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양 강국 위해 ‘해양 모빌리티’ 주목해야

2024. 8. 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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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형 전 대한조선학회장·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학과장

모빌리티(Mobility)는 최근 가장 뜨거운 화제의 단어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땅 위나 낮은 상공에서 움직이는 기구에 한정된 교통 또는 이동 수단으로 의미가 축소된 것은 아쉽다. 단어를 선점한 자동차 기업들의 공격적인 홍보가 성공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빌리티는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사람이나 물건의 움직임에 필요한 모든 수단과 환경을 통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별명은 ‘블루 마블(Blue Marble)’이다. 1972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가 공개한 지구 사진의 별칭에서 유래한다.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는 대부분이 바다로 뒤덮여 있어 파란 구슬 같아 보여 이런 별칭이 붙었다.

NASA의 지구 관측 위성을 통해 촬영한 지구. 지구는 표면 70%가 물로 덮여 있어 '블루 마블(Blue Marble)'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로이터=연합뉴스

「 ‘모빌리티’는 이동수단 이상 의미
국가 해양력 키울 엄청난 잠재력
분산된 기능 전담할 기관이 필요

이런 행성에 사는 우리에게 모빌리티의 의미는 당연히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모빌리티의 개념도 제대로 되찾아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부터 ‘해양 모빌리티’ 기치를 내걸고 대한민국을 2050년의 세계 해양강국으로 발전시킨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다만 해수부에서도 해양 모빌리티를 교통 또는 이동 수단이라는 개념으로 한정하는 듯해 다소 아쉽다. 필자는 해양 모빌리티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자고 주창한다.

해양 모빌리티는 ‘물이 있는 환경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해양 모빌리티는 단순히 교통 또는 이동 수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흔히 알고 있는 해양의 교통과 물류는 물론이고, 국방·에너지·환경·농수산업, 그리고 인간의 정주(定住) 인프라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해양 활동을 포함한다.

세계 최대 시추업체인 시드릴의 시추선 웨스트카펠라. 한국 조선사 삼성중공업이 건조했다. 삼성중공업

지구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은 바다, 특히 공해(公海)로 덮여 있다. 국제해저기구(ISA)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기술력이 충분한 주체가 어떤 기술로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다. 바다 밖으로 뻗어 나갈 공간이 없는 한국 입장에서 공해는 기회의 공간이다. 한국의 연안에서 200해리(약 370㎞)까지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다. 12해리까지인 영해(領海)는 우리 국익을 위한 경제활동이 가능한 공간이다. 해양 모빌리티를 위한 기술을 갖춘다면 좁은 땅, 즉 영토를 벗어나 주권이 미치는 국토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명운은 무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류는 무역을 위한 혈액의 순환과 비슷하다. 조선과 해운 분야의 세계적 강국인 한국은 물류 분야에서도 세계적 입지를 차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를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한다. 바다를 활용해 신재생 에너지를 만들거나, 새로운 해저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는 일은 에너지 빈국의 숙원이다.

육지에서 기피 시설이 된 발전소를 바다에 지을 수 있다. 땅이 비좁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해양공간에 도시를 만들 수도 있고, 산업단지를 건설할 수도 있다. 지정학적으로 긴장감이 상존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존재감을 부각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도 있다.

5월 30일 독도함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를 향한 신해양강국'을 주제로 제21회 해군 함상토론회가 열렸다. 해군 함상토론회는 1992년 처음 열려 국가 해양력 발전 방향 제시에 역할을 하고 있다. 뉴스1

필자가 열거한 해양 모빌리티 관련 항목들을 한데 모으면 국가의 ‘해양력(Sea Power)’이 된다. 해양력은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법과 제도, 정신적·문화적 역량까지 아우른다. 해양력은 외부로 나가는 힘이라 한국처럼 대외관계에 의존하는 나라에는 더욱 중요하다. 해양력을 위한, 해양 모빌리티를 제대로 챙기는 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현행 정부조직법을 보면 해양 모빌리티를 챙기는 업무는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다. 해군(해양 군사력)과 해경(연안 경비)은 논외로 하자. 선박을 비롯한 해양 구조물의 생산과 건조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안과 항만 인프라 및 선박 운용은 해양수산부가 관장한다.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도 각 부처가 따로 관장하는데, 가끔 공동 연구사업도 각 부처 부분을 나눠서 따로 챙긴다. 차관이나 실국장급 협의를 한다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 해양 모빌리티를 챙기는 일사불란한 정부 기관이 필요하다. 나라의 미래를 보면서 해양 모빌리티에 진심과 의지가 있는 기관이 맡아야 한다. 해양 모빌리티 개념을 선도하면서 해양력 강화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갈 기관의 탄생을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신형 전 대한조선학회장·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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