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시, 예능서 일 잘하던 '을' 본업선 광기 연기 '갑'
'아없숲'서 배우 인생 변곡점
넷플릭스 새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이하 ‘아없숲’) 속 고민시를 향한 평가다. tvN 예능 ‘서진이네2’ 황금 인턴으로 활약 중인 고민시가 신작 ‘아없숲’으로 돌아왔다. 그간 본 적 없는 얼굴로 인생 캐릭터를 경신하며 본업 ‘존잘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지난 23일 공개된 ‘아없숲’은 한여름 펜션을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스펜스 스릴러를 표방하는 이 드라마에서 고민시는 핵심 빌런 성아를 연기했다. 극중 성아는 영하(김윤석)의 펜션을 찾은 불청객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로 묘사된다.
고민시는 성아를 통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광기의 얼굴을 그려낸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곧바로 무력을 가해 눈앞에서 제거한다. 진짜 무서운 건 잔혹한 행위 자체가 아니다. 전 남편을 죽이겠다고 소화기를 던진 후 무심하게 비비는 눈, 살인을 저지르고 이어지는 비릿한 웃음 같은 것들이다.
성아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빌런의 전형에서도 벗어난다. 성아를 구축하는 핵심 감정은 결핍과 불안이다. 고민시는 성아의 광기를 집요하게 발산해 내는 동시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정서적 모순과 취약함으로 직조한 광기는 서사의 풍성함을 채우고 장르적 재미를 발생시킨다.
이 같은 결과물은 고민시가 그간 쌓아온 공력에 기반한다. 지난 2017년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로 데뷔한 그는 수년 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활약하며 내공을 쌓았다. 대중에게 각인된 건 2020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 홈’을 통해서였다. 고민시는 말간 얼굴로 반항적인 10대 소녀 은유를 빚어내며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어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내밀한 감성 연기를 펼치며 배우로서 잠재력을 증명한 고민시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서 다방 마담 옥분을 소화, 작품 특유의 활기와 재미를 유난스럽지 않게 살려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그의 활약은 ‘밀수’ 전후로 선보인 ‘스위트 홈’ 새 시즌에서도 계속됐다. 시즌1보다 한결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얼굴로 프레임 한 가운데 선 고민시는 은유의 심리적, 태도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시리즈의 질주 속 자신만의 성과를 챙겼다.
이렇게 켜켜이 쌓은 실력은 ‘아없숲’을 통해 마침내 터졌다. 고민시는 ‘아없숲’으로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또 한 번 배우 인생의 변곡점을 찍었다. ‘밀수’에서 보여줬던 능수능란한 몸짓 연기는 한층 유연해졌고, 고전적이고 청순했던 분위기는 흉내낼 수 없는 농염함으로 갈아치웠다. 현 충무로 감독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배우라는 말이 그냥 흘러나온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증명해 낸 셈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없숲’은 단연 고민시의 작품이다. 고민시는 캐릭터가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를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엄청난 몸싸움들도 감내하면서 흐트러지지 않게 감정선을 유지한다”며 “이제 고민시라는 배우는 ‘아없숲’ 전후로 나뉠 거다. 굉장히 연기적으로 성장했고, 이제 원톱 주연으로도 손색없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아울러 현재 방송 중인 ‘서진이네2’와의 간극이 고민시가 더 큰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방증이라고 봤다. 고민시는 ‘서진이네2’에서 특유의 부지런함과 붙임성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철저한 ‘을’로 존재하되, 그 상황을 누구보다 즐기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은 MZ세대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김 평론가는 “고민시는 영리한 배우다. 보통 이렇게 센 역할을 하면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온다. 그런데 고민시는 그 틈을 타 ‘서진이네2’로 갔다. 을 이상의 것을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을로 활약하면서 분위기까지 바꾸는 키플레이어로 기능한다”며 “예능도 연기라면 연기다. 결국 고민시는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수행해 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이미지의 작품이 계속 들어올 거고 고민시는 계속해서 새 얼굴을 보여주며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고민시는 차기작으로 ‘아없숲’과는 완전히 다른 색의 작품으로 곧 관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아직 작품명과 배역 등을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고민시의 말에 따르면 로맨스 장르에 가깝다는 귀띔이다.
“이제는 멜로의 얼굴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했다”는 고민시는 27일 일간스포츠에 “전작과는 다른 선상에서 급변하는 캐릭터를 계속 맡아서 새로운 세상 속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편하다. 이전 캐릭터에서 완전히 탈바꿈하는 기분”이라며 “색칠할 캐릭터가 기대되고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필모그래피가 쌓일 때마다 나라는 사람의 삶도 풍요로워지는 걸 느낀다. 누구든 마음을 다해 뭔가에 도전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인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과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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