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사소함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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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게 되어 며칠 동안 보호자로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 발가락에 무좀이 생겼을 때 사소하다고 생각해 방치했더니 균이 퍼져 버려 발가락을 절단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소하다고 방치했다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비단 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상의 수많은 사건 사고도 알고 보면 사소한 일로 인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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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게 되어 며칠 동안 보호자로 지내게 되었다. 입원실에는 다섯 명의 환자가 있었다. 아버지 맞은편 병상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 한 분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다른 환자들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간병인이 죄송하다며 말해주길 어르신께서 무릎 근처까지 발을 절단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발가락 무좀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발가락에 무좀이 생겼을 때 사소하다고 생각해 방치했더니 균이 퍼져 버려 발가락을 절단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뇨병을 앓고 있던 까닭에 잘 낫지 않았고 급기야 발목까지 절단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균은 계속 퍼져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무릎 부위까지 절단했다는 것이다. 한갓 무좀이라서 가볍게 여기고 방치한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져 버려 다리를 절단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도덕경(道德經)’에서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일어난다고 했다. 사소하다고 방치했다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비단 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상의 수많은 사건 사고도 알고 보면 사소한 일로 인해 벌어진다.
작은 부품 결함 하나로 최첨단의 비행기가 추락하고, 사소한 계산 실수 하나가 기업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작은 구멍이 생기면 큰 둑을 무너뜨리듯이 큰 사고는 지극히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일상에는 사소한 오해나 작은 다툼이 큰 분쟁으로 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만드는 일이 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사소한 한마디 말 때문에 평생의 상처를 가져다주고, 무심코 한 작은 행동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별거 아니라고 무심히 여겼다간 사람도 잃고 일도 망치는 수가 있다.
비량(卑梁)의 고사는 사소한 일이 얼마나 큰 문제로 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비량 마을과 초나라의 종리 마을은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을 경계에 뽕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비량과 종리의 여인 둘이 서로 좋은 뽕잎을 차지하려다 다투게 되었다. 둘의 싸움은 집안싸움으로 번졌고 화가 난 종리 사람들이 비량의 집안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 그러자 비량 지역을 맡고 있던 수령이 병사를 보내 종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소식을 들은 초나라 왕이 분노하여 군대를 보내 비량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오나라 왕이 크게 화가 났다. 종리 인근뿐 아니라 초나라 태자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거소 마을까지 공격했다. 여인 간의 사소한 싸움이 나라 간 전쟁으로 번진 것이다. 작은 일이 결코 작은 게 아니며, 세상의 큰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한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엔지니어였던 하인리히는 산업 관련 재해를 분석하다가 큰 재난과 작은 재난, 사소한 재난의 발생 비율이 1대 29대 300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작은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먼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수많은 대형 사고에는 작은 징후들을 가볍게 여기다 벌어진 참사가 많다.
사소하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제때 치료할 때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사소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신속하게 대응할 때 큰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하다고 넘어가지 말고 솔직하게 대화할 때 관계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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