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못 본다는 그 드라마, 저도 한마디 안할 수 없네요
[채희태 기자]
<눈물의 여왕> 이후, 오랜만에 드라마 한 편을 정주행 중이다. ENA의 월화 드라마로 넷플릭스에서도, 디즈니플러스에서도, 그리고 티빙에서도 볼 수 없다는 <유어 아너>다.
이스라엘 드라마 원작으로 여러 번 리메이크됐을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에, 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명민·손현주가 각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팽팽하게 대치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니, 굳이 입소문을 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법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펜을 들게 만든 <유어 아너>라는 드라마를 통해 명예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한다.
하나, 추락하는 명예에는 날개가 없다
▲ 왼쪽부터 배우 손현주(송판호 역), 김명민(김강헌 역), 최무성(정이화 역) 드라마 <유어 아너>의 명예 3인방 |
ⓒ ENA |
둘, 참을 수 없는 명예의 가벼움
▲ 배우 허남준(김상혁 역) 우원그룹 첫째 아들, 김상혁. |
ⓒ ENA |
<유어 아너>는 서로 다른 능력치를 가진 인간이 각자의 범위에서 행하는 행위 또는 실천, 어려운 말로 '프락시스(Praxis)'가 하나의 사건과 만날 때, 어떠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파국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지키고자 하는 명예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진다.
그래서 일찍이 프레이리도 고전 <페다고지>를 통해 성찰(reflection) 없는 실천(praxis)은 행동주의(activism)라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 이 사회에선 확신에 찬 섣부른 실천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확신을 거두고 일단 의심하고 주저할 필요가 있다.
만약 교통사고를 낸 송호영이 사고 후 바로 119에 신고를 했더라면, 아들과 함께 자수를 하러 간 송판호가 아들이 죽인 사람이 김강헌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아니 알았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자수를 했더라면, 사고의 은폐를 도와주기 위해 개입한 국회의원 정의화의 사주를 받은 이상택이 사고차량을 빼돌리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김강헌의 아내, 마지영(정애연 분)이 범인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상택의 어머니와 어린 딸을 화재로 죽이지 않았다면, 김상혁이 동생의 복수를 위해 억울한 누명을 쓴 이상혁을 총으로 쏴 죽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유어 아너>라는 드라마가 안 만들어졌을 것이고,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인기리에 방영 중이고, 그 드라마 안에서 교통사고는 일어났고, 그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다양하고도 확신에 찬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기에 난 이른바 '명예'라는 것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셋, 명예란 과연 무엇인가
이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서 추락해 버린 명예를 보편적 관점으로 접근해 보겠다. 자고로 지켜야 할 명예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누구라도 지키고 싶은 물질 아닌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예가 아닐까?
필자가 아파트 앞 왕복 4차선 도로에 무의미하게 설치돼 있는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주변 눈치를 살피는 것은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며, 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어쩌다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 서 있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건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유어 아너>에 등장하는 송판호, 김강헌, 정이화가 생각하는 그 대단한 명예도 모두 같지는 않다. 판사 송판호의 명예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 건달 출신 회장 김강헌의 명예는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했던 말처럼 쪽팔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 정이화의 명예는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중한 명예를 지키는 데 가장 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드라마 <유어 아너>에서는 한마디로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냉철하게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던 김강헌은 부두파 두목, 조미연(백주희 분)이 엉뚱하게 죽은 이상택에 대해 거짓말을 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김강혁과 조미연(백주희 분) 사건의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김강헌이다 |
ⓒ ENA |
당신에게는 지켜야 할 명예가 있는가? 당신이 지키고 싶은 명예는 무엇인가? 혹시라도 그 명예 안에 거짓이 들어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 <유어 아너>의 제목을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지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세상이 워낙 복잡하고 정신없이 변하다 보니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할 명예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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