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준 행복에 '고맙다'고 보내는 편지 같은 책
[조은미 기자]
"연두가 초록으로 바뀌는 계절에 제 첫 에세이가 책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어요~."
이렇게 말하며 건네받은 조혜진 작가의 이 작은 책을, 나는 붉은 백일홍 꽃잎들이 하나 둘 떠날 채비를 하는 여름 끝자락에서야 읽었다. 그녀는 숲이 맺어준 인연이다. 여의도샛강 생태공원 샛숲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곤 해서 그 인연으로 만났다. 책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숲>이었다.
이 책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책이다. 그녀가 사는 동네 뒷산 궁산의 숲에서 만나는 나무들에 대한 사랑, 숲에 깃든 곤충, 벌레, 지의류, 꽃, 새들과 같은 작은 생명들에 대한 사랑,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이 나무가 베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작은 새들에게 가지 한쪽을 내어주거나 곤충들이 몸을 숨길 수 있게 껍질 한 편을 내어줄 텐데. 이렇게 가지를 뻗었다면 나뭇잎이 햇빛을 더 많이 받았을 텐데. (P.34)
책을 마무리하면서 그 마음을 다져본다. 잘린 나무를 다시 돌이킬 수 없어도 계속 마주하고 기록하고 살필 것이다. 오늘도 지키고픈 생명들이 가득한 '내가 좋아하는 숲'으로 간다. (P.191)
사랑하면, 지키고 싶다
▲ 책 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숲> 책 표지 |
ⓒ 스토리닷 |
이를테면 은사시나무 씨앗이 솜털을 입고 날리는 것에 대해서 꽃가루로 오인한 민원이 있었고 (샛강숲에 있던 버드나무 종모에 대해서도 비슷한 오해와 민원이 있었단다), 결국 나무는 가차없이 베어졌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해당 숲을 함께 드나들던 다른 이와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숲이 가져다준 행복 조혜진 작가는 숲이 가져다준 행복을 나누고 싶어한다. |
ⓒ 조혜진 |
꾀꼬리 노래를 들으면 자기 맘대로 통역해서 글을 적어보기도 하는 그녀는 어린 딸들을 숲유치원에 보냈다가, 우연한 기회로 자신도 숲으로 가고 싶어져 숲을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이랑 어른이랑 함께 숲에 든 지 8년, 그녀는숲에서 그녀가 누리는 행복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지금은 숲과 책방을 매개로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 온기가 있는 작은 공동체들을 꾸려가는 일을 하며, 그녀는 숲의 나무처럼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 곁에 서서'라는 책방을 열어, 그 작은 공간에서 그림책을 읽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힘을 얻게 한다.
동네 이웃들은 책방에서 자신들이 하고픈 모임도 하고, 어디 생태수업을 위해 나간 책방지기를 대신해 책방을 지켜주기도 한다.
저만의 결을 지닌 층층나무 한 그루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난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던가. (p147)
▲ 나무 곁에 서서 <나무 곁에 서서> 책방지기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 |
ⓒ 조혜진 |
생명이 움트는 봄, 따뜻한 햇볕에 초록 기운 가득 찬 여름, 알록달록 빛깔이 고운 가을, 추위가 깊어 갈수록 고요한 쉼이 있는 겨울, 그리고 또다시 돌아와 새로운 봄.(p127)
내가 만약 다음 생에서 태어난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곧잘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게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말은 없어도 무언가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알아차린다. (p63)
나 역시 샛강 숲을 걸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무수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박새 엄마의 이야기, 청둥오리 가족 이야기, 시련을 이겨내는 버드나무들의 이야기, 지렁이들과 달팽이들과 뱀들의 이야기, 찔레덩굴과 쑥부쟁이의 이야기, 버림받은 토끼들 이야기… 모든 걸 안고 흘러가는 강물의 이야기 등등.
이 책을 읽으니 우리 주위의 나무들과 숲 속 생명들을 찬찬히 만나고 싶어진다. 오늘은 달콤한 향을 풍긴다는 계수나무를 보러 샛강숲 어귀로 걸어가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뉴스레터 한강편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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