황학동 ‘힐스테이트청계센트럴’ 오피스텔에는 전용 34~51㎡ 계약금 포기 조건의 매물부터 마피가 1000만~7500만원까지 붙은 매물이 50여개 쌓여 있다. 전용 48㎡(공급 101㎡)짜리 한 오피스텔은 5억55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는데 최초 공급 당시 6억3000만원대에 분양됐던 호실이다. 중구 신설동 ‘신설동역자이르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 11월 입주를 앞두고 전용 55㎡(공급 138㎡) 분양권이 최초 공급가(9억2120만원)보다 7100만원 저렴한 가격에 매물로 나와 있다.
동대문구, 마포구, 서대문구 등 오피스텔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억대’ 마피가 붙은 단지도 눈에 띈다. 아파트 수요 대체재로 인기가 높았던 도시형생활주택도 사정은 마찬가지. 내년 4월 입주 예정인 신공덕동 ‘신공덕아이파크’에서는 매물들이 웃돈이 없는 ‘무피’ 가격에 나와 있다. 해당 주택이 5·6호선과 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공덕역 초역세권이고, 인근 아파트가 고가에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인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오피스텔 수요뿐 아니라 신규 공급 시장도 수익형 부동산을 비롯한 건설경기 침체 영향으로 크게 위축됐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분양 예정인 전국 오피스텔은 6907실로, 지난해 공급 물량(1만6344실)의 42.3%에 그친다. 2006년(2913실), 2007년(5059실), 2009년(5768실)을 제외하고 매년 최소 1만실 이상은 공급됐던 것과 비교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서울은 868실이 공급될 계획이다. 서울에서 1000실보다 적게 공급되는 것은 역대 최저치인 2007년(832실) 이후 17년 만이다. 지난해 실적(3313실)과 비교해도 약 26% 수준에 불과하다.
‘주택’ 인정 못 받는 생숙은 초토화
또 다른 대표 수익형 부동산인 지산도 칼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알스퀘어에 따르면 올 2분기 지산 매매가격지수는 전분기보다 5.7%, 지난해 2분기보다는 11.3% 하락했다. 지산 가격은 2022년 2분기까지 연 20% 이상의 높은 상승률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여파와 과도한 공급으로 지산 가격은 2022년 3분기부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올 2분기에는 고점 대비 20%까지 하락한 상태다. 류강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장은 “오피스에 비해 적은 투자금으로 매입할 수 있어 개인 투자가 가능한 점, 주택에 비해 대출 규제가 많지 않은 점 등 덕분에 가격이 상승했다”면서도 “가격이 임대 수요가 아닌 투자 수요를 중심으로 형성된 탓에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격 하락이 비교적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원주에서 지산을 2실 분양받았다는 김 모 씨는 “아직까지 임차인도 구하지 못하고 매물로 내놔도 팔리지 않고 있다”면서 “대출금 이자에 관리비까지 내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구로 소재에 전용 240㎡ 규모 구축 지산을 보유했다는 홍 모 씨는 “기존 임차인이 인근 신축 지산으로 이주한 이후 2년째 임차인을 못 구해 공실로 두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매 시장에 나온 물건 중 지산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도권 지산 경매 건수는 585건으로 전년 동기(233건)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평균 낙찰률은 35%에서 30%로 떨어졌고, 낙찰가율도 67%에서 66%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공사 중이거나 미착공 상태인 지산이 400여개에 달하는 만큼 공급이 늘어날수록 매매 가격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기가 회복되고 창업자가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상승하지 않는 이상 지산 시장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숙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당장 올 8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서구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 분양권 매물은 1억원 넘는 마피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13억8700만원에 분양됐던 전용 74㎡는 최근 가격을 1억3870만원 낮춰 매물이 나와 있다. 사실상 분양가의 10%였던 계약금을 포기한 셈이다. 2021년 분양 당시 평균 657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고 억대 웃돈도 붙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사겠다는 문의조차 없다. 오는 9월 입주를 앞둔 생숙 ‘세운푸르지오지팰리스’ 분양권 매물에도 최소 1000만원의 마피가 붙었다.
취사가 가능한 생숙은 집값 상승기였던 2020~2021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청약통장 없이도 누구나 분양받을 수 있는 데다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아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의 숙박 용도가 아닌 주택 용도로 사용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부는 2021년 생숙의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주거용으로 사용하려면 오피스텔이나 주택으로 용도를 변경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내년부터 매년 공시가격의 10%를 이행강제금으로 내야 한다.
오피스텔, 지산, 생숙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냉랭한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오피스텔의 경우 정부가 1·10 대책과 8·8 대책을 통해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수요 침체가 심화하는 상황에 공급만 늘리는 대책이라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다분하다. 올 연말이면 유예 기간이 끝나는 생숙 역시 용도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마곡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주차장, 복도 등 건축 기준이 달라 사실상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데다 은행에서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며 잔금 대출도 어려워진 상항”이라고 토로했다.
지산의 경우 공급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공실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말 당시 전국 지산은 건축 중이거나 예정인 단지를 포함해 1219곳이었다. 올해 3월 기준으로는 1543곳까지 늘어나 3년 만에 300곳 이상 증가했다. 대개 중간 규모의 지식산업센터 호실 수가 300~400실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약 10만실이 시장에 쏟아진 셈이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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