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딥페이크' 피해자 신상으로 '대결' '상납'까지 했다

김화빈 2024. 8. 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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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놀이' 텔레그램 '지인 대결' 대화방... "국가가 처벌할 리 없다는 확신 공유"

[김화빈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의 온상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피해 여성들의 사진 등으로 외모 내기를 하고 신상을 '상납'하는 이른바 '지인 대결'까지 성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자들은 각자의 성기 사진으로도 내기를 하며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상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텔레그램
① 지인 3명 사진, 이름 초성, 어필하는 한 마디 제출
② 누가 나은지 대결해 승자를 정함(판단은 얼굴과 몸매)
③ 패자는 3명 이름, 승자가 원하는 1명의 모든 사진과 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디를 상납 후 복종

딥페이크 성범죄의 온상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피해 여성들의 사진 등으로 외모 내기를 하고 신상을 '상납'하는 이른바 '지인 대결'까지 성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자들은 각자의 성기 사진으로도 내기하며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상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유형의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A씨는 지난 5월 X(옛 트위터)에 자신의 사진을 비롯한 신상이 유포되는 피해를 당했다. 한 가해자가 '지인 대결'에서 져 다른 가해자에게 A씨의 신상을 '상납'했고 그 다른 가해자가 X에 A씨의 신상을 올린 것이었다.

피해자 "엄정 대응? 뒷북일 뿐"

'지인 대결'뿐만 아니라 '지인 능욕(딥페이크 기술로 지인의 얼굴과 나체를 합성)' 성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한 A씨는 2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작년 2월에도 졸업사진 등 지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과거 사진 여러 장이 SNS에 수시로 게시됐고, 온갖 성적 비하를 당했다"며 "올해는 '지인 능욕' 텔레그램 대화방 내 미니게임인 '지인 대결'로 인해 재학 중인 대학부터, 이름, 사진, 나이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됐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작년부터 피해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 변호사 자문도 받았으나 '잡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해 경찰서 문턱에서 발길을 돌렸다"며 "경찰 고소를 포기했기 때문에 올해도 이런 일을 겪나 싶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지금은 (언론 등에서) '지인 능욕'만 다뤄지고 있는데 '지인 대결' 피해자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대학생뿐 아니라 미성년자인 중·고등학생들도 저와 같은 피해를 겪고 있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대응을) 신뢰할 수 없다. 나는 누군지 모르는 가해자가 제 개인정보를 알고 있지 않나. (경찰 신고에 따른) 보복 등 신변 문제가 걱정된다"며 "지금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지만, 어렵게 수사해 가해자가 잡히더라도 미비한 법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면 더 괴로울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엄정히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곤 '뒷북'이라고 비판했다. A씨는 "(대통령이) '뿌리를 뽑겠다'도 아니고 '뿌리를 뽑아달라'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가 성폭력 관련)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안다"며 "경찰의 수사 역량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포 목적만 처벌하면 한계... 신고 즉시 증거 압수 등 선제적 입법 필요"
▲ 딥페이크 성범죄 경찰 수사 촉구 진보당 당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경찰 수사 촉구 및 진보당 TF 강력대응 선포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진보당원들은 기자회견에서 불법합성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에 대해 "경찰이 해외서버 핑계를 대는 것은 범죄를 키워주는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딥페이크 범죄에 가담했다면 제작, 유포, 소지한 사람 모두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경찰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 이정민
전문가들은 A씨가 겪은 유형의 '지인 대결' 피해에 대해 "공범을 늘려가는 범죄"라며 "가해자들이 '국가와 사회가 디지털 성폭력을 처벌할 리 없다'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라고 진단했다.

김수정 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 동안 딥페이크 성범죄를 제대로 수사·처벌했다면 ('지인 대결'처럼) 놀이 형태로 공유하며 공범을 늘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폭력을 구조·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남성 문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D'라는 닉네임으로 성폭력 재판 방청 등 피해자를 지원하는 반성폭력 활동가도 "이 범죄에선 성욕 못지 않게 철저한 과시·통제 욕구와 수익 창출의 의도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딥페이크 기술의 고도화와 범죄 피해 규모도 물론 파악해야 하지만, 왜 10대를 중심으로 '지인 능욕'이 놀이로 자리 잡게 됐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를 "반포할 목적이 있을 때만 처벌하는" 현행법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르면, 반포할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성적 욕망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편집·가공한 경우에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D는 "디지털 성폭력의 역사를 짚어 보면 '소라넷', 'AV-Snoop', '웰컴투비디오(손정우)' 등 여성을 인간이 아닌 도구로 보고 능욕하는 범죄물이 이어져 왔다. (연장선상에서) 딥페이크도 예상 못 할 게 아니었다"며 "법과 제도로 왜 통제하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반포 목적이 있을 때만 처벌하는 현행법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성폭력 사건을 다룬 이은의 변호사는 "신고 초기의 증거 압수 등 선제적 대책"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국가의 사법권 행사는 개인의 자유와 반비례 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야 하고 입법에 필요한 요소들을 관계기관·시민사회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기술 발전으로 피해 양상과 속도가 걷잡을 수 없어진 상황에선 입법 과정에서 사회인식을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취임 후 6일 만에 디지털성범죄대응TF팀장이었던 서지현 검사를 원소속(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 복귀시키며 사실상 TF를 해체시켰다"라며 "TF는 당시 다른 나라 사례 등을 분석해 '디지털 성폭력 발생 시 신고 범위에 한해 휴대폰을 압수하는' 등 선제적인 논의를 이끌었으나 'N번방 방지법' 등 입법 과정에서 TF의 제안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제 의식을 가진 이들이 '과잉 반응한다'는 안일한 인식이야말로 디지털 성폭력을 법으로 규제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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