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국민연금 제도 안착에 서린 땀과 노력들
국민연금의 기금적립금이 1000조원을 넘었다. 절대 규모로는 세계 3위, GDP 대비로는 세계 1위이다. 2250만 명이 가입한 우리 노후소득보장 체계의 근간인 국민연금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국민연금공단이 발간한 『실록 국민의 연금』(2015)에 따르면 국민연금 의제는 1972년 들어와 김만제 등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주목하면서 단기간에 정책 이슈화했다. 김만제 당시 KDI 원장은 국민연금도입에 관한 보고서를 11월 30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보고를 접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연금 도입 연구 추진을 지시한다. 이듬해인 73년 1월 박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도입 준비를 천명하고, 74년 실시를 목표로 한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국민복지연금법’은 73년 12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그러나 이 법의 시행은 유가가 4배 이상 급등하는 제1차 석유파동으로 좌초한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보험료가 부담된다는 이유에서다. 74년 1월 14일 발동된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의 일환으로 국민복지연금의 시행이 일시적으로 유보되었다가 이후 무기 연기되었다.
■
「 70년대 시도됐다 경제난으로 연기
우여곡절 끝 14년 만인 88년 실시
정착 위해 많은 관료·전문가 노력
개혁으로 이들의 헌신 계승해야
」
전두환 정부는 정권 초기에 국민연금 도입에 소극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1년 첫 국무회의에서 KDI 측이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기본구상’의 하나로 국민연금을 언급하였으나, 대통령은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냉담한 대응에도 관료와 전문가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기회를 만들어 국민연금 도입의 필요성을 반복해 설명했다. 86년 4월 21일, 대통령의 유럽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오는 귀국 비행기에서 김만제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가 사공일 수석과 함께 국민연금 도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승인을 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후 8월 11일 국민연금 도입을 3대 복지정책의 하나로 발표하고, 9월에는 국민복지연금법의 개정안을 확정한다. 관료와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속도다. 드디어 86년 12월에 기존의 ‘국민복지연금법’이 ‘국민연금법’으로 전면 개정되어, 국민연금제도가 88년 1월부터 실시되기에 이른다. 시행이 유보된 지 14년 만이다.
이후 국민연금의 대상 범위 확대가 우선 과제였다. 88년에는 1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만을 가입 대상으로 시작하였다. 92년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95년 농어촌 주민, 99년 5인 미만 사업장과 도시 자영업자에게까지 확대되어 진정한 의미의 국민연금 시대가 도래한다. 대상 범위의 확대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특히 99년 도시 자영업자에게 확대 적용은 중단될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에 대한 불만으로 직장근로자 단체 일부는 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을 전개하며, 직장근로자와 자영자를 분리한 연금체계를 운영하자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99년 3월 치러질 재보궐 선거와 이듬해인 2000년 총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종필 국무총리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확대 필요성을 설득함으로써 연기는 없던 일로 되었다. 연기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제도 실행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1974년 국민복지연금법의 무기한 연기 경험이 나침판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은 도입 초기 보험료율이 3%, 소득대체율이 70%인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시작하였다.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가입자가 낸 보험료 총액과 그에 따른 이자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급하도록 설계한 제도다. 수급자 입장에서는 그 어느 민간금융기관의 사적연금보다 수익률이 높다. 그 차액은 익명의 자식 세대의 보험료에서 지급되기 때문이다. “2006년 현재 국민연금 적립금은 180조원이고 미적립부채는 210조원입니다. 지금도 국민연금의 잠재부채가 하루에만 800억원씩, 연간 30조원씩 쌓여가는 등 연금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입니다.” 2차 국민연금 개혁 논의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빼놓지 않고 했던 말이다. 미적립부채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기로 되어 있는 연금급여에서 적립된 기금액을 뺀 차액이다. 학계에서는 현재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를 1800조원 정도로 추산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로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05만명의 법정 은퇴연령(60세) 진입이 완료되었다. 올해부터는 우리나라 단일 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64~74년생) 954만명이 향후 11년에 걸쳐 은퇴 연령에 진입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이 국민연금 개혁의 일분일초가 시급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에서 국민연금개혁안을 발표한다고 하니 모두의 기대가 크다. 1972년부터 현재까지 국민연금제도의 정착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헌신해 온 수많은 정치인, 관료,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의 헌신을 계승할 때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리 아이 성적 올리려면…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 중앙일보
- 송일국도 경고 나선다…"숨쉬기 힘들어" 탄식 쏟아진 충격 재난 | 중앙일보
- "父 죽이고 싶었다" 이문열의 고백…작가는 숙명이었다 | 중앙일보
- 박근혜 "왜 더러운 사람 만드냐"…검사 면전서 서류 밀쳤다 | 중앙일보
- 여배우도 "남자보다 귀신이 안전"…인도 의사 파업 부른 성폭행 충격 | 중앙일보
- "히틀러 결혼시켜라" 英의원 뜬금 주장…9년 뒤 '죽음의 결혼식' [Focus 인사이드] | 중앙일보
- '신데렐라 성' 셀카 찍다 80m 아래로 추락…체코 체조 국대 사망 | 중앙일보
- 어도어, 민희진 대표 전격교체…민 측 "일방적 해임" 반발 | 중앙일보
- 악천후에 70m 상공서 멈춘 놀이기구…“수동으로 하강” | 중앙일보
- 열차 놓쳤다고 역무원에 화풀이…낭심 걷어찬 진상 공무원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