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수온 상승으로 울릉도가 이렇게 변했다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현재 4건의 기후 소송(헌법소원)을 병합해 심리 중입니다. 주요 쟁점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도록 한 탄소중립 기본법 8조 1항과 그 시행령 3조 1항, 감축 목표량의 상당 부분을 윤석열 정부 이후로 미룬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위헌인지 여부"입니다( https://omn.kr/28re1). 지난 5월에 최종 변론이 진행됐고, 오는 29일 헌재의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그린피스 신민주 캠페이너]
존경하는 재판장님,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저에게 '기후위기'는 오징어와 오징어잡이 배인 것 같습니다.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가족 중 일부가 울릉도에 거주하는 까닭입니다. 울릉도는 저의 유년기 집과 같은 공간이었고, 집이라는 공간은 때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첫 번째 통로가 되는 법입니다.
오래전, 울릉도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수평선 너머 가득 반짝이는 불빛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검은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오징어가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오징어를 그물로 잡는 일로 많은 울릉도 주민이 생계를 유지합니다. 따라서 오징어는 울릉도의 '특산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누군가의 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울릉도 밤바다를 바라보아도 수평선 너머 반짝이는 불빛을 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잡기 위해 배를 타는 주민들도 이제는 손에 꼽힙니다. 왜일까요? 모두 기후위기 탓입니다.
▲ 울릉도의 모습 |
ⓒ 경상북도 제공 |
그렇다면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잡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저는 기후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사업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을 울릉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24년 울릉도에서는 공항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낸 후, 활주로를 만드는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잡던 주민 중 일부는 공항을 짓는 일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시다시피, 항공 산업은 탄소 배출이 많은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입니다. 거기다 아직 울릉도 공항이 충분히 경제성이 있을지, 매년 몰려오는 기후재난, 또 울릉도에서 일상과도 같은 낙석으로부터 자유로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벌써 공항을 짓는 부지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존재합니다.
이것은 정의롭지 않은 일입니다. 동시에 지속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인류와 자연 모두에게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법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기후위기도, 정의로운 전환도, 집을 잃은 사람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도, 울릉도라는 작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살피는 것도 뒷순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 모든 비극이 울릉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습니다.
▲ 지난 5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종 진술자 황인철 시민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김서경 청소년기후소송 청구인. |
ⓒ 권우성 |
지구는 유한하고, 지구 위 생물이 존속할 수 있는 온도와 그에 따른 탄소 배출의 한계치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중 탄소 배출의 한계치를 '탄소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규명을 지향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계산할 때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약 45억 톤의 탄소예산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는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41억 톤의 탄소를 배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2050년 탄소 중립이 달성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2031년부터 2050년까지 단 4억 톤의 탄소 배출만이 가능합니다. 이는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미래로 탄소 감축의 짐을 넘겨버리는 무책임한 안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 곧 다가올 기후 헌법소원입니다. 헌법소원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법은 문제가 된 탄소중립 기본계획의 근거법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법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최정점에 이른 시기인 2018년과 비교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40%라는 수치가 대단한 수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결과가 2030년까지 90%의 탄소예산을 소진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는 우리의 존속을 위한 충분한 목표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계획을 바꾸기 위해서는 목표부터 재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헌법소원은 인류가 영원한 발전과 성장의 욕심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주어진 한계를 준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가 탄소예산이라는 한계를 고려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탄소 배출량 감소에 대해 유보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기후위기가 당면한 위기가 아니라는 막연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화석연료를 펑펑 쓰면서 영원히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나의 일상에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미래에 책임을 전가하여 편리하게 지금을 누릴 수 있다는 착각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 구성원들의 집을 빼앗고,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 모든 존재들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진실을 인정할 때가 왔습니다. 하루하루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의 앞으로의 모든 선택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결정할 결정타가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4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위헌확인 등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
ⓒ 유성호 |
재판장님, 저는 2024년 9월 대한민국이 늦게라도 정의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정의로운 선택을 내릴 권한을 가진 일이 재판장님께 명예롭고, 아름다운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헌법 소원이 역사적인 일이 될 예정인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탄소 배출을 '가능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줄이는 것을 선언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모두가 사는 집이라면, 그 집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도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집을 지켜주세요. 재판장님의 정의로운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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