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코미디언이 만든 6억7600만 달러 '흥행영화'
[양형석 기자]
박세민과 전유성, 이경규 등은 영화감독에 도전했던 개그맨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관객들에게 외면 받았다는 '슬픈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3월에 개봉한 <웅남이>를 통해 개그맨으로서 오랜만에 영화 연출에 도전한 개그맨 박성광 역시 전국 31만 관객으로 흥행에 실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현재 국내에서 개그맨 감독의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은 심형래 감독의 <디 워>다.
하지만 할리우드에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감독과 배우를 겸하거나 감독으로 전업해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 적지 않다. <겟아웃>과 <어스>, <놉> 등을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은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미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날렸다. <청춘스케치>와 <케이블 가이>, <쥬랜더>, <트로픽 썬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등을 연출한 벤 스틸러 역시 코미디언 출신의 대표적인 만능 엔터테이너다.
할리우드에 코미디언 출신 배우와 감독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한국에 비해 연예인들의 직업적 경계가 확실히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코미디언이 영화에 출연하거나 직접 영화를 만든다 해도 영화 자체로 작품을 즐기는 문화가 한국보다 먼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덕분에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세 편에 걸쳐 제작된 마이크 마이어스 주연의 <오스틴 파워>도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 전혀 다른 이미지의 오스틴 파워스(왼쪽)와 닥터 이블은 마이크 마이어스 한 사람이 연기했다. |
ⓒ (주)케이알씨지 |
마이어스는 1992년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영화 <웨인스 월드>를 통해 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영화 초반 마이어스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몇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 입지를 넓히던 마이어스는 1997년 주연과 각본, 제작에 참여한 <오스틴 파워-제로>를 선보였다.
165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든 <오스틴 파워-제로>는 개봉과 함께 큰 화제가 됐고 세계적으로 6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고 <오스틴 파워>는 1999년에 개봉한 속편이 3억 1300만 달러, 2002년에 개봉한 3편이 2억 9600만 달러의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극장가에 큰 이변을 일으켰다.
사실 마이어스 최고의 흥행작은 <오스틴 파워>가 아니다. 마이어스는 지난 2001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슈렉>에서 슈렉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2010년까지 4편에 걸쳐 제작된 <슈렉> 시리즈는 무려 29억 8500만 달러라는 눈부신 흥행 성적을 올렸다(마이어스는 오는 2026년 개봉 예정인 < 슈렉5 >에서도 슈렉의 목소리를 연기할 예정이다). 마이어스는 <슈렉>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9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카메오 출연한 마이어스는 2013년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맨: 셰프 고든의 전설>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에 개봉해 9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남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퀸의 음악을 듣고 퇴짜를 놓는 음반 제작자로 출연하기도 했다(실제로 마이어스는 자신의 영화에 퀸의 음악을 사용할 정도로 퀸의 열성팬이다).
▲ <오스틴 파워-제로>는 국내에서 3년이나 늦게 개봉하면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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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개봉한 <오스틴 파워-제로> 역시 영국의 비밀 요원 오스틴 파워스(마이크 마이어스 분)가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닥터 이블(마이크 마이어스 분)에 맞서 싸우는 첩보 액션영화다. <오스틴 파워-제로>도 < 007 > 시리즈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 007 >이나 <미션 임파서블>의 진지함을 빼고 대신 마이크 마이어스의 유쾌함을 가득 담아 런닝 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했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마이크 마이어스의 천연덕스런 '1인다역' 연기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오스틴 파워-제로>에서 방정맞은 스파이 오스틴 파워스와 잔인하지만 어딘가 모자란 사이코 악당 닥터 이블을 동시에 연기했다. 여기에 2편에서는 거대한 체구의 팻 바스타드, 3편에서는 80대 할아버지 골드멤버 역까지 맡아 다양한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하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안타깝게도 <오스틴 파워> 시리즈는 국내에서 개봉 순서가 뒤엉키면서 관객들에게 혼란을 줬다. 북미에서 1997년에 개봉한 <오스틴 파워-제로>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고 1999년 2편이 먼저 개봉했다. 그리고 2편이 서울 관객 13만으로 흥행하자 2000년 11월 뒤늦게 <오스틴 파워-제로>라는 제목의 1편이 개봉했다. 하지만 <오스틴 파워-제로>는 서울 관객 6400명으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 세 편을 모두 연출한 제이 로치 감독은 2001년 <미트 페어런츠>를 만들며 명성을 얻었다. 2005년 <미트 페어런츠2>까지 연출한 로치 감독은 <첫 키스만 50번째>의 기획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제작에 참여했다. 로치 감독은 지난 2020년 샤를리즈 테론과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 주연의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연출하기도 했다.
▲ <오스틴파워-제로>의 히로인 바네사는 속편에서 닥터 이블이 보낸 암살용 로봇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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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가이>의 크리스 그리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하워드 덕 목소리 연기를 했던 할리우드의 배우 겸 성우 세스 그린은 <오스틴 파워-제로>에서 닥터 이블의 아들 스캇을 연기했다. 평생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대뜸 나타나 세계 정복을 운운하자 미쳤다고 거부하던 스캇은 2편부터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마스코트 미니미(고 베른 트로이어 분)가 등장하면서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1930년생 노장배우 로버트 와그너가 연기한 '넘버2'는 비정상적인 인물이 가득한 닥터 이블과 그의 부하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상에 가까운 인물이다. 게다가 사업 수완이 매우 뛰어나 닥터 이블이 냉동 인간이 된 사이 38개 주에 유선채널사업, 클리블랜드에 철강사업, 텍사스에 선박사업, 시애틀에 정유사업 등을 발전시켰다. 2편에서는 작은 커피숍에 투자하는데, 그곳이 그 유명한 '별다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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