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훨훨 韓 보톡스…이젠 ‘돈 버는 시간’
흔히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 국내 기업 주요 3사가 올해 2분기 컨센서스(실적 전망치)를 훌쩍 넘어선 성과를 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해외 시장에 집중한 사업 전략이 제대로 통했다는 분석이다. 증권가는 본격적인 영업 레버리지(operating leverage) 구간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은다. 매출 증가에 비례해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것을 넘어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더 큰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제대로 돈 버는 시간’이 도래했다는 평가다.
매출 중 85%가 해외 수출
올해 2분기 보툴리눔 톡신으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국내 기업은 대웅제약이다. 2분기 관련 매출은 53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27억원)과 비교해 62.4% 늘었다. 매출 확대를 이끈 건 미국 수출이다. 대웅제약은 자사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를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와 협업해 ‘주보(Jeubeau)’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올해 2분기 미국 매출만 405억원을 기록했다. 점유율 상승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주보의 미국 보툴리눔 톡신 시장점유율은 2021년 7%에서 2022년 9%, 2023년 11%로 개선됐다. 올해 2분기에는 13%까지 끌어올렸다. 향후 기대감도 상당하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보툴리눔 톡신 시장 중 하나다. 디시전리소스그룹,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미국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2023년 3조2500억원에서 2031년 6조36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 수준의 점유율만 유지해도 대규모 매출 확대가 가능한 셈이다.
휴젤도 보툴리눔 톡신 매출 확대로 웃었다. 2분기 보툴리눔 톡신 매출은 5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6% 늘었다. 해외 수출 비중이 상당하다. 휴젤 IR 자료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과 필러의 전체 매출 중 66%가 해외 수출로 발생했다. 휴젤의 해외 수출 규모는 올해 하반기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2001년부터 공들인 미국 시장 진출이 눈앞까지 다가온 덕분이다. 휴젤은 지난 2월 29일 레티보 50유닛과 100유닛 관련 미국 식품의약국(FDA) 정식 허가를 받아냈다. 지난 7월 말에는 미국 시장 초도 물량 선적을 완료하고 현지 출시 준비(제품명 레티보)에 한창이다. 판매는 파트너사 베네브가 맡아 세부 출시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증권가는 이르면 4분기부터 레티보 미국 매출 발생이 가능하다고 내다본다. 휴젤은 레티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출시 3년 차 10%의 점유율을 목표 중이다. 국내 기업 중 보툴리눔 톡신으로 FDA 문턱을 넘은 건 대웅제약과 휴젤뿐이다.
경쟁사 대웅제약, 휴젤과 달리 아직 미국 시장에 진출 못한 메디톡스도 캐나다와 남아메리카를 포함한 아메리카 지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수출 규모를 키웠다. 2분기 보툴리눔 톡신 수출은 1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9억원)과 비교해 24% 늘었다. 메디톡스는 미국 진출을 위해 미간주름개선제
‘MT10109L’의 미국 FDA 허가 재신청을 준비 중이다. 메디톡스는 지난해 12월 말 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FDA는 지난 2월 MT10109L과 관련한 특정 검증 시험 보고서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심사를 거절했다.
해외서 어떻게 훨훨 날았나
보톡스도 ‘가성비’가 대세로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애브비와 입센, 멀츠 등 글로벌 기업의 독주 무대였다. 후발 주자인 국내 기업은 낄 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글로벌 기업 점유율은 떨어지고 국내 기업 점유율은 오르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시장점유율 1위 애브비의 점유율은 2021년 1분기 71%에서 올해 1분기 60%까지 떨어졌다. 증권가와 관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꼽는다. 보툴리눔 톡신은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시술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경기 침체 우려로 가격 민감도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정희령·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지금은 톡신 전환점’ 보고서를 내고 미국 시장 내 분위기 변화를 강조했다. 보고서는 애브비의 점유율 이탈과 주보 점유율 상승을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애브비는 2020년 이후 약 3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는데, 이후 환자와 인젝터(주입 면허 소지자) 반발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주보의 점유율 상승도 미국 시장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두 애널리스트는 “특별한 제품 차별성 없이 저렴한 판가와 마케팅만으로도 시장에 빠르게 침투한 주보 케이스를 보면 현재 미국 시장 내 가격 민감도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뷰티 산업에 대한 관심 증대도 해외 매출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SNS)를 중심으로 ‘한국식 메이크업(Korea Glow Up)’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한국 미용 시술 등에 대한 후기나 방법을 공유하는 형태다. 주요 외신도 이 같은 현상을 다룰 정도다.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국내 보툴리눔 톡신 업체 입장에선 긍정적 효과를 보는 셈이다.
“내년 수출 물량 3~4배 늘 것”
훨훨 나는 보툴리눔 톡신 기업에도 고민거리는 있다. 현재 공장 캐파(생산능력)로는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100유닛(톡신 단위) 기준 대웅제약의 연간 생산능력은 1400억원, 메디톡스는 600억원(수출 전용 1공장) 등이다. 2분기 실적을 연간 실적으로 환산하면 모두 생산능력을 초과한 실적을 달성했다. 휴젤 역시 실적 발표를 통해 가동률이 9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일부 업체는 여전히 주문량의 약 30%는 생산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100유닛 기준으로 공급 부족이 심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법 마련이 절실한 상황. 기업은 100유닛보다 용량을 늘린 200유닛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판매 가격이 비싼 200유닛을 활용하면 전체 생산량이 비슷해도 실적은 좋아질 수 있다. 특히 톡신은 100유닛 생산 시설을 200유닛 시설로 전환하더라도 증설이나 복잡한 공정 변경 등이 필요 없다. 다만 이를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공급 부족으로 인젝터 사이에서 200유닛 수요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통상 시술 현장에서는 100유닛이 선호된다. 용량 단위가 커질수록 개봉 후 보관 시간이 길어져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래 관리해야 하는 만큼 관리 비용 부담도 커진다.
결국 해법은 증설이다. 대웅제약과 휴젤, 메디톡스는 2025년 신공장 가동을 준비 중이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5월 나보타 3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다. 나보타 3공장은 2025년 완공될 예정이다. 휴젤은 2020년 강원도 춘천에 3공장 건설을 시작해 지난해 완공했다. 2025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메디톡스도 대규모 생산 체계를 갖춘 3공장을 앞세워 공급 물량을 늘릴 방침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톡신은 의약품으로 GMP(제조·품질 관리) 승인이나 설비 허가 승인이 필요해 수요 증가에 따른 탄력적인 증설이 어려운 산업”이라며 “주요 기업이 일찌감치 신공장 가동을 준비해온 만큼 국내 보툴리눔 톡신 수요 폭증 시점과 근접한 시기에 공급 물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와 증권가는 2025년 보툴리눔 톡신 수출 물량이 올해보다 3~4배 늘 것으로 내다본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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