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범죄자 정보 숨기더니...佛, 텔레그램 창업자에 '수사 협조 거부' 혐의 적용
프랑스 검찰이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39)에게 수사기관의 정보 제공 요청을 거부한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로프가 텔레그램에서 일어나는 불법 행위를 방조한 것과는 별개로 ‘수사 협조 거부’라는 적극적인 범죄 행위를 주도했다고 판단한 셈이다.
텔레그램은 우리 경찰의 ‘N번방 사건’ 수사 때도 협조를 거부했다. 최근 ‘딥페이크 영상물 유포 사건’에서도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가 관건으로 떠오른 가운데 프랑스에서 이뤄지는 두로프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텔레그램의 기존 관행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프랑스 파리 검찰청은 27일(현지시간) 두로프에게 12가지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우선 6개 혐의에 대해서는 방조범으로 수사하고 있다. ①불법거래를 촉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 ②아동음란물 저장 ③아동음란물 조직적 배포 및 제공 ④마약취득‧소지‧판매 등 마약 범죄 ⑤해킹도구 판매 및 배포 ⑥조직적 사기 등이다.
6개 혐의는 텔레그램에서 아동 음란물 유포, 마약 유통, 테러 모의 등 각종 불법 행위가 일어나도록 방치했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검찰은 미신고 암호서비스 제공 등 암호화와 관련한 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범행을 주도한 정범(正犯)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된 형태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단순히 범죄 방조를 넘어 조장까지 했다는 뜻으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이런 9개 혐의로는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메신저 앱을 제공한 회사가 불법적 내용을 삭제하고 있다면, 단순히 방조 혐의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게 유럽 법조계의 주된 의견이라는 것이다. 텔레그램은 불법정보를 신고받으면 해당 콘텐트를 삭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세 개 혐의가 유죄를 받아낼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⑩수사기관의 정당한 정보제공 요청에 대한 거부 ⑪범죄조직 가담 ⑫조직범죄 수익금 세탁 등이다. 프랑스 검찰은 세 혐의 모두 두로프를 정범으로 간주해 수사하고 있다.
이 중 ‘수사기관의 정당한 정보제공 요청에 대한 거부’ 혐의는 유죄로 인정될 경우 국내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다. 한국 수사기관을 비롯,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일어나는 범죄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 텔레그램 측의 협조 거부이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정부를 포함한 제3자에게 0바이트의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광고 중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유죄가 확정된다면 텔레그램도 기존의 방침을 수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검찰 프랑스법연구회 출신의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유럽에서는 불법정보가 유통된 플랫폼 관련자에 방조 책임을 묻는 진보적 판결이 있기도 하지만, 현재 프랑스 검찰은 플랫폼 운영자로서의 방조범보다는 직접 정범 혐의와 관련해 구체적 증거를 갖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물론 텔레그램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독일 법무부는 지난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대해 총 51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범죄와 연루된 정보를 발견했을 때 신고할 수단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고, 독일 정부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담당자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독일에서도 텔레그램이 아동 대상 성범죄자,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이용하는 메신저로 사용돼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독일 정부의 벌금 부과에 불복, 대형 로펌을 선임해 현재까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텔레그램을 차단하겠다”는 독일 내무장관의 으름장에 마지못해 독일 수사당국과 소통채널을 개설했지만, 아동대상 성범죄나 극단적 테러 같은 극소수의 경우에만 이따금 협조했을 뿐이고 이마저도 텔레그램에 결정권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8일 딥페이크 영상 사건과 관련해 텔레그램과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철저한 대비 없이는 독일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텔레그램은 이용자 수를 축소 신고해 추가 규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월 이용자 수가 4500만명 이상인 플랫폼을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LOP)으로 지정해 아동 성학대, 테러 등 유해 콘텐트 확산을 막기 위한 각종 의무를 부과한다. 위반시 과징금을 물게 된다.
텔레그램은 EU 내 월간 이용자가 4100만명이라고 보고했다. 400만명 차이로 지정을 피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전 세계 월간 이용자 수가 9억명에 이른다. 축소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토머스 레니에르 EU 집행위원회 디지털경제 담당 대변인은 “(두로프에 대한 수사는) 프랑스 당국이 국내 형법에 따라 집행한 것”이라면서도 “텔레그램이 월간 이용자 수가 정확한지 면밀히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선 텔레그램이 전쟁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도 우려한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후 텔레그램을 선전 수단처럼 활용해 왔다. 당장 러시아는 “두로프가 받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체포는) 통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27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라고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 검찰이 이번에 돈 세탁 혐의를 두로프에 적용한 건 텔레그램의 재무 상황과 회계 등이 불투명하다는 의혹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독일의 슈피겔은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텔레그램의 내부 재무상태는 비밀로 남아있다”며 “2017년까지 두로프가 개인 재산 중 2억1800만 달러(한화 약 3000억원)를 텔레그램에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유령 사무실이 아닌 진짜 사무실이 어딘지도 모르며, 핵심 직원은 20명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도 강력한 기능을 가진 앱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이 유지되는 배경에 의구심이 있는 것이다.
폴리티코 "CEO 형에게도 체포영장 발부"
이런 가운데 파벨 두로프를 체포한 프랑스 수사당국이 텔레그램을 공동 창업한 형 니콜라이 두로프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라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은 지난 3월 25일 파벨과 니콜라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텔레그램에 대한 프랑스의 수사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몇 개월 앞서 시작됐으며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의미다. 파벨은 지난 24일 전용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에서 파리에 도착한 직후 체포됐다. 하지만 형 니콜라이의 소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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