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다시 치솟은 HMM…고민하는 산은?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8. 28. 08: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영업이익 1조라는데…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이 최근 실적 부진을 딛고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면서 해운업계 관심이 뜨겁다. HMM 수익성이 좋아진 점은 호재지만 또다시 매각을 추진해야 하는 KDB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몸값이 높아져 인수 후보 찾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MM 실적이 살아나면서 몸값이 높아져 재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HMM 선박. (HMM 제공)
HMM 실적 날개

2분기 영업이익 6444억원 달해

HMM은 올 2분기 매출 2조6634억원, 영업이익 6444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1분기 영업이익 4070억원까지 포함하면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이익을 거뒀다.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1.1%에 달한다. HMM이 호실적을 낸 것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홍해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예맨 후티 반군이 홍해 항로를 위협하면서 글로벌 해운사들이 수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을 우회해 유럽으로 향하는 노선을 택했다. 운항 거리, 시간이 길어지면서 글로벌 해상 운임이 치솟았고 HMM이 수혜를 입었다.

미중 무역 갈등도 변수로 작용했다. 미국 정부가 올 8월부터 전기차, 태양광 패널, 의료품 등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최대 100%까지 인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이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출 물량을 밀어내면서 운임이 치솟았다. 글로벌 해상운송 항로 운임 수준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연초 2400선에서 7월 3400선으로 뛰었다. “올 상반기 운임 지표가 전년 대비 2.3배 증가했다. 운임이 상승한 상황에서 수익성 위주 영업으로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 HMM 측 설명이다.

이를 두고 해운업계에서는 HMM이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HMM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848억원에 그쳤다. 2022년 대비 무려 94% 감소했다. 올 들어서도 실적 부진 우려가 컸다. HMM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변수가 해운동맹 재편이다.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5위 독일 하팍로이드가 내년 2월부터 ‘제미니 협력’이라는 새로운 해운동맹을 창설하기로 했다. 머스크는 당초 세계 1위 해운사 MSC와 ‘2M’ 동맹을 맺었지만 최근 이 동맹을 전격 해체하기로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운송 호황이 끝나고 해운업계가 선박 공급 과잉, 급격한 운임 하락에 내몰리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HMM이 소속된 해운동맹은 ‘디얼라이언스’다. 그동안 하팍로이드가 HMM과 함께 디얼라이언스에 포함돼 있었지만 내년에는 탈퇴하고 새 동맹을 만든다는 의미다. 디얼라이언스에서 선복량이 가장 많고 핵심 노선인 유럽 항로를 담당하는 하팍로이드가 탈퇴하면 이 동맹에는 일본 ONE, 대만 양밍 등 아시아권 선사만 남는다. 해운동맹은 선사에 허용된 일종의 ‘카르텔’이다. 동맹을 맺은 기업끼리 노선, 선박, 항만 터미널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하고 화주 상대 영업도 확대할 수 있다. 새로운 해운동맹을 맺지 않을 경우 HMM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위기에 내몰린 HMM은 벌크선 선복량을 대폭 늘리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HMM이 내놓은 ‘2030년 중장기 전략’에 따르면 현재 36척, 630만DWT(재화중량t수,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 최대 중량)인 벌크선 사업 규모를 2030년 110척, 1228만DWT로 늘리기로 했다.

HMM이 벌크선 사업을 키우는 것은 실적 회복을 위해서다. 벌크선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화물 전용선으로 철광석, 유연탄 등 원자재를 주로 실어 나른다. 벌크선은 경기에 민감한 컨테이너선과 달리 해운업 불황에도 안정적인 이익을 내며 실적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HMM의 컨테이너와 벌크선 사업 비중은 6 대 4 정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컨테이너선에 주력해온 HMM은 글로벌 해운 업황이 악화되자 벌크선 사업을 잇따라 매각했다. 지난해 HMM 매출 8조4010억원 중 벌크선 사업 비중은 14.7% 수준에 그쳤다. 대신 컨테이너선 부문 의존도가 80%를 넘어 사업 편중이 심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수익성 회복을 위해서는 벌크선 사업 비중을 다시 늘려야 한다는 것이 HMM 측 판단이다.

동시에 석유화학운반선(PC선) 발주도 늘리기로 했다. HMM이 발주할 PC선은 중형급 탱커로, 가격은 5000만달러(약 679억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최근 글로벌 정유사들이 정제공장에서 원유를 제품화해 수출하면서 PC선 수요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HD현대미포가 지난 4월 수주한 석유제품운반선의 척당 선가는 약 697억원(5175만달러)으로 1년 전(4600만달러)과 비교해 급등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해운 업황이 꺾이면서 HMM 실적이 불안해진 만큼, 수익성 좋은 벌크선과 PC선 사업을 다시 키워 실적 회복에 나서려는 조치”라고 내다봤다.

HMM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사업 재편이 성과를 낼 경우 당분간 호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수출 경기 호조로 해운 운임이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호재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 주요 컨테이너선사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은 부담이지만, HMM의 장기계약 운임이 상승하면서 3분기에도 1조6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HMM 재매각 쉽지 않을 듯

동원 등 중견그룹 자금력 변수

HMM 실적이 살아나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몸값이 치솟으면 산업은행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기대를 모았던 하림그룹의 HMM 인수가 끝내 무산되면서 또 다른 인수 후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HMM 실적이 좋아져 주가가 뛸 경우 매각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영구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보통주로 전환하면서 HMM 몸값이 높아진 점도 변수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는 HMM을 상대로 발행한 CB·BW 물량을 도래 시기마다 주식으로 전환하는 중이다. 올 7월 기준 산은·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주식 수는 4억5889만주(합산율 61.07%)로 지난해 7월 기준 3억9879만156주(합산율 38.9%)와 비교하면 22.17%포인트 증가했다. 오는 10월 예정된 1억3200만주, 내년 4월 1억4400만주까지 전환하면 채권단 지분율은 71.7%(7억3480만주)로 껑충 뛴다. 최근 주가(8월 21일 종가 1만7820원)를 단순 반영해 몸값을 추산해보면 약 12조원까지 치솟는다. 하림이 내건 6조원가량 몸값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실제로 HMM을 품에 안을 만한 후보군도 마땅찮다. 기존 인수 후보였던 하림, 동원그룹 모두 HMM보다 덩치가 작아 ‘승자의 저주’ 우려가 컸다. 동원그룹이 여전히 인수 의지를 보이지만 현금성 자산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 변수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만만찮다. 해운업 특성상 국가 수출과 직결되다 보니 정부 입김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가 관리 감독 등 경영권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하림 측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경영권 없이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하림 입장이었다.

“자금력을 고려하면 현대차, 포스코, 한화 등이 HMM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해운업체 특성상 정부 간섭이 심해 인수 메리트가 크지 않다. 해외 매각 얘기도 나오는데 국가전략산업인 해운업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몸집이 큰데 실적까지 살아나면서 HMM 매각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산업은행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