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 감시탑에서 1년 중 6개월 사는 사람들, 이유가
제 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립니다. 32개국 53편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작품 중 눈에 띄는 다큐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조영준 기자]
▲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산불 전망대 위에서> 스틸컷 |
ⓒ EBS국제다큐영화제 |
01.
전 세계 산불 발생 빈도와 피해 규모는 매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다. 온대 침/활엽수림부터 한대림과 온대 초원까지 다양한 생태를 가진 나라. 특히 대륙 서부에 위치한 로키 산맥을 중심으로 밴프와 요호, 재스퍼의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산악지대에서는 종종 대형 산불이 발생하곤 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산림자원을 훼손하고 인근 주민은 물론 야생동물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거대한 산불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 캐나다 전역에서 110여 개의 산불 감시탑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설치된 30미터 높이의 감시탑에는 지정된 감시원이 1년에 최대 6개월까지 머물며 통계적으로 40%의 산불을 조기 발견해 왔다. 떨어지는 벼락이나 뇌우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화재는 물론 방화나 실화에 의해 시작되는 화마의 첫 순간까지 모든 화재의 시발점이 이들의 레이더망 아래에 놓여 있다.
이 작품 <산불 전망대 위에서>에는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깊은 숲 속 홀로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레인저(Ranger), 산불 감시원들의 삶이 녹아있다. 감시탑의 역할과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지만, 토바 크렌츠먼(Tova Krentzman) 감독이 더 관심을 갖는 쪽은 감시원인 사람의 이야기다. 사회와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전망대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경험과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02.
작품 속 인물인 브라이언, 마커스, 킴, 로버트가 처음 산불 감시원이 되기로 한 계기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어린 시절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거나, 산 위의 탑에서 보내는 시간이 흥미롭게 여겨졌거나, 우연한 기회에 감시원으로 일하던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머물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들 모두 처음에는 10년도 넘는 세월을 산림을 돌보고 감시하는 일에 자신의 생을 받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유일한 문제는 대부분 독신이라는 점이다. 자의에 의한 선택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포기하거나 내려놓아야 하는 지점의 문제로 여겨진다. 1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도시로부터 떨어져 산꼭대기의 외딴곳에서 보내야 하기에 이를 이해해 주거나 함께 할만한 인연을 만나기 어려워서다. 보통 이 직업을 시작하게 되는 나이가 30대 중후반, 40대라는 점이 더욱 발목을 잡는다.
▲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산불 전망대 위에서> 스틸컷 |
ⓒ EBS국제다큐영화제 |
산불 감시원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혼자인 시간이 쌓이다 보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마주해야만 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지나온 과거 시간 속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과오에 대해 계속해서 반추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다. 대체로 평온하고 안온한 날들이 이어지지만, 이따금씩 아주 거칠게 마음이 요동치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재 감시원의 삶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육체적 어려움과 정신적 어려움이다. 같은 맥락에서 더 견디기 힘든 쪽은 정신적 어려움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하룻밤 정도 푹 쉬고 나면 해결이 된다. 하지만 정신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 산불 감시원 대부분이 푹 빠질만한 취미를 하나 정도씩은 꼭 가지려고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나쁜 습관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서다. 그들 대부분은 이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킴은 자신의 마음에 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힘주어 말한다. 21년을 함께했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마침 그녀의 지역에서 큰 산불 2개가 발생했고 그중 하나를 미처 제때 보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다. 혼자인 삶에서 유일한 가족과도 같던 존재의 상실을 이기지 못해 큰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이 더해졌다. 누군가는 이들의 직업이 단지 감시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04.
2019년에 있었던 하이레벨 지역의 산불은 가장 위험하고 긴박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회자된다. 이 불로 인해 7만 헥타르 이상의 산림이 소실되고 4000명 이상의 주민이 대피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감시원들 역시 감시 지역 탈출을 고려해야 했을 정도였으니 그 피해가 충분히 예상된다. 대자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 경험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이처럼 거대한 산불은 올 상반기에만 벌써 140여 곳에서 발생하며 20만 헥타르 이상에 피해를 입혔다.
산불 전망대 위의 삶에는 분명 심오하고 환상적인 때도 있다.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몸소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다. 의식을 지닌 생물들이 자신과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이해하게 되면 이 숲의 평화로움이 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먹이를 찾아 숲을 방황하는 사슴 가족에게 끼니를 대접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곤충에게 친구의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는 시간은 이곳이 아니었으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산불 전망대 위에서> 스틸컷 |
ⓒ EBS국제다큐영화제 |
산꼭대기에 감시원 하나를 두는 것은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사람의 눈이 최고의 산불 감시 도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아주 예민해서 안개나 공장의 불길 따위와 산불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캐나다 산불 감시원의 미래는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감시원의 1/5이 퇴역하고 감시 카메라로 대체되었다. 이 작품의 말미에서 토바 크렌츠만 감독은 첨단 기술도 좋지만 사람과 기술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말한다.
여전히 우리가 관심을 갖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언제 얼마나 큰 산불이 났는지, 그 산불로 인한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와 같은 정량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 <산불 전망대 위에서>에는 그 이면의 모습이 있다. 평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에 대신해서 눈과 귀를 기울이는 자리, 지난한 시간을 버티며 지켜내려 애를 쓰는 사람.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자는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내는 강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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