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올리는 일상이 범죄 대상 돼” …서울대 딥페이크 공범 꾸짖은 법원
“피해자 인격 몰살과 같아 엄벌 필요”
서울대 동문 등 여성 수십 명을 대상으로 불법 합성 음란물을 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서울대 N번방) 사건의 공범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딥페이크 사건 중에선 비교적 높은 형량으로, 법원이 관련 범죄에 대한 엄벌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성착취물 소지도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유랑 부장판사는 28일 성폭력처벌법상 상습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모(28)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위 영상물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불쾌하고 굴욕적이며 역겨운 내용”이라며 “왜곡된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도구화했다. 피해자의 인격을 몰살하는 것과 같아 엄벌이 요구된다”고 질책했다.
박씨는 황토색 수의를 입은 채 선고 내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고가 끝난 뒤에는 쫓기듯 구속 피고인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방청석은 피해자 변호인과 일반 방청객 등으로 가득 찼다.
법원은 텔레그램 등 SNS를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환경에서 SNS의 거의 무제한적인 접근 가능성과 익명성, 디지털 편집 도구의 편리성을 악용했다”며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SNS에 게시하는 현대인의 일상적 행위가 범죄의 대상이 됐고 피해자들이 느낄 성적 굴욕감과 불쾌감, 정신적 충격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박씨가 반성하며 뉘우치고 있고, 공소제기 후 5명과 합의했고 6명에게 공탁한 점이 인정되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며 참작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부가 유리한 양형 이유를 밝힐 땐 방청석에서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피해자 중 1명을 대리하는 김민아 법률사무소 이채 변호사는 선고 후 기자들에게 “검찰 구형인 10년보다 많이 깎인 점은 아쉽다”면서도 “일상에서 SNS로 서로 안부를 묻는 일이 범죄에 이용됐다는 점 등이 판결 선고 내용에 들어간 점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딥페이크 성범죄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수사와 처벌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판을 방청한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의 이다경 활동가는 “셀카가 포르노로 돌아오는 세상에서 살 수 없기에 딥페이크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며 “지금도 많은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에서 일반인 여성들이 자경단이 돼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 국가의 책임을 더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 대한 입법 공백과 처벌 강화 필요성을 지적했다. 여변은 “성폭력처벌법은 배포할 목적이 없는 합성·제작 행위는 처벌할 수 없고 피해영상물의 사적 소지·구입·저장·시청 등의 행위에도 규제가 없다”며 “버츄얼휴먼(가상 인물) 형태로 제작되는 성범죄물 등의 제작·배포에 관해서도 입법 공백을 보완하고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고은 여변 인권이사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딥페이크 합성물이 실제 촬영물과 구분이 되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고 이 영상물로 받게 되는 피해자의 피해는 실제 촬영물과 다르지 않다”며 “현재는 허위 영상물에 대한 처벌이 더 약한데 실제 촬영물에 준하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처벌과 함께 유포된 불법 촬영물 삭제 등 피해자 지원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2020년 7월부터 지난 4월까지 딥페이크 방식으로 허위 영상물 400여개를 제작하고 1700여개를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서울대 N번방 사건 주범인 서울대 출신 A씨(40)와 온라인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성 수십명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서울대 졸업생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 이후 최근 인하대와 초·중·고교 다수 학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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