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ETF, 개미 던질 때 기관 ‘줍줍’하는데…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4. 8. 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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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등락하는 ‘닥터 코퍼’ 구리 가격

실물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하며 ‘닥터 코퍼’로 불리는 구리 가격이 올해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팍팍한 공급 여건 속 글로벌 수요가 늘며 지난 5월 사상 최고치를 찍은 구리 가격은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다. 그러나 최근 기관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재차 반등 조짐을 보인다. 이에 구리 관련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단, 연말까지 구리 가격이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향후 구리 시장에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지난 2017년 8월 베트남 하노이 외곽 북부 하이즈엉성 트루엉푸 케이블 공장에서 쌓인 구리 막대 더미. (로이터)
t당 9000달러 회복

ETF에 기관 매수 몰려

올해 5월까지 구리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3개월물 구리 선물 가격은 지난해 말 t당 8559달러에서 지난 5월 20일 t당 1만889달러까지 올랐다. 연초 대비 가격이 30%가량 급등한 것. 코브레 파나마 등 주요 광산에서 파업과 폐업이 이어지는 등 구리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동시에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분위기 속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구축으로 인한 수요가 급증하며 구리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구리는 전선을 만들 때 들어가는 핵심 원자재다.

그러나 이후 구리 가격은 하락 전환했다. 지난 8월 7일 구리 가격은 t당 8769달러로 5월 고점 대비 약 20% 내려갔다.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영향을 줬다. 중국은 전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이다. 구리 가격이 중국 경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4.7%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5.1%)에 밑돌았다. 구리가 대량으로 쓰이는 건설 부문 경기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국 공기업인 중국국가전력망공사(SGCC)가 구리 전선 대신 알루미늄 전선을 깔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구리 수요 위축 우려가 확대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도 구리 가격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에너지 전환 정책을 뒤집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전기차 등에 활용되는 구리의 수요가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구리 가격은 8월 중순 이후 t당 9000달러를 재돌파하며 다시 반등하는 조짐을 보인다. 8월 20일 t당 9204달러까지 오르며 2주 사이 5%가량 상승했다. 미국에서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한 수치를 기록하며 경기 침체 우려가 다소 해소된 가운데,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기관 투자자를 중심으로 구리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1일부터 19일까지 기관은 ‘TIGER 구리실물’ ‘TIGER 금속선물(H)’ ‘KODEX 구리선물(H)’ 등 국내 상장한 구리 관련 ETF 3종을 모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개인은 해당 상품을 모두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증권가에서는 t당 9000달러 초반 가격이 저가 매수 기회라는 의견이 나온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구리 가격 반등은 t당 9000달러 초반에서 유입된 저가 매수세에 기인한 것”이라며 “지난 5월 사상 최고치에서 제기된 수요 냉각 우려가 완화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 시장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면 현재 수준 가격은 저가 매수 기회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말까지 숨 고르기 장세

중국 경기 회복이 관건

적절한 투자 시점에 관해서는 전문가 의견이 갈린다. t당 9000달러 초반 현재 가격이 저가 매수 기회라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아직까지 투자자가 진입하기 이르다는 분석이 팽팽히 맞선다.

특히 경기 침체 우려가 다시 부각된다면 구리 가격이 재차 내려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팽하다. 권병재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3분기 구리 가격이 확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내년 중국 경기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때 투자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구리 재고가 쌓여 있다는 점도 가격에는 부정적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LME의 창고에 쌓인 구리 재고가 최근 30만t을 넘어섰다. 지난 2019년 이후 약 5년 만에 기록한 최고치다. 미주와 유럽 재고가 감소세를 지속해온 반면 아시아 지역에서 재고가 급증한 탓이다. 오재영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인 구리 가격 상승세는 가능하겠지만 연말까지는 구리 재고 증가 등으로 가격 반등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만약 미국의 경기가 둔화하면 원자재 가격의 동반 하방 압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이유로 연말까지는 숨 고르기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시장 역시 과거 대비 높아진 가격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상반기와 같은 가파른 가격 상승세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일시적으로 t당 9000달러를 밑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 구리 가격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t당 9000달러를 한시적으로 밑돌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반기 일시적인 가격 하락장을 예상하고 투자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에게는 상장지수증권(ETN)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지난 2분기 구리 가격이 내려가자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구리 관련 ETN 수익률이 치솟은 바 있다.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7일까지 구리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한투 인버스 2X 구리 선물(50%), 신한 인버스 2X 구리 선물(50%), 삼성 인버스 2X 구리 선물(48%), N2 인버스 레버리지 구리 선물(48%), 메리츠 인버스 2X 구리 선물(48%), KB 인버스 2X 구리 선물(48%) 등이 수익률 50%에 달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다만 구리 가격 하락이 있더라도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데다, ETN 특성상 고수익을 추구하는 만큼 기초지수 변동에 따라 손실 규모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구리 가격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구리 시장에서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NH투자증권은 구리 투자에 대한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하며, 향후 1년간 구리 가격이 t당 1만2000달러 수준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연말 구리 가격이 t당 1만500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헤지펀드 앙두앙캐피털의 피에르 앙두앙 창립자는 세계적인 구리 공급 부족으로 오는 2028년 구리 가격이 t당 4만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운용업계에서도 투자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중국의 경기 반등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연말까지 구리 가격은 등락을 반복할 전망이다. 다만 구리 시장에서 수요 대비 공급 부족 현상은 점차 심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장기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투자자는 단기적인 접근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적정 금액을 분할 매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승호 미래에셋자산운용 FICC ETF운용팀장의 판단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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