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재점화 나선 이복현…국회서도 논의 활발

차민영 2024. 8. 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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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합병·공개매수 투자자 실망사례 지속"
연구기관, 상법개정 필요…개별제도 보완도
일반회사 아닌 상장사 대상 한정 의견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합병이나 공개매수에서 지배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사진은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합병이나 공개매수에서 지배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자회사 간 합병비율 산정 과정에서 일반주주 권익 침해 논란을 야기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연구기관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연구기관과 재계 이해관계자 12명이 참석했다. 지난 21일 5명이 참석한 학계 간담회보다 두 배 이상 커진 규모다.

자본시장 개선 과제 중 핵심은 상법 제382조의3항(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이다. 한국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로 명시돼 있는데 이 때문에 소액주주와 지배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이사회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소액주주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기업 측에서는 소송 남발 등 경영상의 위축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우찬 고려대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는 경영자(총수)가 회사 또는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본인의 사적 이익에 충성하는 구조"라며 "현재 회사에 직접적인 손해가 없는 자본거래에 대한 규율 공백이 존재하므로 이사 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별도 조항을 신설해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구체화하고, 거래 공정성 입증책임을 전환하며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등 면책조항 신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연구기관들은 주주 충실의무 도입 외에도 합병이나 물적분할 등 민감한 사안에 대응하기 위한 개별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가령 기업 내 별도 특별위원회를 통한 심의의결이나 주요 거래시 일반주주 별도 동의 절차 신설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계열사 간 합병 추진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일반주주 의견을 별도로 수렴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반대로 재계에선 상법 개정을 서두르기보다 일본처럼 합병 등에 대한 주주 보호를 위해 인수합병(M&A)지침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이사와 주주간 법적 위임관계가 없어 현행법 체계상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명확한 행위 기준이나 구체적인 사안에 따른 규정을 기반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상법 개정 논의가 정부의 밸류업 정책 연장선상이라는 전제하에 전체 기업이 아닌 상장회사로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경우 법무부가 주관하는 상법 개정이 아닌 금융위원회가 소관 부처인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갈음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 제3장의2(주권상장법인에 대한 특례) 부문이 해당한다. 이정두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은 밸류업 논의에 따라 상장회사가 주 대상이므로 상장회사 중심으로 논의하고 상법 일반조항이 아닌 상법 상장회사 특례조항이나 자본시장법에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복현 원장은 상법 개정 이슈를 재점화시킨 장본인이다. 지난 6월부터는 학계, 재계, 금융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왔다. 내달 둘째주에는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도 열 계획이다. 공매도와 금융투자소득세 논의를 위한 '열린 토론회'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한동안 금감원 중점 사안에서 물러나 있던 상법개정 이슈를 재점화시키는데 집중하는 배경에는 두산 지배구조 개편 논란이 있다.

국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7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필요성을 주장하자,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곧장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은 후진적인 우리 기업 지배구조"라고 언급하며 '상법 개정' 주장으로 맞불을 놨다.

다만 이복현 원장은 과거 '배임죄 폐지' 등 파격적인 제안을 했던 상반기와 달리 상법 개정 관련 의견 수렴 자체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상법 개정 논의에 금감원이 중심에 서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21일 간담회에선 "상법 관련 사항이기는 하지만 투자자 및 자본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자본시장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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