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되새김질 끝에 깨달은 사랑과 탄식

김건의 2024. 8. 2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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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애프터썬>

[김건의 기자]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기억은 온전히 보존되지 않는다. 지나가버린 유년시절의 기억은 더욱 그렇다. 캠코더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녹화한다고 해도 매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할 수 없고, 온전히 나의 시선과 일치된 시간들을 보관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종종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다가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크게 부풀려 미화시킨다. 우리는 그걸 추억이라고 이름붙이고 종종 기억의 서랍장에 두었다가 꺼내 본다.

<애프터썬>은 어찌 보면 어렸을 적 아버지와 떠났던 여행을 다시 떠올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영화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샬롯 웰즈 감독의 슬픈 자기변명처럼 보였다. 영화는 11살이었던 소피가 당시에 헤아릴 수 없었던 캘럼의 우울과 절규를 영화를 통해 어떻게든 되새겨보고자 한다.
 영화 <애프터썬>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앞서 언급했듯 우리의 삶을 통째로 녹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억은 지난 시간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기억은 CCTV를 돌려보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삼켜버렸던 순간을 다시 뱉고 헤집어 낸 다음 다시 삼키는 되새김질에 가깝다. 그리고 이 과정은 삼켰던 순간들을 원상태로 돌려놓지는 않는다. 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는 기억은 이미 짓이겨져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과거의 시간들을 제멋대로 보존하는 행위에 가깝다. <애프터썬>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제멋대로 보존하는 행위 그 자체이며, 이 행위는 썩 즐겁지만은 않다.
딸인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아버지 캘럼(폴 매스칼)과 같은 나이가 됐다. 소피는 어렸을 때 자신과 캘럼이 녹화했던 튀르키예 여행을 돌려본다. 소피는 녹화된 과거를 관찰하면서 그때 당시 캠코더에는 찍힐 수 없었던 캘럼의 내면을 어떻게든 상상하고 이미지로 구현하려고 한다. 이제 막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선 소피는 필사적으로 우울과 싸우고 있던 캘럼의 몸부림을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돼서야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게 된 소피는 캠코더에 기록된 시간들을 응시한다.
 영화 <애프터썬>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애프터썬>은 소피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슬픔을 동반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소피는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어두컴컴한 클럽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캘럼의 내면을 추측할 수 있을 뿐, 캘럼을 클럽 밖으로 데려올 수 없다.

영화는 종종 캘럼의 시점으로 11살 소피의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다가도, 간접적으로 캘럼의 심적 상태를 드러내는 장면들도 불규칙적으로 내비친다. 전자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겠지만 후자는 11살 소피로서는 당시 알아볼 수 없었던 캘럼의 우울이다. 그리고 후자는 당연하게도 어른이 된 소피가 기억을 되새김질한 끝에 상상하는 이미지다.

샬롯 웰즈 감독은 11살 소피의 기억의 사진들, 그리고 어른이 된 소피가 상상하는 캘럼의 절규를 겹겹이 이어붙였다. 왜 이런 힘든 작업을 했을까. 당신과 같은 나이가 돼서야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말과 행동들을 이제서야 알아차리고 뒤늦은 슬픔을 삼키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애프터썬>은 거대한 자기변명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영화 <애프터썬>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실상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처럼 여겨지는 튀르키예에서의 시간들은 캘럼이 소피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신의 우울을 삼켜가며 딸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자 했고, 딸은 그가 남겨준 추억을 톺아보며 아버지의 깊은 우울을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서 샬롯 웰즈 감독은 퀸의 'Under Pressure'로 영화에 방점을 찍는다.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미 떠나버린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아버지의 사랑'같은 진부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당신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영화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만 같다.

<애프터썬>은 어른이 된 소피가 과거의 아버지의 우울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함께 춤을 추는 영화다. 이제는 당신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신이 없음에 탄식하면서. 냉소적으로 보자면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변명 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자기변명 끝에 이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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