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갈등 재현되나…'의대 증원 유예' 이견 팽팽
한동훈 "국가임무, 국민 건강이 최우선"
대통령실 "증원하지 말자는 이야기"
尹·與지도부 만찬 연기…韓 "따로 못들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대립으로 일컬어지는 '윤한 갈등'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를 두고 재현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 대표는 의대 정원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으나, 대통령실은 의료인력 충원 문제는 법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며 의료 개혁을 위해 의사 증원은 예정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맞서면서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과 회동한 후 만난 기자들이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으로 번진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말하자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당이 민심을 전하고,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 증원 유예가 의대 교육의 질적 저하에 대처하고, 전공의를 복귀시키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는 취지다. 이에 한 대표는 지난 25일 고위당정협의회 직후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할 것을 한덕수 국무총리를 통해 건의했으나, 대통령실은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과 한 대표가 갈등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 대표가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을 맡은 지난해 12월 이후 한 대표와 대통령실은 서로 특정 사안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며 갈등과 봉합을 반복해오고 있다.
1월부터 수차례 갈등·봉합 반복
한 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이끌던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언급했고, 김경율 비대위원을 마포을 출마자로 '깜짝 소개'한 것에 대해 친윤계 의원들과 대통령실은 '사천'이라고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한 대표는 즉각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히며 갈등을 보였다. 다만 사퇴 요구 이틀만인 1월23일 오후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합동 점검을 진행했고, 김 비대위원이 2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갈등이 봉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두 번째 충돌은 지난 3월에 벌어졌다. 한 대표는 당시 호주대사로 임명됐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조기 귀국,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에 대한 사퇴를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 대한 조기 귀국에 동의할 뜻이 없고, 황 전 수석 사퇴설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다만 총선 20여일을 앞두고 당정이 파열음이 날 경우 선거에서 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윤 대통령도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고, 이 전 장관도 귀국했다. 3월22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평택 해군기지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나 천안함 피격 당시 상황을 보고받으며 재차 봉합 수순을 밟았다.
한 대표가 지난 6월23일 7·23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출마를 밝히며 공약의 일환으로 제3자 채상병 특검법을 제시한 이후 친윤계·대통령에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친윤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탄핵하려고 하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왔고, 대통령실 관계자도 "수사기관의 수사 이후 수사가 미흡하면 특검을 요구하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김 여사가 총선 국면이던 지난 1월 명품가방 수수와 관련해 사과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한 대표가 답장하지 않은 사실이 공개되며 전당대회 이슈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을 두고 한 대표와 대통령실이 입장차이를 분명히 했다. 한 대표는 지난 13일 광복절 특사로 김 전 지사의 복권이 결정된 것에 대해 기자들에게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일부 인사들에게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반성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정치를 하라고 복권해 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국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해 "의사 수 증원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다. 유예하면 불확실성에 따라서 입시 현장에서도 굉장히 혼란이 클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에 굴복한다면 정치와 정책을 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빠져들 수 있고, 정상적인 나라라고 하기 어렵다"고 한 대표의 제안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2026학년도 정원은 지난 4월 말에 대학별로 정원이 배정돼 공표했다"며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과 수험생들, 학부모들이 함께 이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논의하고 유예한다면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6년 의대 증원 유예와 관련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도 그 대안에 복귀나 전향적인 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 관계자 파면, 경질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국민을 불안, 불편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이해집단의 끈질긴, 구조적인 저항"이라고 꼬집었다. 한 대표가 지난 20일 비공개로 만난 박 비대위원장의 사례를 겨냥하며 한 대표의 인식을 문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오는 30일로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등 여당 지도부의 만찬도 연기됐다. 추석 연휴 전에 지도부와의 식사보다 민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이 불쾌감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더욱이 추 원내대표 측은 이날 오전 만찬 연기 통보를 받았지만 한 대표 측은 이에 대해 따로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대표는 이날 보건복지 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만찬 연기가 원내대표 라인에만 사전 통보가 됐냐'는 질문에 "그건 모르겠고 제가 따로 이야기 들은 것은 없다"고 했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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