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뜨면 해결? 이 영화가 건네는 새로운 '행복론'
[장혜령 기자]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 (주)디스테이션 |
영화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주목받았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 아역 시절 봉준호 감독의 눈에 들어 <괴물>에 출연한 이후 안정적인 성인 배우로 성장한 고아성이 만나 청춘을 향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한국의 겨울과 무채색 톤, 뉴질랜드의 여름과 따뜻한 톤을 극명하게 대비해 극중 주인공인 계나(고아성)의 마음을 형상화한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직관적인 제목처럼 '헬조선' 이탈을 부추기는 속사정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담론으로 이어지기 충분하다.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 (주)디스테이션 |
재건축 바람으로 들썩이던 부모님은 집 사는 데 돈 좀 보태라며 성화다. 뼈빠지게 모은 돈을 재건축 부담금으로 쓰길 바란다. 한국 장녀가 벼슬인가. 뭐든 참고 희생하며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가. 이번에는 마음 약해지지 않을 거다. 벌써 20대 후반, 돈, 경력, 성취감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 대체 뭘 위해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며 회의감만 든다. 이 악물고 참으면서 버티다 보면 보상받는다는 말,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지만 더는 무리다. 연료가 바닥나 버렸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났는데 추위는 타지, 끈기 있게 해볼 생각도 없으면서 깐깐하기는 오죽,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소위 'SKY 대학' 출신도 아니다. 한국에서 본인은 경쟁력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커진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건데 한국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어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새롭게 시작할 곳에서 작은 행복이라고 부디 찾길 희망한다. 직장, 가족, 연인(김우겸)을 뒤로하고 일 년 내내 따뜻한 삶을 찾기로 결심했다.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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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세대의 이민과는 다른 방식의 이방인을 꿈꾼다. 전쟁, 생계를 떠나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단순히 한국에서 지쳐 낙오자가 돼 도피하려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똑같은 인재를 찍어내듯 양산하는 한국보다, 청소를 하든 교수를 하든 비슷한 돈을 받고 사는 곳에서 살고 싶은 선택이다. 극심한 경쟁 보다 작은 행복이 보장된 나라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적응해 나가겠다는 성장 의식이 과거 이민과는 확연히 다르다. 모험을 통해 자기 행복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꿈을 펼칠 수 있고, 꿈을 꺾지 않는 사회를 향하겠다는 자유의지다.
계나는 디즈니 동화 <추위를 싫어한 펭귄> 속 파블로(펭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추위를 싫어해 이글루 안에 난로를 피우고 사는 펭귄은 '넌 왜 그러냐'라는 집단의 눈총을 받다가 결국 하와이같이 생긴 섬에 도착한다. 짙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마을버스를 타고 12정거장을 지나 1호선을 타고 가장 복잡하다는 신도림에서 환승한다. 또다시 2호선으로 갈아타 30분을 더 가 강남에 내린다. 어렵게 강남에 입성했지만 계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공허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해 취업까지 휩쓸리긴 했지만 개인의 만족은 희미해져 버린다.
외국으로 떠나기 전, 7년 만난 남자친구 지명은 무턱대고 결혼을 제안한다. 집안 차이를 실감케 만드는 중산층 가족은 언제나 빈곤한 계나를 주눅 들고 피곤하게 했다. 주명은 '한국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라며 한국이 좋은 이유를 끊임없이 설파해나간다. 하지만 학벌, 재력,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한국 시스템에 질려버렸다.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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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출간 후 1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헬조선을 뜨면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그곳조차 낙원이 될 수 없다. 계나의 방식이 정답이 아닌 것처럼 타국살이가 낭만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바라던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작은 행복을 모았으나 뉴질랜드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도피처나 낙원이 아닌 그저 숨 쉴 수 있는 기쁨, 새로움이 있는 만족을 향한 행복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화할 것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따라 견딜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지고 그에 맞는 책임은 스스로 지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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