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 확대…‘바벨 전략’ 주목할 때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8. 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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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에 울고 웃는 ‘박스피’

미국 경기 침체 논쟁이 가열되면서 최근 코스피는 좁은 범위에서 등락하는 박스권에 머무르는 양상이 짙다. 경기 침체 우려에 엔고 현상이 맞물려 공포에 질렸던 세계 증시는 당분간 주요 지표에 따라 등락하는 패턴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전문가들은 폭락장에서 상대적으로 주가 방어력이 돋보였던 업종을 중심으로 위험자산 포트폴리오를 압축하면서 금·은과 엔화 등 안전자산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바벨 전략’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했다. 바벨 전략은 중간적 위험도에 노출된 자산을 배제하고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등 양극단에 놓인 자산을 서로 조합해 자산을 배분하는 투자 전략을 일컫는다.

반등 성공한 코스피

경계감은 여전

최근 코스피를 비롯한 세계 증시는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일부 해소되자 낙폭을 상당 부분 회복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코스피지수는 2700선을 회복했고 코스닥지수는 지난 8월 5일 급락 전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우리 증시가 당분간 주요 경제지표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변동성을 키우는 ‘박스피’ 패턴을 보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실적 추정치에 낙관적 과잉이 형성되고 있다”며 “올해 남은 기간 코스피가 2500~2750포인트를 횡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 경제 방향성을 놓고 일률적인 진단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 펼쳐진다. 세계 증시 동반 급락을 불렀던 미국 실업률 관련 지표부터 방향성이 엇갈린다. 지난 7월 미국 실업률이 4.3%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금융 시장은 ‘패닉셀’에 휩싸였지만 8월 통계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지난 8월 8일 발표된 미국 주간 신규 실업급여 청구 건수는 23만3000건으로 전주(약 25만건)보다 1만7000건가량 감소했다. 8월 15일 통계에서도 22만7000건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자 시장 일각에서는 4%를 웃돈 미국 7월 실업률이 허리케인 ‘베릴’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허리케인 베릴이 강타한 텍사스주 실업급여 청구 건수가 7월 말을 전후로 등락하는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에 관한 우려의 불씨가 여전한 점도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지목된다. 엔 캐리 포지션 청산 규모를 간접적으로 가늠하는 지표로 시카고선물거래소 엔화선물의 비상업적(non-commercial·투기적) 포지션 순매도가 꼽힌다. 7월 9일 약 18만 계약까지 확대됐던 엔화선물 투기적 포지션 규모는 일본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된 7월 말 절반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 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정점을 두고 의견이 나뉜다. JP모건은 글로벌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약 75%가 청산된 상태라고 진단했지만 외환 시장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선이 다수다. 외환 시장 관계자는 “엔 캐리 트레이드 포지션을 정확히 추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9월 이후 외환 시장에서 엔고 파고가 또 한 차례 덮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경계감을 높였다. ING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엔 미만으로 떨어지면 추가 청산이 시장 변동성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도주 옥석 가릴 때

엔고 현상 재연 대비도

전문가들은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을 서로 섞는 ‘바벨 전략’으로 방어적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것을 조언한다.

위험자산인 주식의 경우 급락장 한복판에서 방어력이 뛰어났던 업종에 주목하라는 조언이다. 통상 약세장이나 급락장은 향후 주도주가 될 종목의 옥석이 가려지는 시기로 본다. 2300선을 내주는 등 약세장이 펼쳐졌던 2023년 하반기가 좋은 예다. 당시 시장에선 HD현대일렉트릭과 SK하이닉스가 약세장에 저항하는 주가 패턴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트 분석에서는 통상 주가 이동평균선(이평선) 10일선이 무너지면 대량 매도가 나오는 것으로 해석된다. 10일선은 2주 영업일을 뜻하는데, 2주 동안 주가 평균 추이가 무너졌다면 시세 추세가 꺾였다는 의미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당시 HD현대일렉트릭과 SK하이닉스는 약세장 속에서도 10일선을 강하게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상승장에서 주도주로 자리 잡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급락을 경험한 현시점에서 당장 분기 손익보단 향후 3~5년 뒤 매출 성장률을 주목할 때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대개 국내 상장 기업은 성장 구간에서 3년 안팎 가파른 기울기를 보이다 그 뒤 급격하게 꺾이는 패턴을 보인다. 한 사모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주가는 주당순이익(EPS)과 주가수익비율(PER) 곱으로 결정되는데, 국내 기업 주가는 EPS보단 시장에서 결정되는 PER에 좌우될 때가 많다”며 “결국 향후 3~5년 성장률이 PER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현시점에서 주도주를 고를 때도 중장기 성장률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비춰, 이번 급락장에서도 이런 패턴을 보인 종목과 업종을 중심으로 압축적으로 위험자산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변동성이 컸던 기간(8월 2~8일) 주가 방어력이 돋보였던 업종은 통신과 제약·바이오다. 이 기간 KT와 SK텔레콤은 소폭 올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일동제약 등은 5~7%가량 올랐다. 제약·바이오는 금리 인하 국면에서 수혜 기대감을 높이는 업종으로 지목된다. 미국에서는 올 하반기 중국 바이오 기업과 거래 제한을 골자로 한 미국 생물보안법 통과를 눈앞에 뒀다. 바이오시밀러 비중이 높은 국내·헬스케어 업종 수혜가 기대된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고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확보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이 대표적이다.

슈퍼 사이클 기대감을 탄 조선주도 방어력이 돋보인다. 경기 침체 우려 확대로 코스피가 폭락한 8월 5일 HD한국조선해양(-15%), 한화오션(-13%), HD현대미포(-12%), HJ중공업(-12%), 삼성중공업(-11%) 등은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였다. 하루 뒤 코스피가 3% 반등할 때 조선주는 반등폭을 더 키웠다. HD한국조선해양(10%), HJ중공업(10%), 한화오션(9%), 삼성중공업(7%), HD현대미포(5%) 등은 지수 대비 높은 상승률로 급락분을 대부분 회복했다. 조선주는 과거 불황기 저가 수주 물량을 털어내고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늘려 가파른 실적 개선세를 보인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당분간 실적에 대한 확증이 있는 산업으로 포트폴리오 구성을 추천한다”며 “산업재 쪽에서는 조선주가 대장이 될 것”이라 봤다.

엔고 현상 재현을 대비하라는 조언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 내년 중순까지 기준금리를 현재 0.25%에서 최대 1%까지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쓰비시UFJ(MUFJ)모건스탠리증권의 나오미 무구루마 수석 채권 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우리는 BOJ가 금리 인상을 계속할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오는 12월 25bp(1bp=0.01%포인트) 추가 인상 전망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금·은 등 안전자산 강세도 좀처럼 꺾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값 상승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금 가격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요인은 실질금리와 달러화 추이다. 이들은 서로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므로, 실질금리 하락과 달러화 약세가 동반될 땐 금 가격이 오른다. 총격 피습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금값을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트럼프가 강조하는 고율 관세와 감세 정책이 미국 재정 적자와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종국에는 금 같은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단 분석이다. 트럼프 정책에서 초래될 수 있는 물가 상승을 뜻하는 ‘트럼플레이션(Trump와 inflation을 합한 말)’을 헤지하기 위해 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 ‘유가 하락, 금 상승’은 경기 둔화를 시사한다”며 “주식 시장이 경기 흐름과 큰 방향이 같다는 점에서 시장 대응에 있어 방어 전술을 사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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