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혐오' 인권위원장 후보, 날 세우지 않는 22대 국회

복건우 2024. 8. 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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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민주, 안창호 퇴행적 인식 비판 논평 전무... 차별금지법 논의도 '지지부진'

[복건우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 이정민
[기사수정: 28일 오후 2:37]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차별금지법·양심적 병역거부 등 주요 인권 사안에 대해 퇴행적 인식을 보여온 안창호 인권위원장 후보자에 관한 공식 논평을 단 하나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해서도 거대 양당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22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논의 자체가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안창호, 위원장 자격 충분"... 민주당은 '건국절 논란'만 논평

윤석열 대통령이 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내정한 지난 12일부터 정당별 홈페이지에 올라온 논평을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국민의힘은 안창호 후보자에 대한 공식 논평을 한 건도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따로 논평하지 않은 이유는 없다"라며 "헌법재판관을 역임했고 법조계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분이니 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자가 도입 반대를 주장해 온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 방침을 물었을 땐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라며 "다만 국회의원 개개인이 갖는 생각은 있을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인권위원장으로서 본인의 소신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 하나에 대한 찬반으로 인권위원장 자격을 논할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도 안 후보자의 퇴행적 인권 인식과 반인권적 행보에 대한 논평은 내놓지 않고 있다. 안 후보 관련 민주당 공식 논평은 단 한 건에 그쳤는데, 그마저도 인권위 직무와 직접 연관이 없는 건국절 논란과 독립기념관장 경질 촉구 논평(지난 14일)이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 논평에 "안창호 인권위원장 후보자마저 '임시정부는 국가 기능을 하지 못해 건국이라고 할 수 없다'며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라는 한 문장짜리 짤막한 비판을 담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양심적 병역거부 등에 대해 줄곧 반대를 견지해 온 안 후보자에 대한 당 차원의 비판은 없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안 후보자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을 하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보다는 운영위에서 인사청문회를 할 때쯤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조 수석대변인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해서도 "당 내에서 의견이 잘 모이고 있지는 않다. 공감하시는 분도 있고 걱정하시는 분도 있다"라며 "그런 개별적인 현안보다는 국민들의 인권적 상식에 부합하는 사람이냐가 (인권위원장 후보자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라고 답했다.

민주당 내에선 강유정·고민정·서미화 민주당 의원 정도가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권위 비상임위원 출신인 서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안 후보자는 장남 편법 증여 의혹, 기업 2세 성매매 변호 등 고위공직자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인사"라며 "윤석열 정부의 인사 참사가 국가기구인 인권위까지 미치게 둬선 안 되며 청문회에서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국혁신당 "차별금지법 우호적"... 개혁신당 "사회적 논의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2024.8.12
ⓒ 연합뉴스
조국혁신당·개혁신당·진보당·새로운미래·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원내 소수 야당에서도 안 후보의 인권 의식에 대한 공개 의견 표명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기본소득당이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에서 한 차례, 진보당이 서면브리핑·논평·의원총회 발언 등 세 차례(8월 12·13일) 안 후보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반면 다른 당들은 <오마이뉴스> 취재가 시작된 지난 25일까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당 입장을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희 대변인이 많지 않아 그날 그날 급한 것부터 (논평을 낸다). 특별히 안 후보자가 문제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문제의 심각성은 알고 있다"라며 "그렇게 국민의 뜻에 반하는 길로만 가면 역대 독재 정권 말로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말로 논평을 대신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수석대변인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해 "공식적으로 당론을 정한 바는 없으나 조국혁신당은 굉장히 우호적인 입장이고 입법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임명희 사회민주당 대변인은 "혼자서 대변인을 하다 보니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다"라며 "인권위원장으로서 부적격한 인사라고 생각하고 다음번에 그런 인사들을 묶어서 논평을 한 번 할까 싶다"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일부 기독교에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법안에 반대하는데 굉장히 평이한 법안이다. 당연히 찬성하며 제정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양정 새로운미래 수석대변인은 "따로 논평을 내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현안에 일일이 대응할 여력이 없어서 놓쳤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 수석대변인은 26일 "소수자를 부정하고 폄훼하는 것부터 반인권적이며 안 후보자는 인권위원장에 오를 자격이 없다", "인권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라며 내정 철회를 촉구하는 서면 브리핑을 냈다.

김성열 개혁신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준비하고 있고 청문회가 일주일 뒤라고 해서 조금 나중에 내자는 얘기가 있다"라며 "입장을 일부러 안 내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자 내정을 두고는 "적절하지 않은 인사라는 게 당 입장"이라며 "너무 한쪽 종교로 편향된 시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이분은 인권위원장이 아니라 교회위원장이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해서는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는데 사회적으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라고 했다.

원외 정당으론 정의당이 "처참한 성범죄 인식 수준", "성소수자 혐오" 등을 지적하며 안 후보자 내정 철회를 촉구했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던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개별 몇몇 의원들의 발언을 제외하고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안 후보자의 혐오 발언과 처참한 인식 수준에 대한 공식 논평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22대 국회가 인권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김대중 전 대통령 공약으로 설치된 민주당 정부의 대표적 유산이며 그 인권위의 숙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라며 "윤석열 정부의 안 후보자가 그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고 공격하는데도 민주당이 침묵한다는 건 올해 탄생 100주년인 김 전 대통령의 유산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권단체도 우려하는 22대 국회의 '침묵'

인권단체도 안 후보자의 문제적 인권 감수성에 소극적 대응을 하고 있는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안 후보자의 과거 문제적 행보와 발언은 인권위원장이라는 직무와 무관하지 않다"라며 "그런데도 의아할 정도로 주요 정당들의 입장이 나오지 않는 것은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던 20대 국회로의 회귀처럼 보인다. 이 침묵이 대단히 우려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직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사형제 등 인권 논의에서 기존 인권위 입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퇴행적 의견을 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헌법재판관 퇴임 뒤에는 유명 리조트 회장 아들의 미성년 성매매와 불법 촬영 혐의 사건을 공동 변호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출간된 저서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에서는 "차별금지법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며 "신체 노출과 그에 따른 성 충동으로 인해 성범죄가 급증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인권위원장의 경우 후보추천위원회가 대통령에게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그러나 안 후보자는 후보추천위원회 면접을 거치지 않고 서류 심사로만 지명됐다. 안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9월 3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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