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과충전 방지 장치’ 뭐길래…시장 들썩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심화된 가운데 화재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분리막 손상 등 배터리 품질 문제가 원인으로 거론되는 한편 과충전만 막아도 화재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덩달아 과충전 방지 장치를 제조하는 업체들이 주목받는 모습이다.
정부, 화재 예방 충전기 설치 지원
서울시는 최근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90% 이하로 충전할 수 있게 제한된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리면 주차 중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에는 주로 리튬이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충방전을 하는데 리튬이 움직이는 통로, 즉 전해질이 휘발성 액체다. 과충전은 양극에만 리튬이온이 가득해지는 현상을 유발한다. 이때 화학 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온도가 상승해 열폭주가 발생할 수 있다.
온도 상승으로 배터리 팽창 현상이 나타나면서 분리막 등 내부에 문제가 생겨 단락(쇼트 서킷)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단락은 배터리 내부에서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는 현상으로 열폭주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배터리 과충전을 막으면 화재 사고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최근 전기차 업계에서 과충전 방지 장비인 ‘전력선통신(PLC·Power Line Communication) 모뎀’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PLC 모뎀을 장착하면 배터리 충전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과충전을 막을 수 있다. PLC 모뎀은 차량 배터리 충전 정보를 받아 충전량이 95%가 되면 충전기를 자동으로 제어한다. 현재 급속충전기에는 대부분 장착돼 있지만 완속충전기에는 거의 없다.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업자에 충전기 1대당 적게는 35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올해는 일반형 완속충전기 지원에 총 740억원, PLC 모뎀이 있는 완속충전기 지원에 800억원 예산을 편성했는데, 내년부터는 PLC 모뎀이 없는 일반형 완속충전기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신 화재 예방형 충전기 설치 시 지원 예산을 올해 800억원에서 내년 1500억원 이상으로 대폭 늘린다. 덕분에 PLC 모뎀이 장착된 완속충전기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PLC 모뎀 제조 기업 수혜 기대
시장점유율 1위 ‘그리드위즈’ 눈길
덩달아 관련 업체도 들썩이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곳이 그리드위즈다.
2013년 설립된 그리드위즈는 PLC 모뎀 국내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1위 업체다. 글로벌 시장점유율도 30%에 달한다. 올 1월 11㎾ 완속충전기 ‘스카이블루11’을 내놓고 인기몰이 중이다. 스카이블루11에는 화재를 예방하는 PLC 모뎀뿐 아니라 양방향 충전이 가능한 ‘V2G’ 기능이 탑재됐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활용해 전력계통에 연결하는 기술이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꺼낸 전기를 집에서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탄탄한 시장점유율을 인정받은 그리드위즈는 국내 에너지 스타트업 최초로 지난 6월 14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6월 초 진행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서 증거금 4조원을 모았다. 경쟁률은 569.9 대 1을 기록했다. 공모가는 희망 범위(3만4000~4만원) 상단인 4만원으로 확정됐다. 이후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3만원대 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향후 PLC 모뎀 판매 물량이 늘면 주가가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리드위즈의 지난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과 순이익은 각각 61억원, 41억원이다.
이지차저, 클린일렉스 등 경쟁사들도 전기차 완속충전기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이지차저는 국내 최초로 전기차 충전기 커넥터만 꽂으면 알아서 충전해주는 완속충전기 ‘이지플러그’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지플러그는 간편 충전 서비스(PnC·Plug & Charge)와 화재 예방 기능이 담긴 충전기다. 충전기 커넥터를 전기차에 연결하면 사용자 인증, 충전, 결제를 한 번에 진행한다. 차량이 보유한 고유 인식 정보를 읽어내 차주 정보와 비교한 뒤 별도 과정 없이 충전을 시작하고 과금하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전기차 차주가 퇴근한 후 앱을 실행하거나 카드를 태깅할 필요 없이 완속충전기 커넥터만 전기차에 꽂고 집에 올라가면 된다.
여세를 몰아 이지차저는 공격적인 인프라 확대에 나섰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충전기 설치 물량을 늘려 1만4000기를 운영한다는 목표다.
또 다른 업체 클린일렉스는 PLC 모뎀을 탑재해 전기차 충전 상태 정보를 수신하고, 목표한 만큼 충전할 수 있는 완속충전기를 선보였다. 목표 수준의 1% 오차 내로 충전을 차단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곳에 설치된 여러 개의 전기차 충전기에 충전 전력을 조절, 분배하는 기술을 개발해 눈길을 끈다. 기존에는 충전기 5개가 설치된 건물에 각각 5개의 전력을 투입해야 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활용하면 투입되는 하나의 전력을 충전기 5개에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전기배선망과 통신망이 간단해져 충전 인프라를 쉽고 빠르게 구축할 수 있는 데다 이동 설치가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기차 충전기 업체뿐 아니라 완성차업체도 화재 예방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의 두뇌 격인 배터리 관리시스템(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을 앞세웠다. BMS에는 배터리 시스템 모니터링 기능이 담겨 있다. 배터리 이상 징후를 신속하게 탐지하는 동시에 위험도를 판정해, 차량 안전제어를 수행한다. BMS 전용 별도 전원 장치가 있어 주행이나 충전 중 상시 진단뿐 아니라 시동이 꺼지는 주차 중에도 주기적으로 배터리 셀의 이상 징후를 정밀 모니터링한다.
“전기차 안전을 위해서는 배터리 모니터링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배터리 충전율도 화재와 관련이 있지만 셀 내부 결함이나 그 결함을 관리하는 BMS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 진단이다.
화재 예방 위해 PLC 모뎀 가치 높아질 것
A. PLC 모뎀은 전기차와 충전기 간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아 충전 과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급속충전기에만 적용됐지만, 최근 화재 사고로 완속충전기에도 PLC 모뎀을 탑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배터리 상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아 과충전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도 이런 필요성을 인식해 PLC 모뎀이 탑재된 완속충전기를 ‘화재 예방 충전기’로 정의하고, 추가 보조금을 지원한다. 전기차 화재 방지 장치 중요성이 커진 만큼 그리드위즈는 국제 표준 기반의 PLC 모뎀을 제조하는 한편 완속충전기에도 설치 가능한 소형 PLC 모뎀을 출시해 사업 규모를 키우는 중이다.
Q. 회사를 창업한 배경은.
A. 미국에서 여러 에너지 테크 회사와의 미팅을 통해 전 세계 에너지 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경험했다. 클린에너지 전환과 전기차 시장 확대라는 흐름이 크게 다가왔고, 그리드위즈 사업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재생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확신을 갖게 돼 2013년 회사를 차렸다. 전력수요관리(DR),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충전, 태양광 등의 솔루션을 융합해 운영하는 것이 그리드위즈의 강점이다.
Q. 짧은 시간에 사업 규모를 키우고 IPO에도 성공했는데.
A. 클린에너지 시장 확대로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조절하는 솔루션이 중요해지면서, 그리드위즈 기술력이 인정받았다고 본다. 특히 전력 시장에서 지난 10여년간 쌓아온 데이터와 기술 노하우가 수익을 창출하는 기반이 됐다. 여세를 몰아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 전력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 투자, 현지 공장 건설로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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