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찍는여자들] 인생에서 고통을 만났을 때 필요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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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기자]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이지글방>에는 S님이 있다. 처음부터 필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챘는데 이번 과제 제출 시간에는 놀라운 글을 써왔다. 글을 읽는 내내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본, 더불어 나는 결코 그 재능을 넘어설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살리에리의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학인들과 함께하는 합평 시간, 나는 딱 한 마디로 S님의 글을 평했다.
"나중에 어디 가면 꼭 <이지글방> 출신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뿌잉)"
▲ 여성, 글쓰기, 연대가 있는 곳 이지글방 21년차 방송작가인 내가 운영하는 무료 글쓰기 모임 |
ⓒ @모션엘리먼츠_이지아 |
우선은 계속 쓰시라 했다. 아직은 시리즈 중에 세 편 밖에 나오지 않은 터라, 이 글로만 판단할 수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우선 한번 써보자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글이겠다는 말에, S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잖아도 '이게 일기야, 글이야' 자기 혼자 고민하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보자!'라고 결심하고 용기내서 제출했다고 한다.
평균 이상을 뛰어넘은 잘 쓴 글은 누구나 알아보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지글방>은 넉 달째 글쓰기를 배우면서 이미 글쓰기에 관한 안목이 생긴 분들이 아닌가. 많은 분들이 칭찬과 감탄을 늘어놓는 가운데 H님은 더욱 열광한 나머지 질문을 쏟아냈다.
-정말 글쓰기 모임이 <이지글방>이 처음이에요?
-다른 데서 글쓰기 배우신 적 없어요?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어떤 책 읽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어요?
S님은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글쓰기 모임도 처음이라고 하셨다. 딱히 이렇다고 내세울 만한 책도 없고 <이지글방>에서 추천하는 책은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다 S님은 갑자기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이때 나이도 어린데 정말 힘들었거든요. 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성장한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훌륭한 글을 써온 그를 보며 나 역시 크게 깨달았다. 글쓰기를 처음 배우는 분들이 "쓸 게 없어요"라고 하소연할 때 죄송스럽지만 팩폭을 하는 편이다.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이 없는 거예요."
물론 우리는 하루에도 소위 말하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허나 그 생각들은 결코 글이 될 수 없다. 글쓰기란 스쳐 지나가는 생각 중 하나를 붙잡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돋보기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랍 속에 넣어뒀다가 다시 꺼내보기도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적어도 '글'이라는 형태를 갖출 수 있다.
글쓰기 초심자의 글은 기복이 심하다. 조금 글 실력이 부족하다 싶은 분이 아주 괜찮은 글을 쓰신 적이 있다. 한껏 칭찬해 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 자주 깊이 생각했던 이야기였단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평소 실력보다 많이 부족한 글을 제출했을 때는 십중팔구 본인이 잘 모르는 이야기거나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를 써냈기 때문이다. 생각이 부족하면 글은 설익기 마련이다.
글은 생각의 산물이고, 생각은 글이 된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자주 하고,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반대로 늘 하는 생각만 하면, 글도 사람도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안 해 보던 생각도 하고 자료도 찾아가면서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글쓰기의 가치가 생긴다. <이지글방>에서 공통주제와 자유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S님은 나로서는 감당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었고 그것을 글로 승화해 가는 중이다. 내가 부러워한 그의 재능은 어쩌면 그 속에서 얻은 진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시기를 원망하고 피하려 하는 대신 똑바로 마주하고, 깊이 들여 보면 그저 고통과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는 작은 점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를 보내면서 대신 '오래, 많이 생각했다'는 그의 말에서 고통이 지닌 희망을 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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