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이 평범하다고 누가 그래? 서포터즈가 만든 기적
[김형욱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아랫부분 관악구와 금천구와 맞닿아 있는 곳에 경기도 '안양시'가 있다. 안양에서 수십 년 살아온 이는 '안양'을 두고 이런 물음을 던진다. "안양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안양은 왜 이렇게 평범하지?"라고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선호빈, 나바루 감독의 말이다.
작품 제목인 '수카바티(sukhavati)'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땅으로 괴로움이 없고 지극히 안락하며 자유로운 땅, 극락세계 또는 안양정토라고 부른다. 즉 '안양'과 동일어다. 또 수카바티는 FC안양 서포터즈 'RED'의 구호이기도 하다. 안양을 뜻하는 수카바티를 구호로 정한 건 '안양'을 향한 짙은 사랑의 모습이 발현된 것일 테다.
FC안양은 2013년에 출범한 시민구단이다. 모기업이 따로 있지 않고 안양시에서 운영한다. 그러니 돈이 많지 않고 K리그2에서 K리그 1로 승격하는 게 요원하다. 중위권에서 벗어나 최상위권으로 도약하는 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승격한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팀 중에 하나다. 조규성이라는 걸출한 국가대표 공격수가 FC안양 출신이다.
FC안양의 탄생은 쉽지 않았다. 서포터즈인 RED의 역할이 지대했고 최대호 안양시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도 탄생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노력하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성공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의 한 장면. |
ⓒ 영화사 진진 |
서포터즈인 RED는 이때 생겼다. 농구, 아이스하키 정도만 연고지로 두던 안양이라는 도시에 드디어 축구단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2002 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단이 필요하다는말이 나오더니 2004년에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행이 결정됐다. 그렇게 'FC서울'이 탄생했다. 이후 RED는 FC서울을 북패(북쪽 패륜아)라고 부른다.
한편, 안양 LG 치타스의 서포터즈던 RED는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사랑의 대상이 아무런 말도 없이 도망치듯 가 버린 셈이다. RED는 전국 그 어느 서포터즈보다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기에 더욱 서운하고 서글펐을 테다. 그들에게 안양 LG 치타스는 애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 '안양'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살다가 결혼하면서 수원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어느 스포츠단도 서포터즈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수원도 서울은 아닌 지방이다 보니 자연스레 수원 연고지 팀에 눈길에 간다. 그래서 RED의 이야기가 조금씩 더 이해되는 중이다.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가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겠다"로 바뀌고 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의 한 장면. |
ⓒ 영화사 진진 |
외부의 힘에 휘둘린 건 비단 축구단만이 아니다. '안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랬다. 아니 안양은 그렇게 시작된 도시다. 안양시는 서울시의 위성도시로, 1970년대 서울의 혐오 위해 시설을 밖으로 밀어내려 공단 위주로 만든 도시다. 이른바 강자가 정한 힘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희생된 도시다. 비슷한 이유로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에서 안양으로 쫓겨났고, 또 안양 LG 치타스가 안양을 두고 서울로 향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포스터. |
ⓒ 영화사 진진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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