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와 감독으로 패럴림픽 출전하는 정은선 여자 골볼 감독
선수로 나섰던 패럴림픽 무대에 감독이 되어 돌아왔다. 정은선(48) 여자 골볼 대표팀 감독이 28년 만에 못 다 이룬 메달의 꿈에 도전한다.
여자 골볼은 2024 파리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유일한 단체 구기종목이다. 대표팀은 2022년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한 1988년 서울 대회,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 이어 세 번째 본선 출전이다.
정은선 감독은 선수로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 출전한 데 이어 28년 만에 감독으로서 패럴림픽에 다시 나서게 됐다. 27일(현지시간) 선수촌에서 만난 정 감독은 “선수 때는 나만 잘 하고,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맞으면 됐다. 감독은 두루두루 신경써야 하니까 마음가짐이 다르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정 감독은 선천성 망막 박리로 장애를 얻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일반 학교에 다녔는데 갑자기 한쪽 눈이 안 보였다.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빛맹학교로 전학한 그는 중등부 3학년 때 골볼을 접했다. 정 감독은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알파인스키와 골볼을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골볼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다. 배구 코트와 동일한 크기(가로 18m, 세로 9m)의 경기장에서 무게 1.25㎏의 공을 손으로 던지거나 굴려 상대 골대(폭 9m, 높이 1.3m)에 넣는다. 수비할 땐 3명의 선수가 공 내부에 들어 있는 방울 소리를 듣고 위치를 파악한 뒤 몸을 날려 막는다. 청각에만 의지하지만, 역동적이면서도 박진감이 넘친다.
정은선 감독은 “스키보다는 골볼을 좀 더 좋아했다. 땀을 흘리고 활동적인 운동이 내게 맞았다. 지금도 선수들과 같이 연습할 때 행복하다. 감독, 코치, 트레이너 할 것 없이 스파링 파트너가 돼서 함께 운동한다”고 했다.
정 감독은 골볼 1세대인 대한장애인체육회 추순영 전문지도위원, 대한장애인체육회 훈련기획부 김미정 주임과 함께 패럴림픽에 나섰다. 최종 성적은 6위(2승 1무 4패). 하지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은선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선수들에게도 이런 마음을 강조한다. 약간의 긴장은 했지만, 즐겼다. 상대가 공에 맞고 아파하면 ‘맞고 죽어봐’란 생각을 했다”고 추억했다. 이번 대회에선 김미정 주임도 대표팀 지원을 위해 함께 파리로 왔다. 정 감독은 “지금도 만나면 예전 이야기를 많이 한다. 후배들 만날 때마다 많이 격려해준다”고 했다.
패럴림픽에 출전한 뒤 코트를 떠났던 정 감독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다 2002년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를 앞두고 복귀했다.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엔 다시 은퇴했다. 정 감독은 “당시엔 실업팀이 없었다. 26세 때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고 했다.
골볼 대표팀 선수들은 20~30대다. 직접 선수로서 경험해봤기 때문에 부담감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오래 같이 해온 선수들이라 호흡이 잘 맞는다”며 “훈련만 하는 대신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선수촌 내에서 사진도 찍고, 여러 곳도 둘러보면서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날도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선수들과 함께 선수촌 내 기념품 매장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 골볼은 열악하다. 실업팀은 겨우 2개다. 국가대표팀 선수보다 많은 스태프를 보내는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메달이란 꿈 하나를 바라보고 야간 운동까지 스스로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선수들을 바라본 정 감독은 누구보다 좋은 결과를 내주길 바라고 도와주려 한다. 정 감독은 “28년 만에 출전권을 따낸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꿋꿋이 잘 버텼다”고 했다.
정은선 감독은 “후배들이 진짜 역사를 한 번 써줬으면 좋겠다. 내가 따지 못한 메달을 따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힘들겠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고. 연습했던 모든 걸 코트에서 쏟아붓고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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