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뜨면 해결? 이 영화가 건네는 새로운 '행복론'

장혜령 2024. 8. 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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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한국이 싫어서>

[장혜령 기자]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두 번째 작품이다. 원작은 10여 년 전에 나왔으나 여전히 진행 중인 청년 세대의 행복론과 절망론의 고찰, 시대상을 다루고 있다. 원작의 설정과 구성인 비슷하나 호주가 아닌 여성인권과 생명존중 사상이 깊은 뉴질랜드로 떠나는 점, 본가가 서울 아현동에서 인천으로 바뀌며 출퇴근 '지옥철'이 부각된다는 점, 영주권을 얻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민 1세대 가족의 아빠 등이 각색됐다.

영화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주목받았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 아역 시절 봉준호 감독의 눈에 들어 <괴물>에 출연한 이후 안정적인 성인 배우로 성장한 고아성이 만나 청춘을 향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한국의 겨울과 무채색 톤, 뉴질랜드의 여름과 따뜻한 톤을 극명하게 대비해 극중 주인공인 계나(고아성)의 마음을 형상화한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직관적인 제목처럼 '헬조선' 이탈을 부추기는 속사정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담론으로 이어지기 충분하다.

행복할 자신이 없어 한국을 벗어나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어렵게 금융회사에 취직한 계나는 인천에서 강남까지 매일 출퇴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름에는 그나마 낫지만 극심하게 추위를 타는 계나에게 한겨울에 바닥만 보일러가 돌아가는 웃풍 심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다.

재건축 바람으로 들썩이던 부모님은 집 사는 데 돈 좀 보태라며 성화다. 뼈빠지게 모은 돈을 재건축 부담금으로 쓰길 바란다. 한국 장녀가 벼슬인가. 뭐든 참고 희생하며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가. 이번에는 마음 약해지지 않을 거다. 벌써 20대 후반, 돈, 경력, 성취감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 대체 뭘 위해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며 회의감만 든다. 이 악물고 참으면서 버티다 보면 보상받는다는 말,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지만 더는 무리다. 연료가 바닥나 버렸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났는데 추위는 타지, 끈기 있게 해볼 생각도 없으면서 깐깐하기는 오죽,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소위 'SKY 대학' 출신도 아니다. 한국에서 본인은 경쟁력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커진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건데 한국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어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새롭게 시작할 곳에서 작은 행복이라고 부디 찾길 희망한다. 직장, 가족, 연인(김우겸)을 뒤로하고 일 년 내내 따뜻한 삶을 찾기로 결심했다.

뉴질랜드에 간 계나는 서툰 영어 때문에 식당 허드렛일부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유학원 동기 재인(주종혁)을 만나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는다. 힘든 육체노동 후 공원에서 마시는 우아한 와인, 전문직과 아르바이트도 크게 월급 차이 없는 평등, 무엇보다 따뜻한 나라답게 추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큰 기쁨을 알아가던 계나는 살짝 그을린 피부와 유연해진 영어처럼 조금씩 타국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영화는 행복론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진짜 행복이 무엇일지 질문을 던진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고,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만 성공한 인생이라 말하는 한국 사회 궤도를 이탈해, 적당히 일하고, 펑펑 놀 줄도 아는 평범한 뉴질랜드인이 되어간다.

앞 세대의 이민과는 다른 방식의 이방인을 꿈꾼다. 전쟁, 생계를 떠나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단순히 한국에서 지쳐 낙오자가 돼 도피하려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똑같은 인재를 찍어내듯 양산하는 한국보다, 청소를 하든 교수를 하든 비슷한 돈을 받고 사는 곳에서 살고 싶은 선택이다. 극심한 경쟁 보다 작은 행복이 보장된 나라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적응해 나가겠다는 성장 의식이 과거 이민과는 확연히 다르다. 모험을 통해 자기 행복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꿈을 펼칠 수 있고, 꿈을 꺾지 않는 사회를 향하겠다는 자유의지다.

계나는 디즈니 동화 <추위를 싫어한 펭귄> 속 파블로(펭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추위를 싫어해 이글루 안에 난로를 피우고 사는 펭귄은 '넌 왜 그러냐'라는 집단의 눈총을 받다가 결국 하와이같이 생긴 섬에 도착한다. 짙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마을버스를 타고 12정거장을 지나 1호선을 타고 가장 복잡하다는 신도림에서 환승한다. 또다시 2호선으로 갈아타 30분을 더 가 강남에 내린다. 어렵게 강남에 입성했지만 계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공허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해 취업까지 휩쓸리긴 했지만 개인의 만족은 희미해져 버린다.

외국으로 떠나기 전, 7년 만난 남자친구 지명은 무턱대고 결혼을 제안한다. 집안 차이를 실감케 만드는 중산층 가족은 언제나 빈곤한 계나를 주눅 들고 피곤하게 했다. 주명은 '한국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라며 한국이 좋은 이유를 끊임없이 설파해나간다. 하지만 학벌, 재력,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한국 시스템에 질려버렸다.

선택과 책임, 삶의 방식 차이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과연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불안한 미래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암담한 미래를 개선할 방법을 찾기보다 그저 현재를 좇기 바쁘다. 소확행, 욜로가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다만 계나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모래성이 아닌, 자기가 만든 견고한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내내 고군분투한다. 새로운 세상 속으로 내비게이션을 재설정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능동적으로 한발 걸어 들어간다.

원작 출간 후 1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헬조선을 뜨면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그곳조차 낙원이 될 수 없다. 계나의 방식이 정답이 아닌 것처럼 타국살이가 낭만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바라던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작은 행복을 모았으나 뉴질랜드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도피처나 낙원이 아닌 그저 숨 쉴 수 있는 기쁨, 새로움이 있는 만족을 향한 행복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화할 것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따라 견딜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지고 그에 맞는 책임은 스스로 지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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