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길고양이는 엄마도 이름도 있습니다 [배우 김지성 에세이]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지성의 사는이야기입니다. <기자말>
[김지성 기자]
이 폭염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월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느 봄날, 아파트 단지 옆 풀숲에 고양이 포획틀을 설치한 샤샤(반려묘) 어머니는 맞은편 꽃밭에 몸을 숨긴 채 잠복 중이었다.
길고양이들의 TNR(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인도적인 방법으로 포획해(Trap), 중성화수술을 실시한 후(Neuter), 원래 포획했던 장소에 다시 방사하는(Return)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 말)을 돕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칼바람에 얼어버린 맨손으로 날렵하기 이를 데 없는 야생동물을 어떻게 포획할지 멀리서 지켜봐도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단지 내에 급속히 늘어난 한쪽 귀끝이 잘린(중성화수술 완료표시) 고양이의 수를 보고는 범상치 않은 실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동네 카페에 들를 때면 아픈 고양이들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도 돕는 샤샤 어머니의 미담이 끊이질 않았다. 이웃 주민들 역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치료비에 보태는 선행에 동참했다.
아파트 단지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고양이 급식소는 언제 봐도 아침, 저녁으로 청결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길고양이의 끼니를 꼬박 챙기는 샤샤 어머니의 흔적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 또한 녹록지 않을 텐데, 이토록 동물에게까지 따뜻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배우라는 직업상 인터뷰어가 되어 보기로 작정한 것도 처음, 오가며 눈인사는 나눠도 정작 다음 말을 꺼내지 못해 주저한 적도 여러 날이었다. 그러나 고봉처럼 쌓아올린 밥과 신선한 물을 채워주고 돌아오는 그녀의 생색없는 미소를 볼 때마다 감탄을 넘어 궁금함 또한 부풀어 올라, 결국 용기 내어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샤샤 어머니, 제가 인터뷰 요청을 드려도 될까요?"
▲ 샤샤 어미와 새끼들. 편안히 젖 먹이는 모습. |
ⓒ 샤샤 어머니 |
"2010년, 큰 아들이 1년 정도 독립해 살다가 집으로 들어왔어요. 근데 이삿짐들 중에 동물 이동용 케이지가 있는 거예요. 자기 방에 슬그머니 들여 놓더라구요. 그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어요. 처음엔 고양이를 어떻게 기르냐, 내다버리라고 했죠. 그렇게 저희 집에 첫 발을 들여놓은 고양이 이름이 망고예요.
8년을 함께 살다가 망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자 상실감이 컸어요. 그러자 큰 아들이 다시 이웃 동네에서 임시보호 중이던 삼색이 길고양이를 수소문해서 데려왔어요. 2019년 입양한 첫째 루비는 지금까지 잘 살고 있구요.
둘째 회색빛의 러시안 블루 샤샤는 같은 해 2019년, 친구가 회사 근처에서 새끼 다섯 마리와 부모까지 일곱 마리를 넣어둔 케이지를 발견했다고 연락을 했어요. 아빠 고양이는 이내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끼 한 마리도 현장에서 입양됐어요. 나머지 고양이들을 어찌할 바 몰라 친구가 전전긍긍 하길래 일단 전부 데려와 보라 했죠. 두 달 정도 보살핀 후, 새끼 고양이 샤샤만 남기고 건강하게 전부 입양 보냈어요.
▲ 깜돌이(반려견) 엄마가 처음 콩떡이를 발견했을 때 보내준 사진. |
ⓒ 깜돌이(반려견) 엄마 |
습식 사료를 줬더니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더라구요. 어미를 잃어버린 건지 아님 버려진 건지, 데리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됐어요. 하지만 그 전에 날이 너무 추웠어요. 결국 품에 안고 집에 왔죠. 처음엔 설사도 심해서 얼마 못 살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 4일째 되는 날, 스스로 일어나 사료를 오도독 오도독 깨물며 한 개씩 먹더니 점점 살아났어요. 콩떡이는 유일하게 젖먹이 때부터 직접 키운 고양이에요. 그 전까지는 거처만 마련해주면 샤샤의 어미나 쵸코가 알아서들 키웠으니까요.
막내 콩알이는 2023년에 태어난 길고양이에요. 새끼 때부터 밥을 줬는데, 워낙 순해서 제가 만져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친밀감이 잘 형성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눈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이미 늦었다고 하더라구요. 각막 손상이 심해서 더 놔두면 뇌까지 전이된다 하기에 적출 수술을 시켜줬어요.
▲ 콩알이 |
ⓒ 샤샤 어머니 |
"망고 보내고 나서부터요. 처음엔 단순히 밥과 물만 챙겨줬어요. 그릇이 비워지면 또 채워놓고, 누군가 와서 먹고 가겠지란 생각으로요. 어느 날부턴가 고양이들이 알더라고요. 그러더니 새끼들을 데리고 와서 인사시키는 거예요.
하루는 소식이 뜸했던 길고양이 토토가 저희 집 앞 나무를 타고 올라와 거실 안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내다 봤더니,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 새끼 다섯 마리가 은행잎에 뒤덮여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거예요. 토토는 나무에서 내려와 앉아 저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고요.
고양이는 새끼를 낳으면 처음엔 안 보여줘요. 꽁꽁 숨어서 육아를 하죠. 그러다 젖떼고 사료 먹을 단계가 되면 새끼들을 데리고 와요. '이제 이 사람이 밥 줄 거야'라고 알려주며 밥자리도 함께 보여주고요. 그리고 어미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요."
- 콩알이 외에도 아픈 길고양이를 여러 번 구조하셨잖아요?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이 3개월 정도 되면 바로 독립시켜 버려서, 이후에 잘못될 확률이 높아요. 토토의 다섯마리 새끼들도 밤톨이와 샤이니 두 마리만 남았구요. 어느 날 보니까, 밤톨이가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거예요. 나중엔 더 못 걷겠는지 주차장 계단 밑에 마련해 놓은 케이지 안에 누워 있었어요.
조심히 살펴보니 다리에 고름이 줄줄 흐르고 있더라구요. 서둘러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미 뼈도 다 으스러졌다며 수술 치료에 별 의미가 없다고 하셨어요. 급한 대로 괴사된 피부만 응급처치로 꿰메주셨죠. 살 확률도 낮을 거라면서요.
그때부터 녀석이랑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어요. 케이지 안에 패드를 몇 겹으로 깔아놓은 다음, 하루에 대소변 몇 번씩 받아내고 두 번씩 약 먹여가며 꼬박 50일을 간호해줬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다 나은 거예요. 아무래도 케이지 안에 오래 갇혀 있는 동안 뼈가 붙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밤톨아~!" 하고 부르면 어디서든 나타나 쫓아와요.
- 올봄 꽃샘추위에도 풀밭에서 잠복 중인 모습을 여러 번 뵈었더랬어요. 길고양이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위함이었죠?
"어미 초록이의 새끼들 중, 봄이는 작년 봄에 태어나서 봄이, 가을이는 재작년 가을에 태어나서 가을이라 이름 붙여줬어요. 그러고 나서 한동안 안 보이길래 궁금했는데 또 새끼들을 낳은 거예요, 네 마리나. 그 전에도 해마다 몇 마리씩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는데, 올해는 아예 작정을 한 거죠. 두 달 동안 20여마리 가까이 포획했으니까요."
- 포획한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나요?
"동물보호센터에 데리고 가면 한 마리는 무료로 수술을 시켜줘요. 두 마리까지 데려갈 때도 있는데, 그럼 나머지 한 마리는 제 사비로 수술시켰어요. 길고양이라서 할인적용도 받을 수 있어요. 하루에 한 마리만 신청이 가능해서 매일 오전에 먼저 신청해놓고 포획했죠. 이제 저희 단지 내에서 새끼고양이 보기는 힘들 거예요."
- 봉사하면서 힘든 점은 뭔가요?
"다행히 단지 내에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덜한 편이라 감사하게 생각해요. 주민들께 피해주기 싫어서 주변 쓰레기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있구요. 또 동네 이웃분들도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수술비도 함께 보태주시고, 처음 콩떡이를 발견한 깜돌이(반려견) 엄마는 가끔 사료 한 포대랑 간식도 챙겨주세요. 결코 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에요."
- 그럼에도 더러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하며 매일, 꾸준히 봉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요. 계속 봉사를 이어가는 이유가 뭔가요?
"애들이 기다리니까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건데 한번 밥주고 말면 녀석들은 굶잖아요. 제가 어디 볼 일 보고 밤 늦게 돌아오면 그때까지도 기다리고 있어요. 늘 안 보이게 숨어 있다가도 부르면 툭 튀어나와서 인사해요. 오늘 못 본 애가 있어 걱정된다 싶으면 다음 날에라도 꼭 얼굴을 보여줘요.
그리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또다른 계기가 있어요. 예전에는 단지 내 쓰레기 수거함 안의 종량제 비닐들이 사방팔방 자주 뜯겨져 있었거든요. 어떤 날엔 어미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 위에 올라가 새끼들 먹이겠다며 뚜껑을 열어보려고 아등바등 애쓰는데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런데 밥을 준 후로는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일도, 쓰레기 봉투 찢는 일도 싹 없어졌어요. 배가 부르니까 쓰레기 뒤질 수고가 사라진 거죠. 제가 힘든 것보다 고양이들로부터 행복을 받는 게 열 배 백 배 더 커요. 오늘도 건강하게 잘 살아줘서 다행이구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 나를 처음 보자마자 몸을 스치며 인사하는 봄이. |
ⓒ 김지성 |
놀이터로 올라와 봄이를 부르니, 봄이 역시 모습을 보이며 화답했다.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듯 쉼없이 옹알거리고 샤샤 어머니 역시 그랬냐며 녀석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인 사랑과 교감을 쌓았으면 이와 같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걸까. 더욱이 봄이는 내게도 서슴없이 다가와 자기 몸을 스치며 인사를 했다. 저녁 산책길에 다시 마주친 사샤 어머니는 아프거나 다친 애가 없는지 살피러 간다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셨다.
오랜 의문이 그제서야 비로소 풀렸다. 단지 내 고양이들이 왜 사람이 지나가도 경계심 없이, 한가롭게 풀밭에서 뒹굴고 놀았는지. "밤톨이, 봄, 여름, 가을, 초록이, 토토, 도토리, 까미, 호박이....!" 하고 부르면 대답하는 이 아이들은 적어도 '이름 있는 고양이'들이었다. 거기엔 손수 이름도 붙여주고 늘 곁에서 보살펴주는 든든한 샤샤 어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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