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년도 고강도 긴축…재정 빈자리 규제 혁파로 넘자

2024. 8. 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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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예산 총지출 증가 3.2%, 내년 경상성장률보다도 낮아


기준 중위소득 대폭 올려 약자 보호 핀셋 복지는 유지


규제는 숨은 세금…규제개혁이 부족한 정책 여력 대안

정부가 677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어제 발표했다. 올해보다 3.2%만 늘릴 정도로 허리띠를 바짝 조였다. 예산 총지출 증가율이 재정을 맘껏 썼던 문재인 정부 때의 연평균 예산증가율(8.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은 물론, 물가를 반영한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4.5%)보다도 낮다. 강도 높은 긴축재정이다. “건전재정은 우리 정부가 세 번의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켜온 재정의 대원칙”이라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긴축 예산 속에서도 약자를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은 유지했다. 각종 복지의 기준선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대폭(6.42%)으로 올렸다. 기존의 복지정책 전달 수단을 잘 활용하면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핀셋 복지를 ‘딱딱’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이 무차별 현금 뿌리기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3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나눠주자는 야당의 포퓰리즘 공세를 막는 데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영세 소상공인에게 배달·택배비(연 30만원)를 지원하는 정책은 배달 플랫폼의 배달비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 구호’라는 점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률은 9.5%였다. 다만, 배달·택배비 지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임시변통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내수가 좋지 않다. 불황일수록 재정을 더 투입해 경기를 진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건전 재정의 덫’에 갇혔다는 비판도 있다. 경기를 방어하는 재정의 역할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은 원칙적으로 옳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 위한 말의 성찬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정책 현장에서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다 보면 재정 건전성을 일시적으로 지키지 못할 정도를 넘어 문재인 정부처럼 아예 상당 기간 재정 건전성과 결별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윤 대통령은 어제 “지난 정부가 5년 동안 400조원 이상의 국가 채무를 늘려 (현) 정부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다. 또 ‘전 정부 탓이냐’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도 기준금리 인하가 목전에 와 있다. 그렇다고 허약한 재정의 빈자리를 통화정책이 적극적으로 보완하기는 힘들 것이다. 가계부채가 쌓여 있고,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기를 살리는 정책 수단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정책 여력이 없을 때일수록 규제 혁파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규제는 감춰진 세금이다. 간단한 규제 하나를 지키는 데도 국민의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감춰진 규제를 찾아내 없애면 기업 환경이 좋아지고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난다. 규제 개혁은 역대 정부가 정권 초반에 강조하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흐지부지되곤 했다. 정책 여력이 별로 없는 윤석열 정부는 집권 중반 이후에도 규제와의 전쟁에 내실 있게 나서야 한다.

이제 예산국회가 시작된다. 내내 샅바싸움만 하다가 막판에 밀실에서 전광석화처럼 여야의 예산 주고받기로 끝나는 관행이 올해도 이어져서는 안 된다. 여야가 민생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예산국회가 협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예산은 돈으로 계량한 정책이다. 틀에 갇힌 정치적 신념 및 관념에서 벗어나 돈 적게 들고 효과는 큰 정책을 찾아내는 합리적인 토론의 장이 열렸으면 한다. 22대 국회가 예산 심의의 모범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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