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엄마 기다리는 아이... '매운맛' 방학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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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경 기자]
▲ 여름방학 |
ⓒ 픽사베이 |
아이는 방학이 끝난다는 아쉬움, 그리고 오랜만에 선생님,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고 나는 방학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며 출근했다. 이제 아이의 돌봄 공백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될 터였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며 찾아온 고비는 여러 번 있었다. 수족구처럼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일주일씩 어린이집에 가지 못 할 때에는 친정엄마가 육지에서 제주로 날아오셨고, 코로나로 인해 두 달여간 어린이집 등원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시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겼다.
이제야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런 굵직굵직한 사건 이외에도 아이가 열이 나서, 아파서 급하게 회사에 연가를 내고 '돌봄 노동 현장'에 투입되었던 날들은 무수히 많다.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듯, 크고 작은 고난들을 하나하나 넘기고 이제는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초등학교 들어간 아이의 첫 여름방학을 함께 겪으면서, 왜 일하는 여성들이 '초1 맘'이 되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는지, 경력단절 감수를 고민하게 되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방학 전, 여름방학 돌봄 교실 신청서를 받고 작성하다 보니 아이의 하교시간이 오후 1시였다. 작년에는 신청자가 많아 추첨을 하긴 했으나 어찌 되었든 오후 3시까지 돌봄을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올해는 왜 1시까지만 하는지를 의아해하면서 신청서 하단에 연장반 신청은 따로 받는 건지 질문을 적어서 보냈다.
그러자 돌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해 따로 말씀하시길, 작년에 신청을 받을 때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연장반에 참여하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해서 올해는 아예 연장반을 모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 아이 학교는 오후 1시에 끝난다는 안내가 왔다. 오후 1시라니. 이건 너무 이르잖아? 일하는 부모들은 어쩌란 말인가. |
ⓒ aaronburden on Unsplash |
방학 동안 수업 시간 변동이 있는지 알아보기 태권도 학원에 전화를 해보았다. 방학이 짧기도 하고 여러 학교의 방학을 맞출 수가 없기에, 평소랑 동일하게 운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평소 아이가 관심 있어하던 축구교실에도 전화를 해보았는데 화, 수에는 2시 30분, 목, 금에는 4시 30분이라고 했다. 돌봄 공백을 메우기에 학원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게다가 이미 매일 가는 태권도 도장도 있어 그것과 시간을 맞추기에도 애매했다.
방과후학교와 학원 일정이 있으니 방학 통째로 아이 조부모님댁에(친가든 외가든)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할수록 학교를 마치고 태권도 학원 가기까지 2시간의 공백을 메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락일지언정,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 방학이 되었고 아이는 일단 집에 혼자 있어 보기로 했다. 그전에도 집에 혼자서 있어본 경험이 있으니 두 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 같다고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살짝 불안했지만, 차분하게 답하는 아이 덕에 소란했던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단, 비가 내리기 전까지.
방학하고 3일째 되던 날 아이 하교 시간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은 있으니 집에 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싶었는데, 하늘이 금세 어두컴컴해지고 바람이 부는 게 날씨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아파트 공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천둥이 쳤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출까)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간다고도 말했다.
'비가 계속 많이 오면 태권도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왔다. 조금 전까지도 의연했던(의연한 것 같았던) 아이가 금방 울 것처럼 겁을 먹은 목소리로 "엄마, 나 무서워! 이상한 소리가 들려! 으아! 으아! 엄마 어떡해! 살려줘!" 하는 것이 아닌가. 바사삭. 잘 잡고 있던 내 정신줄, 멘탈이 급속도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해서 외부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음에 쉽게 놀라고 움츠러들곤 했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고 외출하겠다고 복무 결재를 올린 뒤 집으로 출발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아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 뒤라 돌아올 때는 아이와 함께였다.
낯선 사람들 사이 쭈뼛쭈뼛해하는 아이에게 동료가 탕비실에 있던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을 건네주자 아이도 긴장을 풀었다. 동료는 일곱 살 아이를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보내고 있어 더욱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아마 안타깝게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 역시 이 상황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 엄마 사무실 한 쪽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 |
ⓒ 허윤경 |
문득 다른, 일하는 엄마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일하지 않는 전업 엄마들이 몹시도 부러워졌다(물론 전업 엄마들에게도 이와는 다른 나름의 고충이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 학교 측과 주고받은 문자 중 일부. 기존에 돌봄교실을 신청한 아이는 늘봄에선 대상부터 제외됐다. 돌봄공백이 생기는 셈이었다. |
ⓒ 허윤경 |
학교에선 '늘봄(맞벌이 부부를 위해 시행하는 제도로, 저녁까지 학교에서 학생을 돌봐주는 제도)'을 신청하라고 신청서를 발부했지만, 정작 돌봄교실에 신청한 아이들은 제외되므로 우리 아이는 신청 대상조차 아니라고 했다. 이래저래 돌봄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일하는 엄마로서 처음 겪어본 '매운맛' 방학
'한 가정을 이룬다'는 건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일 것인데, 실제로는 어떤가.
친정 부모 또는 시부모로부터 돌봄과 양육 지원을 받지 않고는 자녀를 기르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하긴 어디 돌봄 뿐인가? 내 집 마련 역시 부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이 현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겨울 방학에는 아이가 혼자 집에서 보낼 수 있겠지? 내년에는 2학년이니까 상황이 지금보다는 조금 낫겠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사이 여름방학이 끝났고, 아이는 이제 사무실에 오지 않는다.
아이들 방학이 좋은 건 '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하는 엄마로서 처음 겪어본 방학은 '매운맛' 그 자체였다.
저출산에서 '초'저출산 시대가 된 지금,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출산장려금 지급처럼 '출산'에 집중하는 정책을 넘어서 유급육아휴직 연장, 육아휴직 자동 의무화(지금은 선택이다) 등 '돌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적 돌봄'이 확대되는 건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일단 가정 내에서 아이를 제대로 잘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다.
아직은 어린아이인 둘째, 앞으로 6년 뒤에 찾아올 둘째 아이의 첫 여름방학엔 이것과는 다른 긍정의 소회를 남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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