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한 레즈비언 커플의 갈등... "욕망 보여주고 싶었다"
[이선필 기자]
▲ 영화 <럭키 아파트>로 제 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은 강유가람 감독.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에서 처음 소개된 <럭키 아파트>는 내집 마련에 성공한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다. 마침 제26회 서울여성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강유가람 감독은 간담회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며 적극 소통 중이었다. 지난 26일 영화제 기간 중 서울 홍대입구의 한 카페에서 감독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다큐적 마음과 극영화 사이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동시에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선 다른 태도를 취한다. 다리 부상으로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된 선우는 아파트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레즈비언 커플을 향한 편협한 시선에 상처받은 기억이 있는 희서는 조용히 덮고 참고 살자고 한다. 냄새의 정체가 아래층에 살던 할머니의 고독사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두 사람과 이웃 주민 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생기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강유가람 감독은 다큐멘티리든 극영화든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담긴 건 변함없는 듯하다며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큐는 현실의 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제가 표현하고 싶은 어떤 부분에선 한계가 있다. 극영화를 하게 되면서 소수자, 약자가 느끼는 공포심 같은 걸 좀 더 감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제 선에선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좋은 스태프들도 만났고, 배우분들과도 호흡이 좋았다. 손수현 배우는 전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박가영 배우는 세심한 표현을 위해 제게 많이 물어봐 주시고, 자신의 의견도 자세하게 말해줘서 캐릭터를 생생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특히 제목부터 영화가 주는 정서가 있다. 행운과 욕망의 조합일 수도 있고, 실제 존재하는 아파트 브랜드기도 하기에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강유가람 감독은 욕망이라는 키워드에 방점을 찍으며 설명을 이었다.
"특정 브랜드를 생각하고 지은 제목은 아니고, 요즘 럭키 비키(가수 장원영의 영어 이름에서 비롯된 일종의 밈, 자신이 너무 행운이라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기자 주)라는 유행어가 있잖나.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선 부를 증식하는 수단의 상징성이 있는데, 영화 속 인물이 처한 상황은 언럭키(unlucky)하다. 그 아이러니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제가 집이란 게 무엇인지 첫 영화(단편 <모래>, 2011년작)에서부터 다루다보니 문제의식이 이번에도 드러난 것 같다. 아파트를 대하는 자세가 이율배반적이란 생각이 있다. 냄새나 소음에 취약한 만큼 분명 완벽한 주거공간은 아닌 것 같은데 편리하기도 하고 자산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선우와 희서도 반드시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 들어가야 자산이라도 좀 불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소시민적 욕망을 품고 있었다. 우리 사회 소수자도 그런 욕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들도 똑같이 세금을 내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한다고."
사회 문제의 복잡다단함
<럭키 아파트>가 흥미로운 지점은 두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어려움이 단순히 성소수자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아파트 시세를 둘러싼 일부 주민들의 이기적 태도, 무관심에 쓸쓸하게 죽어간 노인, 이들을 향한 각종 혐오, 성차별 등 복잡한 양상을 띈다. 이 모든 게 아파트를 축으로 벌어진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사실 집 문제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면서 결국 비극이 됐다. 현실 사례들도 많이 찾아봤는데 아파트 관련 블로그나 카페 글을 보면 아이들 교육 문제부터 이웃에 대한 차별적 시선까지 다양한 혐오가 존재하더라. 영화를 보면 좋은 사람인 척하는 한 주민도 결국 자산 가치 문제가 들어오니 비겁한 태도를 취하잖나.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양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선우처럼 행동할 것인지, 침묵할 것인지, 더욱 상대를 공격할 것인지로 나뉘게 되는 것 같다."
▲ 영화 <럭키 아파트>를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백래시'라고 해서 퇴보했다는 말도 있지만 미투 운동을 경험하고,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을 경험한 여성들은 결코 퇴보하진 않은 것 같다. 영화계에서도 지난 10년간 표면적으로나마 성교육 이수의 필수화라든가 심사위원 동수 구성이라든가 하는 변화가 있어 오지 않았나.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여하면서도 젊은 감독님들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FFF(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WDN(여성 감독 네트워크)가 함께 진행한 포럼에서도 많은 걸 배웠다. WDN의 경우 이제 만들어진지 1년밖에 안 됐다. 다른 단체를 보니 같이 공부하면서까지 업계를 바꾸려고 하는구나 싶었다."
이 맥락에서 강유가람 감독은 여성영화제의 존재 의의를 강조했다. 서울 혜화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치러졌던 초기 영화제 풍경을 전하며 그는 "문화적 열망을 해결해주는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공동체였다"고 말했다. 관객으로 참여하며 감독 또한 영화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 국고 지원금이 줄어서 안타깝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 끈끈해질 계기는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젠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생각할 때다. 이번 영화제에서 <아이슬란드가 멈춘 날>이란 작품을 봤는데 성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지 않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8%나 됨에도 갈 길이 멀다며 계속 싸우고 있다는 자막이 나온다.
한국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OECD 퉁계를 굳이 얘기 안 해도 여성의 정치계 진출 사례나, 출산, 파업 사례가 산발적으로 무슨 혜택을 보듯이 얘기되는 걸 보면 이런 게 퇴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기술 발달로 디지털 성범죄는 더욱 기승이고, N번방 사건의 변종들도 계속 생기고 있잖나. 이와 중에 페미니즘을 악마화하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데,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목소리를 내는 분들도 지친 것 같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삼성 방사선 사고 장비, 2016년부터 교체요구… 회사 묵살"
- 500만 원 못 받은 남자... 말도 못하고 있는 사연
- "금투세, 도로 포장도 안하고 통행료 받겠다는 이야기"
- "됐다" 간호법, 거부권 문턱 넘어 19년 만에 빛 봤다
- 이 동네 길고양이는 엄마도 이름도 있습니다
- 딥페이크 성범죄에 "남자 욕하지 마"... 5년 전 반복될까 두렵다
- 형제끼리 싸워 갈라선 오아시스, Z세대가 화해시켰다?
- 대통령실 "한동훈 의대증원 유예안 비현실적... 입시현장 큰 혼란"
- 대구서만 벌써 12번째, 퇴직 앞두고 '폐암' 진단 급식조리원
- 배달 주문한 13만 원, 어디로 가나... 그 충격적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