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서류 그냥 들고 나왔다...정보사 군무원, 억대 받고 中에 요원 명단 유출

이근평 2024. 8. 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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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요원’의 신분 등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은 수년에 걸쳐 억대 현금을 받고 수십 건의 정보를 중국 측에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북한과의 직접적 연결 고리는 확인되지 않아 간첩 혐의가 적용되지는 않았다.

국군정보사령부 로고.

국방부 검찰단과 국군방첩사령부는 28일 정보사 소속 군무원 A씨를 군형법상 일반이적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전날(27일) 기소했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 그는 정보사 내부의 보안 취약점을 악용해 군사 기밀을 지속적으로 탐지 및 수집, 누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검찰단에 따르면 A씨가 중국 정보기관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포섭된 시점은 2017년으로 파악된다. A씨는 같은 해 4월 자신이 구축한 중국 내 정보망 역할을 하는 인사들과 접촉하기 위해 옌지(延吉)로 갔다가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후 중국 공안 요원이라고 신분을 밝힌 인물 B씨는 A씨를 조사하면서 실제 신분을 중국 정보요원이라고 밝히고 포섭을 시도했다. 가족에 대한 협박 때문에 이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는 게 A씨의 진술이다.

귀국한 A씨는 규정대로라면 중국에서 체포된 사실을 군 당국에 신고해야 했지만, 이를 숨긴 채 같은 해 11월부터 2~3급 비밀을 유출하기 시작했다.

그가 기밀을 빼돌린 수법은 단순하고 허술했지만 동시에 효과적이었다. 사진을 찍고, 서류를 들고 나가고, 화면을 캡처하는 식이었다. USB 등도 필요 없었다. 그만큼 정보사의 보안이 취약했다는 뜻이다.

팀장 급인 A씨는 상대적으로 쉽게 기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본인이 생산한 비밀은 영외 숙소로 가져 갔고, 다른 부대 비밀의 경우 대출 받은 뒤 사무실에서 열람했다. 무음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사진 촬영, 화면 캡처, 메모 등 방식 등으로 빼돌린 비밀을 중국 인터넷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했고, 이를 통해 B씨에게 넘어갔다. 클라우드 계정의 암호는 특정 게임의 채팅 방 내 음성 메시지로 공유됐다.

이렇게 누설된 군사기밀은 확인된 것만 30건에 달한다. 문서 형식 12건, 음성 메시지 형식 18건이다. 여기엔 중국·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일부 블랙요원의 신상정보, 정보사 임무와 조직 편성, 군 당국의 정세 전망 등이 담겼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활동하는 휴민트(인적 정보 수집)와 이번 사건은 관계가 없다는 게 검찰단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요원들의 해외 첩보 활동에는 직간접적인 타격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애초에 B씨가 A씨를 특정해 접근한 것도 신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 A씨의 신분도 또 다른 수법의 기밀 유출로 이전에 노출됐을 수 있다. A씨가 유출한 요원 명단 등도 이런 식의 추가 포섭에 활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증거로 유출이 입증된 비밀은 2022년 6월 이후로 한정된다”며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실제 빠져나간 기밀은 30건을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A씨가 휴대전화에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보안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 무력화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보안 취약점을 점검한다는 입장이다. 보안 애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촬영이나 녹음 등은 제한되기 때문이다.

검찰단에 따르면 범행 과정에서 A씨는 매번 다른 계정으로 클라우드에 접속하고 파일마다 비밀번호를 달리하는 등 치밀하게 흔적을 지우고 수사를 피하려 했다. 입금이 확인된 시점은 2019년 5월 이후로, A씨는 차명계좌를 통해 약 1억 6000만원을 받았다. 검찰단 관계자는 “A씨가 원래 요구한 액수는 모두 4억원으로 파악됐다”며 “가족에 대한 위협을 범행 이유로 댔지만, 사실은 돈 문제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국방부가 공개한 정보사 군무원 기밀 유출 사건 체계도. 국방부


앞서 방첩사는 지난 6월 A씨의 범행을 인지하고 수사에 착수해 지난 8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과 함께 군형법상 일반이적 및 간첩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했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 즉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를 간첩죄로 본다. 방첩사는 A씨가 B씨와 북한 사이 연계성을 인지했을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두고 간첩죄를 적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단은 그를 기소하며 간첩 혐의는 제외했다. 해당 기밀을 B씨에게 줄 때 북한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A씨가 인식했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검찰단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 의뢰한 자료 추가 분석 등을 통해 재판 과정에서 간첩죄가 다시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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