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기독교는 ‘무례한 종교’인가
미국 풀러신학교 총장을 지낸 조직신학자 리처드 마우는 저서 ‘무례한 기독교’에서 기독교의 현실을 꼬집었다. 현대사회가 갈수록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고 심지어 이 갈등이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에 대한 증오와 폭력으로까지 확대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현대사회가 처한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평화를 전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분열을 부채질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전한다. 교회의 목소리가 강한 곳에 긴장이 확대되고, 사람들 사이에 증오심이 팽배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다원적 세계 속에서 기독교 리더십이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세계관이 편협하고 왜곡돼 있는 데 원인이 있다. 결국 지난 20~30년간 미국교회의 선교적 역량은 심각하게 후퇴하게 됐고 교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저자는 묻는다.
“정말 기독교적 가치와 신념을 확고히 가지면서, 비범한 품성과 품격을 갖고 세상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그는 사도들의 권면과 신약성경 시대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통해 이 삶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비범한 품격을 보여주고자 한다.
분열과 갈등이 떠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대사회적 사명과 책임성을 고려하면 귀 기울여 들을 대목으로 보인다. 한국교회 안에도 세상과 사회를 적대시하고 세상을 그저 십자가 복음으로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세계관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정복과 교화(敎化)의 대상으로만 본다. 이런 세계관을 ‘정복주의적 세계관’이라고 일컫는다. 중세 교회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킬 때 견지했던 세계관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미움 분노 적개심은 물론 전쟁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전투적 정서를 갖고 있다.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의 영성과 중간에 막힌 담을 허는 십자가의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신앙관을 갖고 있으면 교회는 절대선이요 세상은 절대악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품게 된다. 모든 사물을 선악 기준으로 본다. 목회자가 이런 세계관으로 “세상은 교회의 밥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정복하자”는 메시지를 선포할 때 회중은 속이 후련하고 세상에서 눌렸던 답답함이 해소되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생긴다. 세상에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나 온유함은 없어진다. 또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펼치려는 ‘무례한 집단’이나 ‘편협한 그룹’으로 기독교가 인식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한 양면적 인식을 놓치면 안 된다. 세상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서 변화돼야 하는 선교의 영역이다. 세상은 교회가 깨달은 진리를 아직 전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 복음을 전해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가야 하는 대사명을 갖고 있다. 동시에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공간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품에 들어오지 않은 세상을 긍휼히 여기신다. 예수께서 비유에서 말씀하신 집 나간 둘째 아들과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며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다.(요 3:16~17)
이 세상의 양면성을 인식한다면 기독교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살면서 타자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타자를 미몽에 빠진 무지한 자처럼 인식하면 안 된다. 인간과 사건을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보면 안 된다. 또한 교회는 세상이 교회에 하는 말을 가볍게 들으면 안 된다. 그중에는 일방적으로 교회를 폄하하거나 복음을 왜곡해서 하는 말도 분명히 있다. 반면 세상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을 꼬집어서 말하는 것들, 즉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이뤄나가려면 교회가 반드시 새겨야 할 것들 또한 많다. 이것이 선교 지향적 태도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뤄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신실한 자세가 아닐까.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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