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응의 글로벌 포커스]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 대선 패배 기억과 확장성에 달렸다

2024. 8. 2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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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직도 많은 이들은 200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민주당 지지자들은 차기 대통령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떠올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했던 민주당의 희망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78) 대통령의 당선으로 꺾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7월 재선 도전 포기 선언 이후 세간의 우려와 달리 민주당은 카멀라 해리스(59) 부통령을 중심으로 재빠르게 결집했다. 민주당의 이런 모습은 반드시 트럼프를 꺾겠다는 절실함의 표현일 것이다.

「 힐러리 패배 기억에 민주당 결집
트럼프, 지지율 확장성에 한계
9월 첫 TV토론, 대선 중대 변수
해리스 당선시 ‘바이든 2.0’예상

선거 경험 많은 흑인·아시아계 미국인

미국 시카고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열린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AP=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해리스 부통령은 자메이카 출신 유학생 아버지와 인도 출신 유학생 어머니를 뒀다. 흑인이자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1990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검사, 2011년부터 선출직인 캘리포니아 주 법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2016년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전국 단위의 정치 무대에 뛰어들었다.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퇴했다. 극적으로 바이든의 부통령 후보로 러닝메이트에 지명된 해리스는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백악관에 함께 입성했다. 원래 직업이 검사이지만 선거 경험도 꽤 있기 때문에 정치인 경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해리스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첫 아시아계 대통령이 된다. 아시아계라는 인종 정체성을 접어놓고 보면 민주당 여성 후보가 공화당 트럼프 후보와 맞서는 2016년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과연 8년 전과 달리 미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확장성이다.

여성 임신 중절권도 민감한 대선 쟁점

6월 24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임신 중절권을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폐지 사건을 거론하며 여성의 임신 중절권 보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먼저 기억이란 2016년 대선의 민주당 패배 기억을 의미한다. 여성 및 소수 인종 비하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에게 패했다는 사실은 여성 후보(힐러리 클린턴)를 내세웠던 민주당엔 쓰라린 기억이다. 이 기억 때문에 많은 여성 유권자들은 올해 해리스를 중심으로 결집할 유인이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정치 상황이 이들의 결집을 돕는 상황이다.

미국의 중요한 정치 이슈 중 하나인 여성의 임신 중절권 사례를 살펴보자. 2016년 클린턴 후보는 임신 중절권을 보장한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유효했던 시절에 선거운동을 수행했다. 그런데 지금의 해리스 후보는 2022년 연방대법원의 ‘돕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판결’에 따라 50개 주 정부가 각각 임신 중절권 규정을 만드는 시기에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미국은 임신 중절권을 보장하는 주와 그렇지 않은 주가 민주당 우세 주(Blue states)와 공화당 우세 주(Red states)로 거의 반반씩 갈라져 있다. 상당수 주에서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라도 쉽게 낙태를 못 하는 법을 제정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출마를 포기함에 따라 임신 중절권 제한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제 80대 남성이 아니라 50대 여성 후보에게서 나온다. 민주당이 최근 열린 전당대회에서 강조한 자유(freedom)는 많은 여성 유권자들에게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내 몸을 지킬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확장성을 보자.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트럼프의 지지 기반은 확장되지 않지만, 해리스의 지지기반은 넓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의 경우 지난 7월 암살당할 뻔했지만, 그 사건 직후 지지율이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암살 미수 사건은 7월 13일에 발생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날은 7월 21일이다. 약 일주일 정도에 축적된 여론조사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놀라울 정도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트럼프 지지는 이미 여론조사에 모두 반영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트럼프의 밴스 지명, 지지층 확장 못해

8월 3일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주립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46.1%의 전국단위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런데 2020년 대선 때는 46.8%로 바이든에 패했다. 트럼프가 암살 위협을 피한 직후의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율이 약 47%였다. 총을 맞아도 지난 선거 때 득표율과 큰 차이가 없는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확장성이 절실한데도 트럼프는 자신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J D 밴스 오하이오 연방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그 결과 2016년과 2020년의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트럼프 선거운동에서 신선함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백신 반대론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와의 후보 단일화도 지지층 확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 패배하면 물리적 충돌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연합뉴스

반면 해리스는 확장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젊은층과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쇠락한 공업지대, 즉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백인 노동자 표심을 잡기 위한 선거 포석은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 지명으로 마무리됐다. 정책은 진보적이지만 서민적 이미지를 풍기는 월즈는 해리스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직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엔 이르다. 당장 9월 10일 열리는 해리스 대 트럼프의 첫 TV토론을 눈여겨봐야 한다. 10월 1일 부통령 후보들의 TV토론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학 이후 대학가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도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해리스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면 한동안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연장선, 즉 ‘바이든 2.0’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하고도 시행하지 못한 교육·보육·보건 분야 공약 실행에 먼저 집중할 것이다. 대외정책 기조도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치인 해리스가 바이든이나 오바마와 구분되는 외교 전문가 집단을 운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진영에 따라 극도로 양극화된 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트럼프를 꺾고 대통령이 된다면 물리적 충돌 같은 소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직도 2020년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믿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비율이 상당한 상황이니 이러한 우려가 근거 없다고 보긴 어렵다. 이 경우 미국의 대외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국 대선 구도를 면밀히 추적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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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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